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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이 뚜렷한 ADHD학생

개성을 살리면 제 길을 잘 찾아갑니다

by 미소핀

ADHD 학생들은 공부를 잘한다, 못 한다 하기 이전에 '개성이 뚜렷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나는 어떤 학생이었냐고?


등수를 본격적으로 알 수 있는 시점부터는 전교등수가 30등 바깥으로 넘어간 적은 거의 없다. 생활기록부는 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각종 대외활동으로 엄청나게 채웠다. ADHD와 함께한 학창 시절,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선택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1

못하는 과목이 분명해요

잘하는 것도 분명해요


두 자릿수 이상은 암산이 안 된다. 계산 실수가 잦다. 유형 파악을 못한다. 수학 원리는 사랑하지만 문제를 못 푸는 나의 수학 실력은 안타까웠다.


수학 점수는 늘 지지부진이었는데 특히 절대 틀리면 안 된다는 2점짜리 문제에 늘! 늘! 실수가 있었다. 3~4점 문항도 계산 거의 다 해놓고 끝에 간단한 사칙연산 실수도 잦았다. <쎈>같은 문제은행 책들을 풀면서도 유형 구분이 안 되었다. 늘 새로운 문제를 보는 듯했다.


10년 넘게 수학을 해도 안 되는데
앞으로 남은 1년 수학한다고 1등급이 되겠냐?

포기하고 수시 준비해라.


나는 고3이 되며 수학을 포기하고 수학을 보지 않는 수시전형으로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했고, 목표했던 그 이상의 대학입시를 성공할 수 있었다. 다만 내 개인적으로도 성공적이었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글 쓰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책 읽는 것, 남들 앞에 나서 말하는 것도 좋아했고. 학교 대표로 글쓰기 대회란 대회는 다 나가서 종종 수상하기도 하고, 서예, 토론, 말하기 등등 다양하게 상을 받아왔었다. 나의 성향을 살려 다양한 대외활동 기록을 중요시하는 입학사정관제(요즘은 학생부종합전형)로 상향 지원이 먹혔다. 아무런 컨설팅이나 사교육 없이, 부모님 개입 없이 성공한 사례라 나 스스로도 의미가 깊다. 다만 공대는 공대였기에 대학 공부는 꽤 힘들었다.


수학을 못하는 내가 공대를 간 것은 성공한 입시일까? 공학지식에 진심으로 흥미가 있고 즐거웠지만, 이를 해석하고 풀이할 때 활용할 수학이 버거웠다. 그래서 교수님께서도 어느 정도 이해해 주신 덕분에 졸업논문도 경제성을 중심으로 작성하고, 학교 공부를 제외한 시간에는 서울시청과 함께 협업한 동아리 활동이나 정책 제언 등의 활동으로 채웠다.


이과-공대라는 선택은 정말 온전한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입시와 취업을 위한 주변 사람들의 권유였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내가 정말 잘하고 좋아하는 길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늘 남아있다. 그래도 지금은 '그~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어찌 됐든 하는 연습을 했다'라고 생각한다.


+

ADHD인 사람이 전부 수학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ADHD를 공유하는 나의 친한 친구는 수학에 재능이 있었고 지금은 그 재능을 살려 수학 선생님을 하고 있다. 나의 재능이 수학이 아니었을 뿐 그 재능만 살린다면 누구보다 즐겁고 신나게 공부하고 일할 수 있다.






2

단짝이 없어요

눈치도 없어요


초등학교 시절 학생기록부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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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진단에 필수적인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의 '산만'. 다들 있는 건 줄 알았는 데 있는 사람만 있다고요?

어릴 땐 과잉행동이나 충동성도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 성향으로 시작한 서예학원에서는 나 같은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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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견들도 많지만 초등학교 2학년과 6학년 종합의견을 보면 친구 관계가 썩 좋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래 관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도 단짝이 없었던 기간이 더 길었다.(아니 거의 다?) 12년 학교생활 중 함께 어울려 다니는 무리가 거의 없을 정도였는데, 초반에는 공감능력과 눈치 제로인 행동 때문에, 고등학생 시절에는 반장/부반장 타이틀로 인한 정의감(소외된 친구들 챙겨야 한다, 공정해야 한다는 책임감 등)때문에 스스로 혼자이길 자처했다. 중학생 때는 외로움을 많이 느끼기도 했지만 그 고독만큼 공부가 재미있었고, 고등학생 때는 사회화가 더 된 건지, 지위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 건지 그리 외롭지는 않았다.


봉사위원, 부반장, 반장, 방송부, 합창 지휘자, 동아리 회장 등등 타이틀을 달 수 있는 일이라면 다 좋아했다. 막연하게 통제감을 갖는 것에 흥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좋아했고, 관심받는 것도 좋아했다. 반장으로서 100점 반장은 못 되었고, 사회화의 문제인지 눈치의 문제인지 할 말은 다 해야 했다. 친구들 사이에선 '0줏대(주관이 강력하여...)'로 불렸는데, 하루는 '전설의 no눈치'라고 불린 사연이 있는데...


나는야 반장, 우리 반 친구들이 담임선생님께 억울하게 혼난 날이 있었다.
평소 감정적이던 선생님 특성상 상황을 제대로 알아보시지도 않고 다짜고짜 큰 소리로 호되게 혼이 난 상황이라 반 아이들 모두 꽤 화가 났었다.

상황을 제대로 알게 된 선생님께서는 부끄러우신 건지 사과 한 마디 없이 냉랭했고, 며칠 뒤 대뜸 나에게 피자 파티를 준비하라는 말씀을 하셨다.(사과의 제스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반장과 친구들은 기대감에 차 있었는데, 나는 화가 났다.

"선생님 저희한테 할 말 없으세요?"
"뭐?"
"사과는 하시고 넘어가야죠."
"(친구들 화들짝) 야야... 줏대 좀 말려봐..."
"아니, 선생님. 사과는 하셔야죠."

분위기는 급랭. 피자마저 차가워진 야자시간이 되었다.

�피자는 �피자고, �사과는 �사과 아닙니까?


대학시절에는 친한 사람들의 무리가 생기고, 연애도 하며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큰 성장을 이뤘다. 가족과 떨어져 외지에 혼자 떨어져 있는 상태라 혼신의 사회성을 짜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그 과정에 울고, 상처받기도 했지만 그 쯤하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부모님께서 나의 친구관계나 사회성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으셨지만, 집에서라도 잘 배우면 훨씬 좋아질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ADHD 환자 중 유난히 대인관계가 힘들다면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이나 사회성기술 향상 프로그램 등 이를 향상할 방법은 다양하니 필요시 알아보자!


+

정의감도 ADHD의 특성 중 하나라고 한다. 감정 조절과 충동 조절의 어려움으로 부당함이나 불공정한 상황에 즉각적으로 항의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특성이 있다. 일부 ADHD 환자들은 높은 공감 능력으로 타인의 고통이나 불공정한 대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3

잘 안 들려요

진짜 안 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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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집중하고 있으면 주변 소리를 잘 못 듣는 편이다. 이 집중력은 선택적이어서 원하는 곳에 집중하고 있으면 주변 상황이 차단되는 장점도 있었다. 쉬는 시간 교실이나 등하교 시간 버스에서 공부를 하거나 단어를 외우는 등 집중하기만 하면 주변 상황이 어떻든 시간을 잘 쓸 수 있었다.


문제는 '들어야 할 때 잡음이 있는 상황에서의 듣기'! 그땐 집중을 하려고 해도 안 들린다.


시험문제 출제기간, 쉬는 시간 소란스러운 교무실 밖에서 선생님과 소통해야 한다.
반장인 나는 오늘 체육 시간에 체육복을 입고 체육관에 가야 하는지,
교복을 입고 교실에 있어야 하는지 체육 선생님께 물어야 한다.

복도에서 들리는 친구들의 소리, 교무실 내의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섞여 있는 상태에서 아무리 들을래도 체육 선생님의 답변이 들리지가 않는다.
"~~~~~하더나~"
"~~~~~하더나!!"
"~~~~~하더나!!!!"
똑같은 말을 세 번이나 하시는데 도무지 들리지가 않았고, 그땐 뭐가 부끄러웠는지 울며 겨자 먹기로 알아들은 척하고 반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에게 교실에서 있으랍디다 하고 앉아 있으니 체육관에서부터 체육 선생님이 화가 난 채, 반으로 오셨다.

내가 들을래도 도무지 듣지 못했던 그 말은,
"내가 언제 체육복 입지 말라 하더나!('체육복 입고 체육관으로 가라'는 뜻)"였다.


시험을 볼 때도 여러 잡음부터 다른 시험문제 내용 등에 정신이 빼앗겨 듣기 문제를 놓치기도 했다. 틀리면 안 될 국어, 영어 듣기 문항도 나에게는 고난도였다. 고등학생 때는 진지하게 청력 장애를 의심할 정도였으나 청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지금도 어떤 이유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집중해서 듣고 있을 때에도 상대방의 말 중 어떤 단어나 단어들이 이상하게 들릴 때가 잦다.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인지, 음성을 처리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유난히 그런 실수가 잦아서 업무 통화에도 예민한 편이다. <매일매일 성장하는 뇌>에서 다양한 음소 등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좋다고 하여 지금도 스페인어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어떤가, 우리 주변에 한 둘 있을 것 같은 학생이지 않은가? 왜냐하면 진짜 한 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ADHD 환자 비율은 10~20명 중 1명이니 반에 둘셋도 있었을 터.


학생이라면 당연 공부가 중요하겠지만서 학습과 성적에만 집중해서 ADHD인 학생을 이야기하기엔 부족했다. ADHD 환자이지만 나는 공부를 콘텐츠처럼 느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흥미를 느꼈고, 기가 막힌(negative) 암산이나 계산 능력에 비해 암기력은 쓸만했다.(수학도 공식을 외워서 품) 그러나 ADHD 특유의 집중력 편식으로 난독증이나 공부 자체에 집중이 어려운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는 한국 입시 한정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학생 개인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에 자유로운 진로 탐색이 가능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아쉬움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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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운 자기계발 중독 엄마작가
성인 ADHD여도 육아와 자기계발은 계속된다

작품 제안은 jennifer711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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