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한 해 마지막 날에 해넘이 명소를, 새해 첫날에 해돋이 명소를 찾는다. 그리고 각자의 소망을 기원한다. 2020년 12월 31일과 2021년 1월 1일엔 그런 명소들의 출입이 차단됐다. 나는 그런 날에 애써 명소를 찾은 일이 없다. 해넘이는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까. 이왕이면 덜 북적거리는 곳에서 보는 것이 좋으니까. 이번 글에서는 올해 마지막 날을 기해 내가 만난 해넘이를 모아 선사하고자 한다. 일몰, 석양이라는 단어를 써도 좋지만 이번엔 해넘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했다. ‘해넘이께’란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무렵을 뜻한다.
올해 10월, 동생들과 같이 인왕산에 올랐다. 나의 삼형제는 가끔씩 다른 가족들을 제하고 셋이서만 만나 회포를 푼다. 우리만 통하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어 좋다. 12월 초 연말에 내 방에서 셋이 조촐한 송년회를 가질 계획을 세웠지만 물론 무산되었다.
인왕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해넘이를 목격했다. 가까운 하늘엔 불새 형상의 구름이 활공을 멈추고 있었고, 지는 해 주변의 구름은 장관을 연출하는 조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운행 횟수가 크게 줄어든 여객기가 김포공항을 배회하는 모습도 해넘이께 볼 수 있었다.
2014년 부산에서 살 때의 해넘이다. 대학원 졸업하던 날, 지인의 권유로 다대포해수욕장에 가서 자축하고 있을 때 만났다. 요즘 다시 부상하고 있는 가덕도 너머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은 내가 본 최고의 해넘이였다.
2019년 5월 풍기에서 본 해넘이는 인삼 색을 띠고 있었다. 풍기 인삼 광고 옷을 덧입은 풍기역 급수탑이 해 바로 옆에서 보조를 맞춰주고 있었다. 12월 초 막내 동생이 홍삼 농축액을 보내왔다. 요즘엔 면역력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새로운 작업에 들어갈 때 먹으려고 개봉하지 않은 채 책장 한가운데 보관해두고 있다.
해넘이 하면 역시 순천만 용산 전망대에서의 풍광이 최고 중 하나다. 2018년 가을날, 사진작가들이 일찌감치 자리 잡은 곳에 나의 일행도 일찍 도착해,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의 기나긴 해넘이를 즐겼다. 이날 저녁으로 먹은 짱뚱어탕도 일품이었다.
2019년 여름 끝물의 보길도 망끝전망대의 해넘이는 아슬아슬했다. 구름의 기세가 강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해넘이의 색깔은 강렬하지 않아 보통 때와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단체여행이라 가능했지 보길도 여행은 다시 하기 힘든 경험이다.
그리고 오늘 내 방 창밖으로 본 해넘이. 올해 마지막 해넘이다. ‘이공이공’(2020)이라고 부르기도 편해 상서로우리라 여겼던 올해는 누구나 그랬듯 많은 활동에서 제약을 받은 우울한 한 해였다. 단체 버스 여행도 성탄절 풍경도 몇 시간 후에 있을 보신각 현장 타종도 앗아갔다. 그 해가 해넘이를 지나 마지막 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나는 하늘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우선 여러 날 날씨가 흐려 보지 못했던 목성과 토성을 다시 보았다. 11월 목성 위에 있던 토성은 12월 21일 목성과 겹치듯 다가가더니 이젠 서북쪽 밑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반가웠다.
그리고 삼태성이 있는 오리온 별자리. 별을 보기 시작하면서 가운데 45도 각도로 늘어서 빛나고 있는 세 개의 별이 늘 궁금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것이 오리온 별자리 한가운데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젯밤 11시쯤 남동쪽 하늘에서 모래시계 모양의 오리온 별자리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아주 밝은 베텔게우스, 리겔 별을 비롯해 주변에 프로키온, 시리우스 별도 자료와 비교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한밤에 또 하나의 반가운 겨울 소품을 지니게 되었다.
지구상은 아우성이지만 밤하늘의 생태는 진득하고 아름답다. 요즘 내 시선은 아래쪽으로 무릎등을, 위쪽으로 오리온 별자리를 향한다. 내 시선과 평행한 곳에서는 해넘이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것으로 2020년의 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새해에도 친근한 것들이 하나씩 생겨났으면 좋겠다. ‘소확행’이다. 언젠가 내 방에서 아주 먼 곳에 가서 멋진 해넘이도 볼 날이 오겠지. 그렇게 여기며 2020년 12월 31일 밤을 혼자 즐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