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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신 Nov 01. 2023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입 속의 검은 잎’

10월 28일 ‘기형도 문학기행’ 가기 며칠 전 쌀쌀한 날씨가 한몫했다. 내가 일하는 물류센터엔 짙은 안개가 깔렸고 비도 내렸다. 그 덕에 나는 큼지막한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져 거리를 덮은 가을 단풍 길을 올해 처음 걸을 수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안개’ 중에서)     


KTX를 타고 지하로만 지나갔던 광명을 처음 방문했다. 서울 서쪽 끝에 사는데도 생각보다 가까웠다. 7호선 지하철 안에서 한 시간 동안 기행 참석자들의 이름을 눈으로 익히고, 『입 속의 검은 잎』의 김현 평론가 해설을 읽었다. 문득 30년도 더 전에 1989년 초판본을 사서 읽은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김현 평론가의 ‘그로테스크’라는 단어에 움찔움찔 호기심을 가지던 시절이었다. 시 해설은 원래부터 시인이 생전에 시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을 때 김현 평론가가 써놓은 것이리라 추측한다. 그리고 기형도 시인의 급작스런 죽음을 탄식하는 내용이 해설 맨 앞쪽과 맨 뒤쪽에 급작스레 덧붙여졌을 거고. 김현 평론가는 시가 죽음처럼 그로테스크하더라도 시인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한 시인의 죽음) 이건 거짓이거나 환각이라는 게 내 첫 반응이었다” 했으니까. 또한 개작을 했겠지만 본 해설 부분은 생전에 기형도 시인을 당황하게 한 그 원고였을 것이다.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있을 때 월평 기사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김현의 자기 시해설 원고지를 받게 되었으니까.                    


기형도 문학관

기형도 기행 일정이 잡힐 때 내가 놀란 점은 ‘기형도 문학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시를 쓴 것도 아니며 젊은 나이에 요절했고, 그 시도 도저한 괴이함이 가득한데 문학관이라니……    

      

알고 보니 문학관은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 개관했고, 그동안 지인과 후배들, 많은 문학가들이 물밑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광명시도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노력을 기했을 것이고. 그렇게 상자에 넣어져 내다 버려질 뻔한 많지 않은 유품들이 살아남아 전시되고 있었다. 유품을 대신해, 시를 형상화해 설치 미술 작품이나 조형물로 조성한 공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생전에 남다른 필력과 사상, 인품을 갖추고 치열하게 살았으며, 우리나라 시문학사에 유일무이한 세계의 시를 남긴 것이 문학관 설립의 주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지역문화의 중추적인 장소 역할도 담당하고. 우리가 갔을 땐 문학관 마당에서 풍물패들의 흥겨운 연주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3층 강당은 이런저런 모임에 대관을 해주고 있었다. 더욱이 우리가 걸은 ‘기형도 시 길’은 문학 산책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시인의 친누나이자 명예 관장인 기향도 님의 설명을 듣고, 전시장을 들러보고서 의문점이 해소되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도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중에서)               


토포포비아, 그리고 절망과 희망

책이 가득한 흰색 톤의 문학관 도서실에서 작가론과 작품론을 들었다. 신문사 정치부에서 문화부로 옮긴 것은 기형도 시인에겐 물 만난 물고기 형국이었다. 좋은 기자보다는 좋은 문학가가 되고 싶다고 했단다. 자신의 시에 대한 당대 최고의 평론가 김현의 월평 원고를 받고 당황했다던 내용, 우여곡절 끝에 신문에 실었다는 내용은 내겐 전설 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기형도의 죽음을 애석해 한 김현 평론가 그분도 이듬해 1990년에 돌아가셨다. 서울대학 병원에서 진행된 그분의 장례식에 나도 다녀왔다.       

   

작품론 내용 중에 ‘토포포비아’라는 낯선 단어가 있어 자료를 찾아보았다. 추억 어린 장소가 담긴 사진을 보며 감응에 빠지는 것을 ‘토포필리아’(장소애, 즉 특정 장소에 대한 애정)이라고 한단다. 그와 반대로 특정 장소에 대한 혐오적 정서를 갖는 것을 ‘토포포비아’라고 하고.


작품론 발표자는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라는 시 속 어느 관공서 유리창으로 보이는 한 공무원(혼자 울고 있는)을 예로 들고 있다. 반복적인 일상이 끔찍할 만큼 동일해서, 자신이 일하는 사무실이 지옥으로 느껴지는 ‘토포포비아’를 형성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공무원은 사회 구조 속에 매몰된 우리들을 대변하고.      

   

그래서 시인의 시 속 많은 주인공들은 길을 떠날 준비를 하거나 떠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시를 읽는 내 눈엔 그들의 행로 속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우울과 낙망이 가득했다. 기형도 시인은 그런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고 했고 그건 고통이지만 그 고통을 사랑한다 했다. 그런데 발표자는 “가장 심각하게 절망함으로써 희망의 존재를 희미하게 환기시킬 수 있”다고 했고, 그래서 작품론 제목을 <부정성과 희망의 변증법>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 뜻밖의 발상을 접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너희가 완전히 불행해질 수 없는 이유는 神이 우리에게 괴로워할 권리를 스스로 사들이는 법을 아름다움이라 가르쳤기 때문이다. 밤은 그렇게 왔다. 비로소 너희가 전생애의 쾌락을 슬픔에 걸듯이 믿음은 不在 속에서 싹트고 다시 그 믿음은 부재의 씨방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쉴 것이니……

(‘포도밭 묘지 · 2’ 중에서)               


충현박물관

문학관 근처에 있는 충현박물관을 들렀다. 도산서원의 상고직사를 떠올리게 하는 ‘ㅁ’ 자의 종택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다. 단풍나무와 기품 있는 한옥 건물이 내 폰 앞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열매가 한 뭉텅이로 뭉쳐 있어 의아해했던 은행나무도 만났다. 청춘시절(은행 열매의 청록색 시절)엔 둘, 셋씩만 짝을 이루는 모습을 보았는데, 누렇게 익어 떨어지기 직전엔 저렇게 모이나 싶었다.        

  

충현박물관은 조선시대 재상 오리 이원익 선생의 종가에서 만든 박물관이다. ‘충현’이라는 단어는 이원익 사후 만들어진 사액서원(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인 ‘충현서원’에서 따왔을 것이다.            

충현관에 전시된 자개장을 보았다. 조선시대 안채 여인들이 생활용품뿐 아니라 귀중한 것들을 숨겨 놓는 비밀 공간이라 나는 상상해 보았다. 바깥출입이 어려운 여인들에게 이런 소품은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물건을 어떤 칸에 어떤 방식으로 넣어 보관할지는 오로지 방주인 아낙네의 자유이니까.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 중 나는 ‘집’에 관한 부분을 반복해 읽었다. 읽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나의 자그마한 방을 거대한 선박의 조타실로 상상하곤 했고. 그런데 이 책에서 바슐라르는 ‘서랍과 상자와 장롱’이라는 소재도 다루고 있다. “닫혀 있는 상자 속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상자 속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 그처럼 우리네 여인들은 자개장이라는 ‘내밀한 공간’을 수시로 열고 닫으며 이런저런 상상을 즐기고 마음을 다스렸을 것이다.               


광명동굴

역시 문학관 근처에 있는 광명동굴도 들렀다. 키가 큰 나는 자꾸 머리를 부딪치기도 해서 동굴을 안 좋아하는데, 이곳 가학산 아래 광명동굴은 그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동굴 안 천장이 높기도 하고 안전모를 쓰지 않아도 되게끔 제반 공사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갖가지 진귀한 것들로 볼거리 장소를 조성해 놓아 정신이 얼얼할 정도였다.     


현재의 광명동굴은 폐광이라는 ‘무미건조’한 장소에, 문화예술이라는 ‘유미다습’(有味多濕)한 기술을 성공적으로 접목시켜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주목받는 동굴테마파크가 된 곳이다.     

 

몇십 년 동안 젓갈 보존 장소로 이용했다가, 유럽 본고장 지하 와이너리처럼 와인을 보관한다는 착상 하에 우리나라 전역의 와인을 시음하고 판매하는 ‘와인동굴’ 구간도 만들었다. 기간이 지나 시음을 할 수 없고 그림의 떡 아니 그림의 와인(판매용)만 들여다봐서 아쉬웠지만.     


‘미디어파사드쇼’는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주와 심해를 오고가는 듯한 영상물이 탄광 암석이라는 대형 스크린에 비추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수를 활용해 수족관을 만들어 물고기를 키우고 식물원을 만들어 화초를 키우고 있는 것도 기발한 아이디어라 생각했다. 환한 공간의 지상 수족관 속 물고기와 달리 이곳 지하의 물고기들은 관람객들의 호기심 어린 손짓과 눈짓에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수족관 설비가 근사했는데, 그 곳에 살고 있으니 여유롭다고나 할까. 해설사가 감탄했던 바대로, 거대한 물고기 금용이 뒤쪽 지느러미를 살짝 움직여 방향을 틀면서 유유자적하게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우아해 보였다.     


이외에도 볼거리가 상당하다. 이전에 들렀던 동굴과는 차원이 다른, 자연과 문화예술이 겸비된 세계를 호기롭게 보고 나왔다.                


철산역에서

광명동굴 관람을 마치고 철산역 근처 저녁식사 식당으로 가는 버스 창밖으로 KTX 광명역을 보았다. 한 선배가 역사 규모가 공항급이라 했는데 정말 그랬다. 통일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듣고 보니 휴전선까지의 거리도 적당하고, 서울역은 모든 공간이 꽉 차 있으니 무리가 되겠다 싶었다. 언젠가는 이 광명역에서 열차로 유럽까지 갈 수 있는 날이 오리라.     


광명동굴의 숨겨진 금처럼 귀한 하루였다. 귀한 만남을 갖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철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빈집’(기형도 시인의 대표 시)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어 각자 자기의 빈집을 향해 간다. 문을 잠그고 추억에 잠기며 후기를 썼다. 이 후기가 시는 되지 못하더라도 시를 사랑하게 되는 자극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의 제목은 시인의 시 '비가 2'의 한 구절이다.  다행히도 기형도 시인의 시 중엔 서정성과 경이로움이 듬뿍 든 시도 여럿 있다. 그중 하나를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저녁 노을이 지면

神들의 商店엔 하나 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城     


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

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     


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城에 살고 있다

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숲으로 된 성벽’ 전문)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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