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에게 좋은 엄마, 멋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어린이집에서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을 만나며, 세상에는 참 다양한 부모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영상에 보수적인 우리 집과는 다르게 학습을 목적으로 영상을 잘 활용하는 부모. 아이가 어떤 장난과 사고를 쳐도 웃으며 잘 받아주는 부모. 아이의 건강한 식단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부모.
몇 가지로 나누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정말 넓은 스펙트럼의 육아관과 양육태도를 지닌 부모들을 만날 수 있다. 학교나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 이상이다. 옳고 그름이나 착하고 나쁘다는 구분이 되지 않는 각양각색의 부모들 중 나는 어떤 사람일까?
매일 같은 시간에 어린이집에 어린 두 딸을 등원시키기 위해 준비를 하지만, 그 매일이 다르다.
옷이 마음에 안 든다며 알몸으로 진격하는 아이.
오늘따라 도무지 먹지 않거나 다 먹고도 계속해서 이것저것 간식을 더 달라는 아이.
나가자는 때에 굳이 굳이 응가하겠다며 화장실로 가서는 소식이 없는 아이.
오늘따라 눈 뜨면서부터 계속 징징거리는 아이.
화장하고 옷 갈아입고 있는데 계속 달려와 고자질하는 아이.
평소에는 혼자서 잘 씻고 입는데 오늘따라 파업하고 놀기만 하는 아이.
우리 집엔 겨우 두 아이가 있지만 매일 매시간 매분초 다른 아이들이 집에 있다.
짧다면 짧은 그 1시간이 나의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다. 돌아가는 시계 분침을 보며 나는 마음이 달아 아이들을 재촉하지만, 재촉하면 재촉할수록 아이들은 더 느긋해지니 엄마들은 주의할 것! 그중에 어느 날에는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는 날도 있지만 나 스스로도 의문이 남는다.
'오늘은 좀 꾸미고 싶은데?' 하며 화장대 앞을 떠나지 못하는 나.
휴대폰에 시선 고정, 세수부터 옷 갈아입기까지 준비 속도가 지지부진한 나.
설거지에 꽂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설거지하고 있는 나.
오늘이 무슨 날이었는데 한참을 고민하다가 둘째 소풍 가는 날인 것을 알고 원복을 뒤늦게 꺼내는 나.
아이들 준비물을 현관 앞에 챙겨두고도 잊고 나온 나.
아이들 준비물을 다 챙기고 출발... 아니 차키를 두고 나온 나.
등원 준비를 하는 상황을 함께하는 것이 나와 두 딸이다 보니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해 줄 사람이 없었다. 한 때 갈등이 최고조를 찍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나의 시간 약속에 대한 강박과 나 스스로의 통제가 안 되는 상태가 문제였다.
많은 ADHD 환자들이 시간 관리를 어려워하는 편이고 시간 약속에 무감각한 케이스도 있지만, 나의 경우 시간감각은 떨어지지만 시간 약속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1~2분만 늦어도 '실패했다'라는 생각이 나고, 약간의 강박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나의 사회생활에 있어 그런 강박은 나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었겠지만, 아이에게 이 과정이 긍정적일 수 없었다. 때로는 가혹할 정도로 감정적으로 대하고, 아이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상처를 주는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어린이집 5분 정도 늦는 게 무슨 대수라고 나는 아이에게 그런 모진 말을 했던 걸까.(심지어 등원시간도 여유 있게 맞춰 가는 편) 하지만 당시 나는 현명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엄마 휴대폰 좀 보지 마"
한때 매일같이 등원이 늦어지길래 고민이라, 첫째에게 어떻게 해볼까 하며 물어보니 첫째가 해준 말이었다. 등원 준비하며 쇼츠를 보는 습관이 있었고, (아이 몰래 본다고 화장대 위에 올려두었지만) 아이는 다 알고 있었다. 아이의 말을 듣고 아침시간 쇼츠를 차단했고(겸사겸사 그냥 쇼츠를 다 차단했다) 아침 시간이 한층 여유로워졌다.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때는 4시간도 10분처럼 느끼는 나라서 무심결에 보는 쇼츠 시청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는 줄을 몰랐다. 아이의 통찰력 있는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아직까지도 전쟁이 이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 아이들과 시간을 통제하고 싶어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통제할 줄 모르는 엄마였다. 성장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부족해서 다른 집보다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하고, 아침 시간 휴대폰 사용은 최대한 자제한다.
그럼 문제가 다 해결되었느냐? 그건 아니다.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아오며 가장 자주 찾아온 위기는 '건망증'이었다. 학창 시절 준비물을 챙기는 것은 굉장히 버거운 일 중 하나였다. 엄마가 된 지금도 아이의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데 이 일이 꽤 어렵다. 매월 초 챙겨야 할 새 칫솔, 소풍과 같은 외부 행사날 입혀야 할 원복, 월요일에 챙겨야 할 낮잠 이불. 늘 똑같은 준비물도 챙기기가 어렵다.
첫째 어린이집에서 '여벌옷 중에 상의가 더러워져서 상의만 새 걸로 하나 챙겨주시고, 낮잠 잠옷도 새 걸로 챙겨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집에 오면 '상하의 중 어느 옷을 달라고 하셨지?' 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상하의를 다 챙겨 넣는다. 그리고 그다음 날엔 차에 그 옷들을 놔두고 아이만 덜렁 보냈다.
약 도움을 가장 많이 받은 부분이 "준비물 챙기기"였다. 바쁜 등원 준비 시간, 작업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순간들이 잦은데, 나의 작업기억 공간은 너무나도 협소하다.
'작업기억'이란 머릿속 화이트보드라는 비유를 한다. 이 화이트보드에 '준비물'을 적어두고 등원 준비를 하다 보면 '양치시키기', '설거지하기'와 같은 다른 행동을 위한 작업기억 공간이 필요하니 기존에 적어둔 '준비물' 기억이 빠르게 잊히는 것이다. 약을 먹으면? 이 화이트보드가 꽤 넓어진다.
약을 현재 중단한 상태로 약을 먹는 동안 준비물을 잘 챙기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했었다. 다행히 외출 시 필요한 지갑, 차키, 휴대폰은 잘 챙기는 습관이 정착되었는데, 아이들 준비물은 아직 버벅거리는 날도 있고, 플래너 도움을 받고 있다. 약의 도움을 받든, 습관의 도움을 받든. 아직까지는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등원 시간에 늦는 것은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 늦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서 준비물 실수는 워낙 잦아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부끄럽고 민망하다. 학부모로서 나는 좋은 엄마, 멋진 엄마이긴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보통 '아이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고들 한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 나를 검열하고 평가하게 한다.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를 보면서 나의 결점을 발견하면 어쩌지, 그래서 우리 아이를 싫어하시면 어쩌지 하는 미성숙한 생각. '이 엄마는 아이를 이렇게밖에 못 키우네.' 하는 나쁜 생각을 선생님께서 하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 나쁜 생각을 하기 때문이겠지.
나는 여전히 좋은 육아에 대한 답을 찾고 있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지금의 나는 나쁜 엄마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나의 능력보다 욕심이 더 클 뿐. 그렇다고 그 욕심을 다 채우면 진짜 좋은 엄마일까? 애초에 그 욕심을 다 채우지도 못할 것이다. 나만 그럴까? ADHD를 앓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엄마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게 ADHD 탓할 필요도 없네, 그냥 그런 거네.
세상 모든 부모들의 색깔은 각양각색이다. 각자의 고민과 욕심, 결핍과 실수가 있겠지. 나의 장점은 원한다면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과감함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반성에 꾸준히 성장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바라건대 아이들이 나의 단점이 아니라 그 단점 속에서 계속해서 도전하는 용기와 매일 성장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욕심을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 당장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죄책감보다는 좋은 엄마로 나아가는 이 과정에 집중해 보자. 매일매일의 성적표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목표로 하는 이 방향성에 힘을 더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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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운 자기계발 중독 엄마작가
성인 ADHD여도 육아와 자기계발은 계속된다
작품 제안은 jennifer7113@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