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박태신

식물 명명법인 이명법을 창안한 18세기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에겐 ‘북극성 기사’라는 칭호가 있었다. 당시 명성이 엄청 높았던 린네에게 식물 관련 연구자들과 탐험가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린네는 독신 청년에 한정해 전 세계로 식물 채집 탐험을 나설 이들을 따로 뽑았는데, 이들은 ‘린네의 사도들’이라 불렸다. 과부를 만들지 않도록 그런 것인데, 이들 셋 중 하나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탐험은 험난했다. 이들 덕분에 린네는 막대한 수의 식물 종들을 묘사해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린네는 제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식물 학명에 제자들의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의 모습. 별이 빛나는 밤, 세종(한석규 분)은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든, 세종의 사도라 할 장영실(최민식 분)을 궁 마당으로 따로 불렀다. 대화 도중 세종이 “저 많은 별들 중에 내 별은 어디 있을래나?” 했다. 장영실이 답하길 “소인의 생각으로는 별들에 가장 높은 별 북극성이 전하의 별이라고 생각되옵니다.” 했다. 세종은 자기는 천출이라 별이 없다는 장영실에게 “북극성 옆에 작은 별이 이제 네 별이다.” 해주었다. 몸 둘 바를 모르는 장영실에게 “신분이 무슨 상관이냐? 같은 하늘을 보면서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리고 조선의 간의(천체 관측 기구)를 만들도록 명한다. 감명에 젖은 장영실은 “네 꼭 만들겠습니다. 하고 답했다.


나는 제대로 별 세계를 보고자 꼭 1년 만에 산행을 다시 시도했다. 그러니까 그 전 2019년 11월 12일 별을 보러 충청북도 증평에 갔었더랬다. 그곳 좌구산 정상 가까이에 천문대가 있기 때문이다. 당일 날씨가 흐리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도 간 것은 어딘가 떠나고 싶은 마음에 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혹시 날이 개어 별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한 줌 희망을 품고서.


천문대 밑에 ‘좌구산 휴양림’이 있다. 각 통나무집마다 별 이름 하나씩 달고 있다. 당일로 예약한 ‘작은곰별’ 숙소에 들어갔다. 이곳에 짐을 풀고 7시 반에 관람 예약을 한 천문대로 향했다. 낮엔 흐릴 정도였는데 야속하게도 밤엔 비까지 내려 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맞으며 올라가야 했다. 관람객은 나 한 명. 숙소에 있을 때 천문대에서 전화가 왔더랬다. 날씨가 흐려 다른 관람객은 다 취소했다고 한다. 확인 전화였다. 그런데 해설사가 조금 더 쉴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빼앗았다. 이 산속까지 일부러 왔는데 뭐라도 보고 가야지 하는 마음에. 결국 그날 해설사와 단 둘이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영상을 보는 걸로 별 보는 일을 마감했다.

그러다 2020년 11월 11일, 일 마감 이틀 남기고 과부하 된 머리를 식히러 1박 일정으로 다시 달려갔다.


증평의 마스코트는 ‘한별이’다. 증평 버스터미널에 내리면 바로 옆에 보강천이 있다. 하천 옆으로 공원을 조성해놓았는데, 거기 꽃밭엔 인공 별들이 가득 장식돼 있었다. 신기해하며 두루두루 돌아보았다. 사거리 모퉁이엔 직사각형 모양의 지역 홍보 패널이 사진을 바꿔가며 증평의 곳곳을 알렸다. 그곳에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20년에 갔을 땐 황무지 같았다. 바이러스 때문에 공원 화단 장식을 포기했을 것이다.

재방문 땐 휴양림 방이 다 예약돼 있어 좌구산 아래 민박집에 숙소를 마련하고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민박집 주인장이 내가 천문대까지 걸어 올라간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다. 꽤 거리가 있는 곳이어서 대부분 차량으로 올라가 천문대 앞에 주차하고 관람하니까.


산행하면서 그리웠던 정적을 다시 맛보았다. 밤이라 새소리도 안 들리고 바람도 휴식에 들어간 덕분에 맛볼 수 있었던 어둠 속의 정적. 잠시 눈을 감고 도심에선 접할 수 없는 그 정적을 느꼈다. 예약 시간이 되자 천문대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이를 동반한 세 가족, 젊은 커플 한 쌍. 그리고 나.


그날은 억세게 운이 좋았다. 하늘엔 티끌 하나 없어, 옥상 노천광장에서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말로만 듣던 화성, 목성, 토성을 육안으로 볼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견우성과 직녀성, 북극성과 북두칠성까지. 실제로 북극성은 아주 밝은 별은 아니고 3등성 정도의 밝기만 지녔을 뿐이다. 그래도 저 북극성이 고래로부터 세상의 중심이었다. 전문 해설사가 카시오페이아 자리에서 북극성을 찾는 방법을 레이저 빔 같은 플래시로 가리키면서 알려주었다.


그 후 해설사는 옥상 노천광장 옆 돔을 열고 다섯 대의 천체 망원경으로 북극성, 화성, 토성, 목성, 안드로메다 성운, 성단 등을 보여주었다. 내 기억으로 생전 처음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보았다. 별들이 가까이 왔다. 토성은 마치 마스코트처럼 귀여웠는데 토성의 고리가 너무 신기했다. 목성을 볼 때는 네 개 중 세 개의 위성도 보였다. 아주 먼 곳에서 수많은 별들이 인류 역사 전부터 빛나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 나는 오래전 소망을 이루었고 가슴은 감동에 찼다. 하산하는 길. 밤하늘의 별을 줄기차게 올려다보며 먼 밤길 걸음을 했다.



서울 지하철 역에도 별이 있었다. 8월의 노원 지하철역 역사 안에서 ‘고흐와 친구들 : 일상 속에 만나는 인상주의’는 제목으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 그림의 모사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잠시 신경통이 생겨 노원역 근처 신경과를 갔던 나에게 이 그림들은 작은 위안이 돼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목록에도 별이 있다. “별이 빛나는 밤에”로 시작하는, 돈 맥클린의 ‘빈센트’.


또 하나 지상에서의 별. 11년 전 내가 속한 문학기행여정 첫날, 자정이 넘은 시간 때의 모습이다. 모닥불은 조금씩 잦아드는데, 어른들보다 더 잠이 없는 아이들과 미니 모닥불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불이 꺼질 새라 자잘한 불쏘시개들을 주워다 왔다. 그리고 만든 별. 하늘이 흐려 별이 보이지 않아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좌구산 천문대를 다녀온 후 11월 20일 저녁 일곱 시쯤 하늘을 보았다. 초승달이 떠 있었고, 우연히 서쪽하늘로 유독 밝은 목성, 목성에서 서북쪽으로 조금 떨어져 조금은 흐릿하지만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토성을 보았다. 그리고 남쪽 하늘 꼭대기에, 지구 바로 옆 행성임을 알려주듯 불꽃같이 반짝이는 화성을 보았다. 아니 보았다고 생각했다. 천문대에서 해설사가 이 행성들의 위치를 알려주었으니까. 서울에서 이걸 다시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좌구산천문대에 확인 전화까지 했다. 맞았다. 그 이후로 맑은 날이면 목성, 토성, 화성을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어제 11월 마지막 밤에도 보았다.


11월의 마지막 가을을 누린 후, 거리두기가 강화돼 다시 어디든 여행을 떠나거나 모임을 아예 하지 말 것을 강권하는 우울한 시절이 돼버렸다. 거리는 한산하고, 손님이 없거나 착석하면 안 되어서 텅 빈 주점과 카페들이 불만 밝히고 있다. 그래도 요즘 하늘엔 둥실둥실한 보름달과 별이 있다. 태양계 안의 행성도 별이라 우기고 싶다. 그러니 하늘을 보고 위안을 삼았으면 한다. 목성과 토성, 화성과 달을 하룻밤에 볼 수 있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글 끝으로 영화 <천문>에서 장영실이 자신을 벗처럼 대해주는 세종에게 전한 솔직한 고백을 소개한다.


“소인은 어려서부터 하늘 올려다보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노비의 신분이라 고개만 들어도 혼쭐이 나니 종일 땅바닥만 보고 살았습죠. 저 별은 내가 아무리 고개를 뻣뻣이 올려다봐도 제게 절대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얘기를 들어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 소인은 별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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