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 02

by 세인트

누가 같이 저녁을 먹자 하여 그가 즐겨 찾는다는 한정식집에 갔다. 운치 있는 고풍스러운 한옥에 들어서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중년의 주인 여자가 마당까지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초대한 사람이 단골손님이어서인지 주인이 곁에 앉아 직접 술을 따라 주었다. 소개에 따르면 주인은 가야금 연주자로 제법 유명했으며, 식당은 한때 명사들이 자주 찾던 곳이라 했다. 그러나 그날은 주말저녁이었음에도 손님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주인은 벽에 기대어놓은 가야금을 무릎에 올리고 연주를 했다. 밥을 먹으며 가야금 연주를 듣다니 마치 내가 사극드라마에 나오는 인물이 된 것 같았다. 호사스러운 느낌이기도 하고 어색한 기분도 들고 무엇보다 대체 밥값이 얼마이기에 가야금 연주까지 들려주는 것일까 싶었다.


연주를 마치고 다시 옆에 앉아 술 한잔을 따르며, "예전에는 연주비만 따로 40만 원 정도 받았어요"한다. 내 궁금함을 눈치챈 것일까? 묻지 않은 대답을 한다. 무슨 뜻일까. 눈치를 보아하니 말 그대로 '예전에는 그랬다'는 것 같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는 두 명의 기타리스트가 나온다. 한 사람은 겉보기에도 궁색한 초로의 늙은 기타리스트. 그는 기타 하나를 매고 집도 절도 없이 이곳저곳 싸구려 여인숙 같은 데에서 묵으며 기타 연주를 팔아 연명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젊은 기타리스트. 그는 학창 시절 멋진 기타 솜씨로 여학생들의 우상이었으나, 이제는 늙은 기타리스트와 함께 룸살롱에서 남녀가 뒤엉켜 벌거벗고 노래하는 취객들에 맞춰 팬티만 걸친 채 기타 반주로 품삯을 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여인숙 라디오에서 나오는 지미핸드릭스의 기타 소리에 젖는다. 삶이 신산하니 기타리스트가 된 것을 후회할 만도 하건만, 여전히 '죽이는 지미핸드릭스'를 놓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돌아갈 수 없기에 붙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장면. 어느 날 밤, 젊은 기타리스트는 술집여자에게 자신의 죽은 옛 애인과 닮았다고 한다. 술집여자는 눈물범벅이 되어 슬픈 사연을 가진 기타리스트 오빠가 슬프지 않게 그의 품에 안긴다. 기타 치는 오빠는 기타 연주도 낭만적이지만 사랑의 이별도 슬프도록 낭만적인 것을. 덕분에 화대비 한 푼 안 내고 여자를 품는다. 낭만의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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