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걸렸다. 여행 떠나고 싶은 마음의 발동이. ‘KTX 매거진’ 덕분이었다. 열차 타고 갈 여행지를 정할 수 있게 된 것은. KTX 열차 안에서만 열람할 수 있는 잡지를 ‘코레일’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음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목포였다. 가 본 지 오래된 데다 바다가 있는 곳. 지난 주말 매진 직전, 동일 열차 내에서 좌석 간 이동을 해야 하는 표를 간신히 구했다. 할 일은 팽개치고 손 바쁘게 배낭을 꾸려 용산역으로 떠났다. 고정된 생활에서 벗어나는 급발진이다.
여행은 역시 나답게 가기 마련이다. ‘KTX 매거진’은 편집후기에 기자가 취재 겸 여행 한 목포 코스를 간략히 소개해 놓았다. 그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열차가 전라도를 횡단할 무렵 마음을 바꿨다. 첫날은 바다하고만 보내기로.
이번 여행에서 새삼 확인했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은 순서대로 가는 것이 최선임을. 한 도시의 특정 지역에 가도 들르고 싶은 곳을 제한하는 것이 더 만족스러움을.
목포역 관광안내소를 최대한 활용했다. 안내지도도 챙기고 버스 정류장도 안내받았다. 그리고 음식! 오래전부터 먹고 싶었던 목포 음식 홍어삼합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식당을 물어보았다. 고맙게도 1인이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안내소 직원이 전화까지 해서 알아봐 주었다.
든든한 마음으로 ‘목포해상케이블카’를 향해 갔다. 버스 노선이 여럿 있지만 바다를 한껏 바라다볼 수 있는 1번 버스를 선택했다. 왼쪽 자리에 앉은 나의 시선은 마냥 왼쪽 바다에 고정되었다. 버스는 목포항과 목포 스카이워크를 지났다. 그리고 케이블카 출발지인 북항 승강장(스테이션)에 도착했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북항에서 출발해 유달산 꼭대기를 거친 다음 남서쪽 맞은편 섬 고하도까지 왕복 운행한다. 산과 바다 위를 날아가는 셈이다. 두 종류가 있는데 나는 바닥이 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 아래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크리스탈 캐빈’을 선택했다.
여행 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탑승 안내 직원은 최대 열 명이 탈 수 있는 케이블카 한 대에 가족 서너 명 또는 연인 두 사람만 태워 보내기도 했다. 뜻밖에도 내게는 혼자 탈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해 주었다. 20분 정도 나는 섬까지 하늘을 날아가는 한 마리 갈매기가 되었다.
유리창을 통해 사방으로 목포 시내를 볼 수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적은 나는 투명 바닥을 통해 밑을 마음껏 내려다보았다. 케이블카가 돌산인 유달산을 오르내릴 땐 암벽과 바위와 나무가 보였다. 고하도까지 바다 위를 날 때는 유람선과 고깃배가 지나가는 바닷물이 보였다. 오른쪽 창으로 목포 북항에서 고하도까지 연결돼 있는 목포대교가 보였다. 거대했다. 목포대교는 비상하는 두 마리 학 모양의 케이블 부분을 양쪽 기둥으로 삼고 있었다. 배들이 원양에서 항구로 들어오는 바다 위 관문이다.
소음은 거의 없다. 적요할 정도다. 비행고도가 비슷한, 프로펠러가 쌩쌩 돌아가는 헬리콥터에서는 불가능한 극도로 낮은 데시벨의 공중 공간. 앞 케이블카까지 거리가 100미터는 될 듯싶었다.
나는 침묵과 수동과 타자 없음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내다보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의지가 필요 없는 휴식 상태. 내 옆으로 지나가는 반대방향 케이블카는 듬성듬성 심어진 가로수로 여겼다. 나는 두 발을 멈춘 채 걷는다. 앞쪽 유리창 귀퉁이에 써 놓은 단어 그대로 ‘공중 산책’이다.
케이블카 안에서 날갯짓하지 않고 공중을 유유히 떠다니는 갈매기의 시야와 마음을 잠시 빌렸다.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고,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의 상승과 활강. 배낭도 내려놓았으니 낮은 고도의 조각구름을 타고 가는, 또 언제 경험할까 싶은 빈 몸의 공중 산책. 잠시 나는 부러울 게 없었다.
나는 바다를 건넌 다음 역추진 날갯짓하면서 고하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관련글)
판옥선 그리고 목포의 밤 (brunch.co.kr) : 목포 여행 2
몽상의 집 (brunch.co.kr) : 목포 여행 3
조금 땐, 조금 느리게 (brunch.co.kr) : 목포 여행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