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시내에서 도산서원까지 가는 버스는 녹색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 지상의 배다. 7월 초순의 짙푸른 산과 들판, 논밭을 부러 버스 맨 앞 ‘선장님’ 옆자리에 앉아 바라봤다. 아니 그 속을 물고기처럼 유영했다. 목적지만큼 다시 보고 싶었던, 예전 시골학교 등교 시간이 그랬듯 한 시간 가까운 ‘서원 등굣길’이었다.
표를 끊고 서원까지 걸어가는 길은 왼쪽 숲의 솔바람 소리와 그 아래 초목 잎사귀들이 서로 비벼대는 소리가 합쳐진 경이로운 연주 소리를 오른쪽 저 아래 안동호를 바라보며 귀담아듣는 콘서트 무대다. 소리 정체를 밝히려 한참을 서서, 벤치에 앉아서 들었다. 분명 다른 여행지의 바람소리와 다른, 피아니스트가 뿜어내는 피아노 선율을 잔잔히 북돋아주는 현악기들 소리 같았다고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다.
도산서원 내 퇴계 선생이 기거하던 도산서당의 참새들은 플루트나 피콜로같이 톡톡 튀는 소리를 낸다. 사방이 조용한 무대 한가운데서 자신감 넘치게 노래하는 성악가의 목소리 같다. 도회지의 참새와 달리 이곳 참새는 사람 곁에 한참을 머물다 갈 줄 안다. 그렇게 기개가 넘친다. 서당 마루에 앉아 들보나 흙담에 올라앉아 노래하는 참새를 지켜보았다. 아, 그때 알았다. 참새도 실수를 한다는 것을. 바로 앞에 날아가는 곤충을 단번에 잡지 못하고 땅바닥까지 내려와 이리저리 쫓다 결국 놓치고 마는 모습을 보았다. 쟤네들도 먹고살려고 무진 애를 쓴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도산서당에서 식수로 쓰던 우물의 이름은 ‘열정’이다. <역경>의 문구에서 의미를 취하였다고 하지만 나는 퇴계 선생이 말놀이를 하셨구나 생각했다. 이곳 우물은 ‘열정(冽井)’이지만 나는 ‘열정(熱情)’을 떠올린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더욱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冽’ 자는 ‘맑다’, ‘차다’라는 뜻의 한자다. 이곳 표지판에도 영어 명으로 ‘clean, cold well’이라고 번역했는데 그러니까 ‘맑고, 찬 우물’이라는 뜻이다. 반면 ‘熱’ 자는 ‘덥다’, ‘따뜻하다’라는 뜻의 한자다. 정반대 뜻의 ‘열’ 자다. 얼마나 멋진가? 이 서당에서 찬 우물물 마시고 머리를 깨워 따뜻한 마음과 본성을 길러 가면 되지 않겠는가? 잠시 뜻을 덧붙여 놀아 보았다.
도산서당에는 다른 서원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장소가 있다. 퇴계 선생이 유생들에게 설하던 마루가 그렇다. ‘암서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마루에 쪽마루가 덧붙여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고 나중에 제자 하나가 만들어 드린 것이다. 베란다를 없애고 거실을 넓히듯 마당을 줄이고 쪽마루를 덧붙이고 지붕도 덧붙였다. 더 많은 유생이 앉도록 한 것이다. 거실과 마루는 공간 활용상 같은 의미의 장소다. 그런데 거실을 넓히는 것은 호사로운 행위인 반면 마루를 넓히는 것은 너그러운 행위이다. 더 많은 유생들이 과거급제가 아닌 학문을 닦고 인격을 기르는 일을 돕기 때문이다.
한 달 전부터 새 책 번역에 들어갔다. 문득 건방지게도 도산서원 내 퇴계선생이 머물던 완락재, 암서헌 그리고 유생들이 머물던 시습재, 관란헌처럼 내 방에도 이름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역운재(譯雲齋)’라는 이름을 지었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 사물인 구름을 번역하는 방 그러니까 구름처럼 붙잡을 수 없으면서 형용하기 힘든 외국어를 윤곽이 드러나게 번역하는 방이라는 뜻에서다. 5xx호로만 불렸는데 제대로 된 이름을 덧붙인 것이다.
한 달 동안 긴 장마와 일정에 대한 노파심에 어딜 가지 못하고 번역에 몰두했다.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듯해 오늘 하루 내게 휴가를 주고 벼르던 이 글을 썼다. 덕분에 3개월 동안 못 쓰리라 여겼던 브런치 글 하나 잘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