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완연한 수동적 존재다. 달이 몸을 비워내고 채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지구라는 간섭체로 말미암은 것이다. 달은 평생 자신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일 없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지구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저리 가라 할 지구 바라기다.
그런 달에게 구름은 훼방꾼일 때가 많지만, 주연 발레리나를 돋보이려 군무를 추는 조연 발레리나들이기도 하다. 어젯밤은 겹주름 같은 구름이 독무를 추는 달을 슬며시 감싸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달은 이인자다. 해가 힘에 부쳐 서쪽 지평선으로 물러날 무렵에야, 달은 동쪽 지상의 언저리에서 회색 연무에 싸여 조용히 밤의 황태자로 솟아오른다. 여름날의 땡볕과 다른 요즘 가을날의 햇볕은 내 집 주변 산책로와 도심 그리고 들녘을 열기 적은 진한 인상의 빛으로 달구지만, 한밤의 달은 침묵으로 옅은 빛을 뿌리는 것으로 만족해한다. 그렇게 추분을 넘기고 있다.
장대비가 자주 쏟아지던 2020년 여름과 초가을은 해 보기 힘들 듯 달 보기 힘든 시절이었다. 해바라기가 기운을 잃고 지구 바라기가 애를 태우던 시간이기도 했다. 달은 지금, 관중 없는 무대에서 홀로 연기하던 배우 같은 지난 시절을 털고, 몸통을 부풀리며 밤하늘을 천천히 유영하고 있다. 곧 1년 중 자신의 풍취를 가장 멋지게 뽐낼 만월의 가을 저녁[秋夕]을 기다리며 긴 호흡에 들어가고 있다.
어느 날인가 고요한 밤, 아직은 핼쑥한 초승달이 살을 붙여 청초한 미인 반달이 되기 직전 하늘을 산보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소란스러운 하루를 보낸 내 마음을 위로해준 적이 있다. 문득 드뷔시의 <월광>은 초승달이었을까, 반달이었을까, 만월이었을까? 묻고 싶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