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찾으려면 많은 경우 건물 중앙에 설치된 2층 높이의 직사각형 모양 대형 내벽을 타야 한다. 1층과 2층 각각 절반 높이의 서가 두 개 층, 총 네 개 층의 서가가 이 내벽을 완전히 뒤덮고 있다. 이곳을 이 도서관에서는 '타워자료실'이라고 부른다. 내부 공간의 아름다움에 유혹돼 들어온 나는 재미 삼아 내 번역서 한 권을 검색하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찾아 나섰다.
한쪽 벽 측면에 설치된 철제 계단을 올라갔다. 각 서가 층마다 난간이 설치된 복도가 ‘ㄷ’ 자 형태로 서가를 에워싸고 있어 이 복도를 타고 돌았다. 난간 너머로 도서관 내부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서가 배치를 정말 멋지게 해 놓았다.
사다리 같은 계단은 발을 들여놓는 층계와 층계 사이가 트여 있고 철제 난간도 조립형이어서 사방으로 시야가 뜨여 있었다. 그리고 서가마다 여백 공간이 많았다. 한 마리 거미가 되어 벽을 타며 틈이 넓은 거미줄을 놓는다고 할까. 내 책을 확인했다. 근처에서 호기심 가는 책도 발견했다. 그리고 복도를 돌아 계단을 내려왔다. 이날 발견한 책을 나는 서울 올라가서 바로 구입했다.
수덕사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계단이 많다. 사찰이 덕숭산 오르막길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작은 계단을 올라 일주문과 금강문을 지났다. 사천왕문 앞의 계단과, 웬만한 절에서 밑으로 지나가게 지어진 누각(황하정루)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이 다른 절에 비해 층계가 많았다. 그리고 대웅전 앞마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제일 층계가 많았다. 이날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수덕사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은 ‘단계적으로 높아지는’ 계단길이기도 했다. 오를 생각도 안 했지만 내려와 정류장에서 지도를 보니 수덕사와, 덕숭산 정상에 있는 정혜사 사이에는 ‘벽초 스님의 1080돌계단’이 있었다. 오를 생각만 해도 다리가 후덜덜 떨릴 것 같다.
이번에 다른 계단을 소개한다. 계단식 논이다. 수덕사를 둘러본 다음날에는 수덕사에서 가까운 덕산도립공원을 유람했다. 땡볕 아래에서 땡볕을 피해가며 몇 시간을 걸었다. ‘목음창호전수관’, 옥계저수지를 목적지로 정하고 드문 이정표를 따라 대책 없이 걸었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길이기도 했지만 시골길을 거니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걸어 들어간 만큼 걸어 나와야 하는 걸음걸이를 여행 때 많이 한다. 도심에서는 드문 한적함과 느긋함, 자연의 결을 마음껏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물 댄 계단식 논이 눈에 들어왔다. 차도를 따라 오르내리며 계단식 논을 바라보았다. 경사진 곳을 효율적으로 개간하는 방식. 계단식 논은 제일 밑의 논부터 차근차근 일구었을 것이다. 논물이 넘치지 않도록 턱을 세우는 수고를 해야 했을 것이다. 평야지대인 예산에도 계단식 논이 있었다.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어딜 가나 계단을 볼 수 있다. 특히 기차역과 지하철역에는 움직이는 계단인 에스컬레이터가 잘 구비돼 있다. 사전에는 ‘자동계단’이란 순화된 표현이 나온다. 사람이 아니라 계단이 오르내린다. 이 계단에서는 걷거나 뛰지 말고 멈춰 서 있는 것이 미덕이다. 엘리베이터는 계단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든다. 도심의 이런 수단은 편리하지만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계단이 옆에 있어도 이것들을 먼저 찾는다. 그런데 도심의 ‘수동’이 ‘능동’이 되는 경우가 있다. 건강을 위해 계단 걷기를 실천할 때다.
계단의 역할은 사람이 걸어서 오르내리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높은 서가에서 책을 찾았으면 가지고 내려와야 한다. 산속 절에 올라가 마음을 챙겼으면 중생이 사는 저잣거리로 내려와야 한다. 농부는 계단식 논을 오르내리며 모든 논을 공평하게 보살핀다.
오름과 내림 중 한쪽 기능만 전용인 경우가 대부분인 에스컬레이터는 반쪽 기능의 계단이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서 내려올 줄 모르는 지도자는 오르지 말아야 할 지도자다. 내려가서 올라오지 않는 사람은 절망과 죽음에 기대는 사람이다. 예전 글에 소개한 영화 <씨 오브 트리스>에서 주인공은 자살을 위해 들어간 죽음의 숲속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때 일본인 동행이 들려준 일본어 단어 중 ‘카이단’(계단)을 겨우 기억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어느 자살자의 짐에서 얻은 무선 호출기로 ‘카이단’을 외쳐댄다. 이 단어를 전해들은 구조요원들이 계단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온다. 주인공은 살기 위해, 움직일 수 없어 데리고 오지 못한 일본인 동행을 구조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구조하기 위해 숲속 계단을 오른다.
감정도 오르내린다. 생체리듬도 오르내린다. 의욕과 사기도 오르내린다. 심장 박동 측정기의 시그널이 오르내림이 없고 직선으로 이어진다면 생명이 다했음을 뜻한다. 오르내림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두근거림이다. 계단을 오르내리다 힘들면 계단참(층계참)에서 잠시 쉬면 된다. 쉬면 힘이 다시 솟는다. 마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