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으로 매운맛의 라면을 끓여먹고 나서, 뜨거운 물을 적게 타 진해진 ‘카누’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매운맛과 진한 맛이 조촐한 아침상을 이루었다.
그저께 마트에서 눈에 띄어 사게 된 ‘틈새라면’. 전에 사다 먹은 기억이 없는, 매운맛을 자부한다고 해서 손에 집어 든 라면.
나는 라면 중 ‘삼양라면 오리지널’의 애호가다. 라면 하면 삼양라면밖에 없던 시절을 산 덕분에 지금까지 찾는다. 마라톤 영화 <페이스메이커>에서 주인공 주만호(김명민 분)가 친구 치킨 집에 얹혀사는 와중에 밥이 떨어져 라면을 먹게 되었으면서도, “나는 세상에서 삼양라면이 제일 맛있어.”라고 말해준 덕분에 무언으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낯선 손님으로 데려온 ‘틈새라면’ 다섯 개들이 포장지에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이런 설명은 처음 본다. 대충 계란 풀어 라면을 끓여먹던 나는 이 설명에 어느 정도 걸맞게 끓여보았다. 맛있었다. 그리고 정말 매웠다.
그런데 그 설명에는 내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식감’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식감(食感)은 말 그대로 “음식을 먹을 때 입안에서 느끼는 감각”이다. 요리를 거의 하지도 않고, 티브이 방송에서 맛집 프로그램이나 음식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일이 없는 나에게 이런 프로그램에서 자주 사용되는 식감이라는 단어는 낯선 풍경의 일원이다. 그래도 신선하긴 했다.
식감을 접하다가 문득 ‘식상하다’의 ‘식상’ 한자가 궁금했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짐작한 대로 ‘먹을(또는 밥) 식(食)’자를 쓰고 있다. ‘食傷하다’이다. 보통 “일이나 사물이 되풀이되어 질리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어떤 음식을 자꾸 먹어 물리다”라는 뜻에도 사용한다. 그런데 ‘다칠(또는 근심할) 상(傷)’자다. “먹는 일에 근심이 있음”이라고 해석해보았다. 먹기 싫은 음식이다. 식감이 있는 음식과 반대다. 치킨집 사장이 친구들과 회식할 때 회식 장소로 치킨 집은 절대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식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운맛을 선호한다. 커피는 진한 맛을 찾는다. 카페에 가게 되면 으레 미니 찻잔에 소량으로 든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뒤 홀짝홀짝 음미하며 마신다. 그런데 미각(맛)에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의 네 가지가 기본이다. 뜻밖에도 매운맛은 포함돼 있지 않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네이버 사전엔 “입 안 점막을 자극하였을 때 느낄 수 있는 알알한 맛”이라고 나와 있다. 특정한 상태에서 느껴지는 맛일 뿐, 우리가 무척 많이 사용하는 단어일지라도 기본 맛은 아닌 것이다. ‘진한맛’이라는 표준어는 아예 없다. 다만 ‘진할 순’이라는 한자가 들어간 ‘순미(醇味)’라는 단어가 있고 “본디 지닌 그대로의 순수하고 진한 맛”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더한 것이 아메리카노이니 아메리카노보다는 에스프레소가 순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미각(味覺)’이라는 단어 풀이에 처음 보는 단어가 들어 있었다. “(미각은) 주로 혀에 있는 맛봉오리가 침에 녹은 화학 물질에 반응하여 일어난다.” 중 ‘맛봉오리’가 그것이다. 역시 찾아보니 “(주로 혀의 윗면에 분포한) 미각을 맡은 꽃봉오리 모양의 기관”이라고 나와 있다. 혀에 꽃봉오리라니!
나는 사전을 많이 찾는다. 직업상 번역할 땐 외국어 사전은 기본이고, 국어사전도 무척 많이 이용한다. 모르는 단어뿐 아니라 알고 있는 단어도 부러 찾아 확인한다. 올바른 단어를 사용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쓴 글에 정확하거나 적확하지 않은 단어가 들어가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국어사전을 뒤적이다 보면 신선하거나 생경한 단어와 표현, 풀이를 선물처럼 얻기도 해서 쏠쏠한 재미를 맛본다. ‘미각’을 찾으면서, ‘미감’이라는 단어가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찾아보았더니 정말로 ‘미감(味感)’이 있었고 ‘미각’과 뜻풀이가 똑같았다. 예전 내 브런치 글 ‘초승 낮달’을 쓰다가 찾은 ‘초승달’의 뜻풀이도 그러했다. “초승(음력으로 그달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 동안)에 돋는, 눈썹처럼 가는 조각달”. 예쁜 표현이다.
이렇게 사전의 단어들이 글을 이끌어내곤 한다. 그런데 이번 글은 라면 하나를 끓여먹으려 했던 순간에서 비롯됐다. 라면이 단상을 이끌어낸 것이다. 내게 브런치 글쓰기는, 식상한 나날에 뭔가 식감 있는 음식을 요리하려 하고 그걸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내 브런치는 자주 이왕이면 제대로 차리고 싶은 식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