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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신 Feb 23. 2024

판옥선 그리고 목포의 밤

목포 여행 2

반달

고하도 행 케이블카 안에서는 눈부신 햇살에 시선이 압도되곤 했기 때문에, 고하도에 내려서야 낮 반달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초저녁 손톱달’을 지나 수박 반쪽 모양에 다다른 반달은, 역시 초승을 지난 반달 모양 생김새의 고하도 푸른 하늘에서 돋을새김돼 있었다.      

  


이때 고하도의 케이블카 주탑은 마치 지구(목포시)와 케이블로 연결된 우주정거장 같다. 화가 장욱진은 해와 달을 한 화폭에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때 달은 반달이나 초승달일 때가 많다. 지금이 딱 그런 모양새다. 주탑(장욱진 그림에서는 집이나 산에 해당하는)을 중심으로 양쪽에 해와 달이 떠 있는 것이다. 실제 우주정거장에서 해와 달의 모습은 주변 풍경이 단조로운 장욱진의 해와 달 그림과 더 근사치를 이룰 것 같다.   

    

고하도는 영산강이 바다로 이어지는 하구 끝에 위치한 섬이다. 작은 섬인데 그나마 여행객이 둘러볼 만한 곳은 동북쪽 가장자리 정도다. 이곳에 케이블카 승강장, 산책로, 전망대, 해상테크가 있다.      


방풍림 역할을 하는 곰솔 숲을 걸어 숲 북쪽으로 향했다. 오른쪽으로 고하도 해상테크를 기웃거린 유람선이 목포항 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얼마 안 돼 황토색과 독특한 모양새 덕분에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고하도 전망대에 도착했다.           



판옥선

판옥선 여러 대를 가로 세로 차곡차곡 얹힌 형태. 임진왜란 때 특수함 거북선보다 더 폭넓고 보편적인 역할을 한 전함 판옥선은 2층 구조였다. 갑판이 두 개인 것이다. 아래 갑판과 위 갑판 사이는 사방이 널빤지로 덮여 있어 노군들이 안전한 상태에서 노를 젓는 1층 공간이고, 위 갑판 위는 병사들이 구멍을 통해 포를 쏘거나 공중으로 활을 쏘는 2층 공간이다. 이 2층 공간에 덮개를 씌운 배가 거북선이고.     


영화 <명량>에서는 이 판옥선 12척만이 등장하고, 2부에 해당하는 <한산 : 용의 출현>에서야 부제가 말하듯 거북선(영화에서는 줄곧 ‘구선’이라 칭한다)이 맹활약을 펼친다. 시대순으로 치자면 <한산>(임진왜란 때)이 <명량>(정유재란 때)보다 5년 앞선다. <명량> 당시엔 마지막 남은 구선이 불타 없어진 상태다. 그래서 중심 역할은 역시 판옥선. 고하도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에서 승리한 후 전열을 가다듬은 곳이다. 영화 속 장군은 자신이 탄 한 척의 배만으로 전세를 뒤집는다.      


전망대 외관 구조를 자세히 보면 배 밑바닥 형태와 더불어, 배 이물(앞부분)은 전면 유리창으로, 고물(뒷부분)은 두 개의 꼬리 날개 형태로 형성돼 있다. 포와 포 구멍이 있는 부분은 2층으로, 포가 없이 구멍(전망용)만 있는 부분은 1층으로 상상해 보았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한 층씩 올라갔다. 전망대 2층부터 5층까지는 전면 창과 계단참 노출 공간을 통해 사방을 둘러볼 수 있다. 지붕 덮인 옥상 공간은 노을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자리다.      


놀랍게도 2층 내부를 판옥선 제작 과정 소개 공간으로, 3층부터 5층 내부를 목포 관광지 소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전망대와 역사관, 안내소 세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곳에서 ‘목포문학관’에서 중점 인물로 삼고 있는 목포 문학인들을 알게 됐고 그중 문학평론가 김현이 있음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후에 소개하겠다.          



다도해의 노을

이날의 일몰 시각은 6시 18분. 옥상 전망 좋은 자리를 독차지하고 서 있었다. 샤워커튼 구름이 없어 노을다운 노을은 볼 수 없었지만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섬 달리도 산자락 사이로 이글거리며 지는 모습은 여한 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해가 산에 몸을 묻기 시작하고서 그 둥근 형체를 다 감출 때까지 시간은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큰 몸체에 비하면 정말 순간적이었다.       


그래도 다도해의 일몰은 여운이 길다. 섬들의 해발고도가 높지 않아 길쭉한 그러데이션 패널 모양의 노을이 한참이나 바다와 섬 위를 서성거렸다. 남해답다. 이것도 장관이라 숲속을 걷는 여러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 무렵 케이블카는 형형색색을 띠기 시작한다. 양방향 케이블카들이 각각 외줄에 달린 채 줄지어 달려 있는 모습을, 외관 조명으로 자체 발광하는 야간 시간 때 보니 장관이었다. 연두, 보라, 하양, 빨강의 소형 우주선이 암흑의 우주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나도 그 형형색색의 하나가 되어 되돌아갔다.      



홍어

북항 승강장에서 ‘북항활어회거리’까진 걸어갈 만하다. 즐비한 횟집이 자리를 마감한 끄트머리에 삼합 전문 식당이 있다. 한 사람이 올 수 있음을 알고 있던 주인아주머니는 내게 푸짐한 상을 차려주었다. 홍어 삼합, 홍어 김치, 홍어묵(껍데기로 만든), 홍어전, 홍어애탕 등등. 여기에 그 귀한 홍어 애(홍어 간)를 서비스로 제공해 주었다. 나는 마지막 손님. 그래서 가게 안은 나와 주인아저씨 둘. 두 시간 가까이 나는 두 병의 잎새주 소주와 홍어 음식 맛에 빠져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다도해 노을과 홍어가 있는 목포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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