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벤치
보호막에 들어선다. 그 안 기다란 벤치에 앉는다. 따뜻하다. 진녹색의 차가운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절로 앉게 만든다. 벤치는 막대자석, ‘따숨쉼터’라는 따뜻한 이름의 보호막은 자기장, 내 엉덩이는 쇠붙이.
밀폐된 공간의 지하철 승강장에서와 달리 추운 겨울에도 버스를 타려면 노상의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내가 사는 구(區)의 버스 정류장은 겨울이 올 때마다 외투를 걸친다. 안온한 공간이 된 정류장은 자기 품안으로 예비 승객들을 받아들인다. 투명 외투이니 예비 승객들은 따뜻한 벤치에 앉아, 버스 도착 대기 시간을 알려주는 외부 전광 표지판을 올려다보며 버스를 기다릴 수 있다. 동행이 있는 예비 승객들끼리는 자연스레 대화가 오간다. 나도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하늘과 전광 표지판을 내다본다. 장갑을 꼈으면서도 엉덩이와 손바닥을 벤치에 부착시킨 채.
춥고 눈 내리는 날의 따숨쉼터 안은 더 안온하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공간의 시학』에서 인용한 소설가 앙리 보스코의 말, “피난처가 안전하면, 폭풍우도 좋은 것이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눈은 추운 존재이기만 할까.
따뜻한 눈
모처럼 눈 내리던 날, 따끈한 순댓국으로 배를 채운 뒤 눈을 맞으며 산책을 했다. 경춘선 숲길의 시작 부분에 있는 경춘철교를 향해 걸었다. 철길 따라 양쪽에 줄지어 있는 미루나무는 추운 겨울인데도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철길과 미루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은 고풍스럽기까지 하다.
비와 달리 눈은 느릿느릿 떨어진다. 각각의 눈송이는 그 가벼운 몸통에도 나름 무게를 지니고 있어 중력의 영향에 승복한다. 다만 가벼우니 바람이 약하게 불어도 공중을 떠다니다 땅에 떨어진다. 기체 상태로 올라간 물은 대기 상태에 따라 고체의 눈이 될 수도 액체의 비가 될 수도 있는데 눈이어서 좋다. 비는 사계절 볼 수 있지만 눈은 겨울에만 볼 수 있으므로.
외진 곳에서는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도심에서는 그 소리 듣기가 힘들다. 대신 소음의 데시벨 치수를 낮춰준다고 할까. 그물코가 있는 어망 같은 눈송이들이 덩치 큰 소음을 가두어서 땅이라는 갑판 위로 내려트리는 것이다.
눈은 냉기를 동반한다. 추운 곳에서 눈은 세력을 확장한다. 또 차가운 눈은 따스한 햇살보다 더 폭넓게 대지와 도심을 점령하기도 한다. 햇살은 사람, 나무, 건물이 앞에 있으면 그 대상에게 그림자를 붙이면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반면 눈은 대상뿐 아니라 그 대상의 그림자에도 내려앉는다. 내려앉아 품어 안는다.
눈은 하늘이 풀어 내려트리는 흰색 실이다. 대지와 사람, 사물을 뒤덮으며 하얀 외투를 입혀 준다. 내 방 창밖, 맞은편 빌라의 옥상 텃밭 식구들인 화분들에게도 하얀 옷과 모자를 개개별로 챙겨준다. 비는 대지를 적시지만 눈은 대지를 감싸안는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 마음까지 감싸안는다. 냉기를 품고 있으면서도, 얼어붙고 삭막해진 우리네 마음을 녹여주고 풍요롭게 만드는 마법을 발휘한다. 따뜻하게 감싸안아 우리 마음을 마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듯 바꿔놓는다.
눈 밟는 소리를 오랜만에 들었다.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뭉개진 눈은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낸다. 참깨를 짜서 참기름을 만들 듯 평소에 들을 수 없는 귀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눈은 촉각뿐 아니라 시각, 청각까지 느끼게 하는 하늘의 선물이다.
추운 철길 따라 눈 산책하고 나니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설레듯 외딴곳을 여행하고 온 느낌이다. 눈 덕분에 내 마음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