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와 오로라

by 박태신

다이아몬드를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를. 바로 ‘겨울의 다이아몬드’다.


일요일 저녁 ‘서울생활사박물관’을 산책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낮게 깔린 어둠을 밝히는 무릎등을 지나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생활사박물관에서 보이는 하늘은 많이 넓다. 마당이 넓기도 하고 주변보다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중·고층 빌딩이 근처에 있어서 조금 과장되긴 하지만 천문대의 돔 영상관에 와 있는 것 같다. 의자를 뒤로 눕히고 내 몸도 눕혀서 올려다보는, 180도 각도의 천장 스크린이 있는 곳.


이날 7시쯤 하늘 중천에 떠 있던 달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칼로 정확하게 반을 잘라 수박 모양이 된 정월의 ‘정(正) 반달’이었다.


동남쪽 하늘을 올려다보고 이번 겨울, 맑은 날이면 형체를 가늠해보곤 하는 오리온자리를 찾았다. 모래시계 닮은 오리온자리 허리 부분의 삼태성을 찾아내면 기분이 좋아진다. 도심의 하늘에서는 정말 잠시 눈을 뚫어지게 쳐다봐야 나란히 놓여 있는 세 개의 별을 찾을 수 있다. 오리온자리의 별 베텔게우스와 리겔은 1등급 이상으로 밝아 쉽게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은 시리우스인데 등급 앞에 마이너스(-)가 붙을 정도다.


『별 헤는 밤 천문우주 실험실』(김지현 / 어바웃어북)에서 발췌

그다음 찾아볼 것이 있다. ‘겨울의 대삼각형’이다. ‘다음’ 포털에서 ‘겨울철 별자리’를 검색하고 핸드폰에 다운로드해 놓은 위 사진을 꺼내 도움을 받았다. 시리우스, 베텔게우스, 프로키온이 역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맑은 날이라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 역시 사진의 도움을 받아서 ‘겨울의 다이아몬드’를 확인해보기로. 육각형의 꼭짓점에 위치한 밝은 별 여섯 개를 하나씩 찾았다. 정말 있었다. 밤하늘에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전체 모양이 너무도 커서 동남쪽 하늘의 3분의 1 면적은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진짜 보물을 발굴한 기분이었다. 캥거루가 배 주머니에 작은 새끼를 품고 있는 것 마냥 오리온자리를 품고 있는 겨울의 다이아몬드를 겨울이 끝나가는 시점에 만난 것이다. 돌아가는 길, 나한테 잘했다고 무언의 박수를 쳐주었다.


지난주 목요일, 노원문고에 가서 책을 한 권 구입했다. 서점에서 나와 내딛는 내 발걸음은 느렸다. 내 신발이 갑갑한 집에 가기 싫은 눈치다. 억지로 버스를 탔다. 그러다 북서울 시립미술관 주변 공원을 목격하고 내렸다. 공원을 산책하고 가면 저항하고 있는 마음이 기세를 풀리라 싶어서. 그러다 한 건물 앞에 섰다. ‘노원우주학교’. 요즘 하고 싶은 일은 바로 해버리는 습관이 생겼는데, 관람을 하기로 결심했다. 느닷없는 결심이다.


생각해보면 별을 보러 산 위에 있는 좌구산천문대도 걸어 올라갔는데, 눈앞에 서 있는 천문 관련 시설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이곳은 ‘천문우주과학관’이라는 별칭을 달고 있다. 프런트 직원이 발열체크를 한 뒤 출입증 대신 마크 적힌 리본을 내 손목에 감아주었다. 그리고 돔영상관 영상물을 관람하겠느냐고 물었다. 무슨 영상물인지는 귓등으로 듣고 그러겠노라 답했다.


3층의 ‘빅히스토리관’과 4층의 ‘코스모스관’을 관람했다. 별, 태양계, 인류 그러니까 우주의 족적을 살피고 매만질 수 있었다. 문득 우주로 치면 먼지보다 작은 지구에서, 지구로 치면 먼지처럼 작은 방에서 근심에 사로잡혀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다음 돔영상관 관람 차례. 오로라 영상물인지는 그때 알았다.

오로라를 실감 나게 본 것은 영화 <눈의 꽃>에서였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여주인공이 삶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기 위해, 이왕이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붉은색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한겨울에 찾아간 핀란드 레비. 초록색, 연두색, 핑크색의 오로라가 길고 얇고 넓은 커튼처럼, 발레 공연의 무대 휘장처럼 펄럭이며 빛 알갱이들을 지면에 늘어뜨리고 있었다.


환희였다. 돔영상관에 들어가, 위에서 언급한 눕힌 의자에 누워서 본 오로라들은. 캐나다, 핀란드 등 북극 아래 지역 나라 오로라 관광지 캠프장에서 전문가들이 동영상으로 촬영한 여러 편의 오로라 파노라마가 연속해서 펼쳐졌다. 영상 속에는 서서 또는 나처럼 누워서 탄성을 자아내는 여행객들의 모습도 영화 속 자막 위치에 같이 담겨 있었다. 이들의 탄성은 끝이 없었다. 느린 휘몰이 같은, 키다리 요정들의 춤 같은 오로라의 향연 앞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이 자연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이로움”이라는 표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실 오로라는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1년 365일 24시간 발생한다고 한다. 태양 흑점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고온의 입자들이 폭풍처럼 방출된다. 이 입자들은 지구에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다행히도 지구는 대기와 자기장이라는 보호막을 지니고 있다. 이때 일부가 지구장의 꼬리(북극과 남극)로 몰려들면서 대기 기체와 충돌하며 생기는 현상이 오로라다.


'수호신들에 둘러싸인 아우로라' 체코 브라보, 1659년경,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aldegalerie, Vienna ⓒ 비엔나 미술사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오로라는 ‘새벽의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오스, 로마 신화에서는 아우로라로 불린다. 아우로라를 영어식으로 부른 것이 오로라다. 오로라의 역할은 새벽을 여는 일이다. 아침 해가 뜰 때 장미꽃 가득한 어두운 방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러면 별들이 달아나고 새벽이 되는 것이다. 위 그림은 2007년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전>에서 본 것이다. 주최 측의 허락을 받고 사진 이미지를 다운로드한 다음 ‘오마이뉴스’에 감상 글을 올렸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주소를 링크해서 보시길 바란다. 흥미로운 내용들이니 안심하시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12647


순간적인 선택으로 버스에 내려 만난 것이 오로라였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내 집에서 멀지 않은 이런 멋진 곳에 왜 진작 와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집에서 가까운 산책로만 우울하게 걷곤 했다. 조금만 발품 팔면 새로운 세계, 우주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겨울의 다이아몬드도 느닷없는 선물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영화 <눈의 꽃>을 다시 보았다. 오로라는 여주인공 미유키 혼자 본 것이 아니다. 사정을 알고 뒤따라 온 ‘계약상’의 남자 친구 유스케와 같이 봤다. 그것도 나중에 붉은색이 합류한 오로라를. 삶의 끝까지 다시 남자 친구가 되는 계약 갱신을 하고서 말이다. 생생한 오로라를 보고 싶다면 ‘노원우주학교’를 찾아가 보길. 여의치 않으면 분위기에 맞춰 겨울이 끝나기 전 이 영화 속 오로라를 보길. 오래전 국내 가수가 리메이크해 불러 유명해진, 이 영화 주제가의 가사도 읽어보길.


참! 노원우주학교를 들르고 집에 와 외투를 벗으려고 하는데 손목에 리본이 보였다. 웃음이 났다. 버리지 않고 책장 모퉁이에 붙여 놓았다. 그러고 보니 리본 밑에는 작년에 들른 좌구산천문대의 관람권이 붙어 있다. 그렇게 둘은 내 방의 별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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