사회에서의 나는 몹시 똑똑과 멍충을 넘나 들어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졸업한 학교. 사회에서의 ADHD 환자는 어떤 사람일까? 학교는 그래도 학생이기에 실수가 용납되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는 여유가 있다면 사회는 조금 다르다. 실제로 직장생활 중의 어려움으로 성인 ADHD를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ADHD의 특성이 조직사회에는 썩 어울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조직생활로 더욱 어려움을 겪었는데, 예전에는 내가 남초 회사 속 '여성'이라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는 거기에 'ADHD'를 더 붙여야 했다.
나라는 직장인을 꾸미는 수식어들이 많았다. 본부 전 직원 앞에서의 발표에도 떨지 않고, 발표내용을 잘 이해하셨는지 본부장님께 질문을 던지는 간 큰 1년 차 신입, 상사들 앞에서 할 말은 다 하면서 작업 매뉴얼 밖의 내용은 허용되지 않는 MZ꼰대 등등...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적도 많았던 직장 생활이었다. 원래 이렇게 힘든 건가, 나만 이렇게 힘든 건가 했는데, ADHD를 알고 나니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는 만남의 연속이다. 업무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우리 회사 특징상 연 단위로 업무, 부서, 근무 사업소가 자주 바뀌어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자주 바뀌는 편이고, 예전에 함께 일하던 사람을 몇 년 뒤 또 만나기도 쉽다. 문제는 이름과 얼굴이 잘 기억이 안 난다. 안면인식의 문제보다는 말 그대로 '이름을 잊는다'에 가까운 듯.
상대방의 직위와 업무도, 그때 나와의 상황도, 얼굴이나 목소리도 얼핏 기억이 나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주로 직위로 부르다 보니 그런 경향이 학생 때보다 강해진 것 같다. 얼핏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 직장동료였던 남편덕에 말이다. 회사 이야기를 할 때면 도무지 사람들의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00부에 보트 타고, 보트 보유하고 계신 대리님' '00부에 골전도 이어폰 끼고 다니시는 차장님' 이렇게 이야기한다. 퇴사 2년 차의 남편은 그들의 이름을 척척 대답한다. 와 지금도 내가 쓰는 글의 제목을 보더니 그 차장님 이름을 맞췄다. 들으면 또 기억이 나긴 난단 말이지?
당장 걱정인 것은 복직 후다.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분명 함께 일했던 사람들인데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게 뻔하다. 잘 보이지도 않는 명찰을 흘깃흘깃 바라보며 더듬더듬 '... 과장님', '... 차장님'을 말하겠지.... 잘 모르겠으면 "선배님"이다! 자 따라 하자, "선배님!"
회사에서 나는 꼼꼼과 실수를 반복했다. 신입답지 않게 서류 일을 잘 처리한다고 칭찬받다가도 단순 영수증 처리 업무에서 '28+14=46' 수준의 계산실수를 하기도 했다.(학생시절의 연장선 : 개성이 뚜렷한 ADHD학생)
당시 같은 부서의 남편을 보며 가끔은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남편은 당시 하루 해야 할 업무를 따로 메모하지 않고도 잘 해냈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서 나눠준 노트, 달력, 포스트잇 곳곳에 해야 할 업무를 적어두고 해내야 했지만, 남편은 초등학생 글씨체로 적은 메모 몇 장이 끝이었다. 남편의 그런 모습이 조금 유능해 보였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매일 반복하는 업무를 포함하여 당장 급하게 해야 할 일도 나는 투두리스트에 적어두고 하나씩 해나가야 했는데, 다들 그렇지는 않았다. 남편이 유난히 가까워서 잘 보였던 것이지 남들도 나보다 큰 작업기억 공간을 두고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ADHD 환자는 정상인보다 '작업 기억'이 약하다고 한다. 컴퓨터로 치면 RAM에 해당하는 단기기억력이 나쁜데, 남들은 머릿속에 큰 화이트보드가 있어 썼다 지웠다가 가능하지만 ADHD인은 남들보다 이 화이트보드가 작다. 예를 들면 나는 A라는 작업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B작업을 긴급하게 처리해야 해서 하고 나면 뭘 해야 하는지 바로 잊고 만다. 그때 노트를 보면 '아 맞다! 내가 A를 하고 있었지.' 하며 원래 일을 찾아갈 수 있지만, 따로 기록해두지 않으면 업무의 흐름을 아예 잃고 만다.(이 문제가 크게 두드러진 시점이 육아와 집안일이 겹쳐진 시기였다.) 근데 남들은 원래 하던 업무를 바로 알고 한다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교 공부할 때 플래너에 광적으로 집착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공부 범위나 일정을 까먹고 놓치면 오로지 나의 잘못이며 책임인 반면에 회사 일은 아니었다. 나와 상사와 부서와 회사 전체의 책임이 되기도 하니 부담감이 더 커졌고, 그 책임감이 나를 광적인 메모광으로 만들었다. 그 덕에 꼼꼼하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고 나 스스로도 실수를 줄이고 작업 기억을 '외부화'하는 데에 성공했으니 좋은 성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나는 조금 당돌한 MZ신입이었다. 엄마는 나의 "왜요?"에 반항하는 거냐고 화를 내곤 하셨었는데, 회사에서도 그것이 반복되었다.
미소핀씨, 이거 좀 해오세요.
매뉴얼에 없는데요?
그냥 시키면 좀 해요!
아니 그니까, 이게 왜 필요한 건데요?
미소핀씨, 이제 회사에선 이렇게 입으세요.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그게 근거가 있나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거나...
왜 이 업무는 여자가 못해요?
왜요?
진짜 호기심으로 시작하든 반항으로 시작하든 일단 내뱉고 보는 질문들이 종종 있었고, 그게 적을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당시의 나는 그게 정의감에 찬 행동이나 강한 주관으로 인한 행동으로 해석하곤 했는데 돌이켜보면 ADHD의 충동성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사이다였을지도 모르겠으나 반성하기에도 예의 바른 태도는 아니었고, 보수적인 회사 분위기에서는 매우 버릇이 없어 보일 행동이었다. 그래, 대외적으로 그렇게 보일 것이라 이해한다. 하지만 정말 궁금한데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네 알겠습니다'하고 넘어가지? '왜요?' 말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지? ...여전히 사회생활에 적응이 더 필요하다.
이런 나 자신을 깨달았으니 복직 후엔 더 잘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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