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구상 문학기행
하늘의 조화
책상 앞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8월 26일 ‘구상 문학기행’을 떠나기 전엔 세찬 비가 여러 날 내렸다. 구상 시인이 ‘그리스도 폴의 강 6’이라는 시에서 비를 ‘은현'(銀絃 : 은색의 줄)이라 표현한 것을 보고 감탄하던 중이었다. 줄악기(현악기)로 치면 첼로 줄 같은 굵은 빗줄기였다. 작품론을 준비하던 나에게 이 ‘은현’이 영감을 떠올리게 도움을 준 것 같다.
그러다 기행 이틀 전 하늘은 비구름을 몰아내고, 초승달을 건너뛴 ‘수박달’ 반달을 내보여주었다. 금도금한듯 너무도 선명했다. 그러다 기행 전날엔 칠월 칠석의 별 직녀성(베가)과 견우성(알타이르), 여기에 데네브라는 별과 함께 ‘여름의 대삼각형’을 이룬 모습을 내게 보여주었다.
이날 저녁 나는 내가 사는 공릉동에서 많이 알려졌던 카페, ‘표준커피’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새로 생긴 카페에 들어가, 마시기엔 너무 아깝게 예쁜 자태로 담긴 차를 마시며 기행 준비를 마무리했다.
하늘은 계속 우리 기행반을 도와주었다. 기행 이틀 동안 맑은 날씨를 누렸고 갖가지 모양으로 형용한 구름들을 보고 또 볼 수 있었으니까.
구상계
은하계엔 은하를 비롯해 성운, 별(항성), 행성이 가득하다. 실존하는 그 세계는 끝이 없어서 우리는 상상력과 형이상학을 동원해야 가까스로 가늠할 수 있다.
1만여 편의 시는 어떨까. 나는 그 광범위함을 은하계에 빗대 구상 시인의 시 세계를 ‘구상계’(具常界)라고 칭해 보았다. 구상 시인이라는 은하를 중심으로, 1만여 개의 시라는 별과 행성, 시인의 인간관계와 사상 등 시인과 관련한 온갖 것이 들어 있는 세계라는 뜻에서.
그 ‘구상계’를 만나러 내가 속한 문학기행반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갔다. 이곳에 ‘구상문학관’이 있다. 참! 구상계 속엔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도 들어 있다. 친형 구대준 신부가 성인(聖人: 구상계에선 새로운 별!) 품에 오르기 위해 긴 기다림 속에 있고, 혜성이나 우주선 같은 신도나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언덕에서 노년기에 해당하는 적색거성이 된 구(舊) 성당을 내려다 보았다. 은은한 아름다움을 지닌 채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다.
우리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태양같이 성스럽고 신비스러운 대성전 새 성당 안에, 성당의 ‘존재방식’인 침묵을 거스르고 들어갔다. 그 안엔 움직이지 않는 오로라마냥 아름다운 빛의 변화를 창을 통해 보여주는 스테인드글라스, 전 세계의 돌이 네 군데 박혀 중심을 잡아주는 ‘부유하는’ 십자가가 있었다. 우리는 성스러움의 파문(波紋)에 감동하고서 나왔다.
발길이 뜸한 대성전 뒤쪽 주변은 수도원 본래의 모습이었다. 키 큰 나무들과 어울려 있는 구 성당과 옛 사제관, 모자상, 등나무 벤치의 안정된 배치가 그랬다.
구상 문학관
2002년 생전에 지어졌지만 정작 시인 본인은 투병생활을 하느라 방문해 보지 못한 ‘구상 문학관’. 욕심 없고 겸손하신 시인에겐 자기에게 헌정된 장소에 들어가는 것이 번뇌를 일으키는 요소가 될 수도 있어,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망령된 생각을 해보았다.
1층 로비에 여러 개의 소파와 탁자 및 의자가 있는 문학관은 처음 본다. 담소를 나누기 좋은 장소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이곳 안내실 옆에서 나는 시인의 소장품 하나를 발견해 들여다보았다. 시를 읽었기 때문이다. 바윗돌이다. 시인이 서재에 30여 년 동안 보관하며 대화를 나눈 상대. 이 바윗돌이 시의 바윗돌이라 여겼다.
바위라기엔 작고
돌이라기에는 크고
바윗돌이라는 게 십상인데
그저 울퉁불퉁 막 생겼으나
그 머리 쪽에 차돌이 몇 개 박혀 있어
마치 흰눈이 녹지 않는 산마루 같다.
……
그 바윗돌은 나와 날마다 마주하며
집안의 어느 누구, 어느 책보다도
가장 많은 시간의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그것도 아주 형이상학적인 것이
화제의 중심이다.
- 시 ‘어느 바윗돌’ 중에서
이번 기행에서 내가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여긴 것은 구상 시인과 서영옥 여사의 사진이다. 서재에서 찍은 듯한데, 두 분의 미소 속에서 평소의 금슬 좋은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감동이 일었다. 두 분이 결혼할 수 있었던 설화 같은 에피소드를 알고 있어 더 그랬다.
그런데 그 옆에 모과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 연작시를 쓰셨으니 적절한 배치라 하겠다. 모과 옹두리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한 선배가 알려주었다. 모과에 볼록 튀어 나온 상처가 그것이다. 시인은 “나의 심신(心身)의 발자취는 모과 옹두리처럼 사연투성이다”라 하셨다.
'화통차'가 지나다니는 철교는 낙동강 칠곡보 아래쪽에 있고 지금은 그 위로 무궁화호와 새마을호가 서울역, 왜관역, 부산역을 오고간다. 왜관역에 내려 베네딕도 수도원 들른 경험이 10여 년 전 있었다. 칠곡보 위쪽엔, 또 하나의 ‘화통차’ KTX가 다니는 튼튼한 철교가 세워져 있다.
마치 시비가 시인이듯 했다. 시인은 낙동강을 지긋이 바라보고 우리는 시인 옆에서 엎어지며 노니는 손자 손녀들 같았다. 너른 잔디밭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저녁식사 후엔 작가론과 작품론 발표, 토론시간을 가졌다. 기행 오기 전 한자어가 많은 구상 시인의 시를 네이버 국어사전과 한자사전 뒤적이며 읽고 상상하고 그 놀라운 시어에 감탄했다. 또 시인의 삶과 사상을 엿보았다. 덕분에 나는 이 시대 큰 어른을 만났다. 이제 선물 같은 시간들을 감사히 여기며 여름을 떠나보내려 한다. 오늘 새벽녘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 소리를 한껏 들었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