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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신 Feb 26. 2024

몽상의 집

목포문학관

오독

‘목포문학관’만 관람했다. 그것도 ‘김현관’만 집중적으로.    

 

바닷바람 섞인 비가 접이우산을 꺼내게 만들고, 뭉실뭉실한 안개가 유달산과 케이블카를 품어 안은 채 찔끔찔끔 내보여주던 2월 17일 일요일. 목포 동남쪽 ‘갓바위권’이라 불리는 문화타운을 찾았다. 들를 곳이 많지만 다 생략했다.      


길 찾기 도우미 ‘네이버 지도’는 나를 엉뚱한 야산 길로 인도했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믿고 따라가기로 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하게 어느 낡은 집 앞에서 올해 처음 매화나무 한 그루를 만날 수 있었다. 벌들이 수직 이착륙하는 꽃에 코를 들이밀고 향을 맡았다. 개화 초기의 은은한 향. 몸에 배어들게 하고 싶은 향.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렇게 말했다.      


잘못 읽는다는 것은 다른 원칙에 의해서 그것을 읽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것을 구축케 하는 독법이다.

- 『김현 예술기행』(열화당) 중에서      


나는 이 말이 ‘오독’(誤讀 : 잘못 읽음)의 순기능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책을 이해하며 읽었더라도 독자의 상상력이 새로운 해석의 길을 열어 가는 순기능.    

  

네이버 지도는 정문 쪽 길이 아닌 우회 길을 안내했지만 덕분에 매화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길을 잘못 들기도 하지만 그곳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여행할 때도 수없이 그랬고,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목포문학관 정문 근처에는 나를 유혹하는 매화나무가 없었다.      


그러니까 네이버 지도는 잘못된 길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알려준 것이다. 목적지로 가는 길은 여럿 있을 수 있고, 최단 거리와 최단 시간을 고집하지 않는 한 다른 길들은 임의의 가능성을 지닌 길이다.         



몽상

목포문학관은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김현 이 네 명의 소형 문학관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다. 이중 ‘김현관’만 다루겠다.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큰 글씨와 사진의 안내판들로 한 벽면을 독차지한 김현 연보다. 죄다 읽고 사진에 담았다. 특히 1966년 “평생 그를 사로잡게 될 바슐라르를 접하다”라는 문장이 뇌리에 꽂혔다.   

   

나는 불문학을 전공하기 전부터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글을 좋아했고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특히 대학원 석사 논문을 쓸 때는 테오필 고티에라는 소설가의 작품을 테마로 정했는데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김웅권 역)이 가장 풍요로운 자양분이 돼주었다.      


몽상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글로 써야 하고, 다시 쓰는 만큼 더 낫게 되살려내면서 감동 있게 맛깔스럽게 써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글로 씌어진 사랑의 영역과 접한다.……사랑을 말하기 위해선 글로 써야 한다. 아무리 글을 많이 써도 지나치지 않다.

『몽상의 시학』 중에서


그런데 이 책을 처음 번역한 사람이 김현이다. 그리고 그도 감동 있는 글을 많이 썼다. 그런데 ‘너무’ 많이 썼다. 김현이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유가 연보에 적혀 있었다. 1984년(42세) “평론집 『책읽기의 괴로움』을 민음사에서 내다.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다.”, 1987년 “이 해부터 그의 건강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게 될, 미셸 푸코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하다.” 그렇게 김현은 한국 비평문학의 신화가 되었다.     

       


행복한 비평

다른 문학관과 달리 ‘김현관’의 독보적 장치는 수많은 문학가들이 김현에 대해 남긴 어록을 두 군데 대형 유리판에 가득 새겨놓은 것이다. 김현을 접한 문학가들은 그의 비평과 더불어 그의 인품을 높이 샀다.      


“김현의 비평은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비평이고 즐거워지고 싶게 하는 비평이다.”(홍정선 문학평론가)     

“그의 글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글 속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힘을 발휘한다.”(정규웅 문학평론가)     

“선생은 또 하나의 집과 같았다. 선생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의, 삶과 글쓰기의 충전의 품이었다.”(이인성 소설가)     


영상을 통해 들은 오생근 평론가의 증언엔 귀가 솔깃했다. “정말 자신이 좋게 재밌게 읽으면 가만히 감춰두지 않았습니다. (김현의 비평은) 그 사람에게 네가 외롭게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네가 힘들여서 쓴 글을 잘 읽고 좋아하는 독자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작가들을 기운 나게 하는 말인가.    

 

나는 김현의 육필 원고지와 마라톤 타자기를 연거푸 사진에 담았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타인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펜과 열 손가락으로 분주히 방망이질했을 문학 다듬잇돌.     



몽상의 집

여행을 끝내고 집에 와서, 구입한 지 25년도 더 된 『김현 예술기행』을 책장에서 꺼내 뒤척였다. 목포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책장 넘기는 소리를 내지 못했을 문고판 책. 내가 오래전 밑줄 그어 읽은 김현의 문장 중 이런 내용도 있다.      


몽상은 의식과 무의식의 변경 지대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무의식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심리적(心理的)인 편안함에서 생기는 어떤 것이다. 바슐라르가 몽상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거기에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와의 화해로운 결합을 보기 때문인 것이다.

- 『김현 예술기행』 중에서     


나는 목포문학관의 ‘김현관’을 ‘몽상의 집’이라 부르고 싶다. 김현이 바슐라르의 몽상을 한껏 받아 누렸기 때문이다. 바슐라르가 살았던 소음 가득한 파리 아파트도 ‘몽상의 집’이다.    

  

더욱이 나는 위 책을 다시 읽다가 놀라운 구절을 발견했다.  프랑스 유학 시절, 바슐라르의 고향에서 바슐라르의 흔적을 샅샅이 살펴보고 나서 쓴 글의 마지막 대목이다.


그(자신의) 책 어느 곳엔가 그(바슐라르)는 “사람은 모국어로 꿈을 꾼다.”라고 적었다. 과연 그렇다. 이제 내가 가야 하는 곳은 극동의 조그마한 반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나의 고향인 것이다.

- 『김현 예술기행』 중에서


바로 내가 와 있는 목포다. 그의 영혼은 후세가 마련해 준 이 '김현관'에서 여전히 책을 읽고 몽상하며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 중 1장(‘집’)과 2장(‘집과 세계’)을 읽고 또 읽었다. 천천히 읽고 나면 내가 처한 공간에 평온을 부여할 수 있었다. 내가 쓴 글의 상당 부분은 바슐라르의 상상력, 그를 흉내낸 몽상에 빚진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자그마한 나의 거처도 ‘몽상의 집’이길 소망한다.       


버스 정류장 가는 길. 빗방울이 접이우산 든 키 큰 내 몸과 불룩한 배낭을 마구 파고든다. 그래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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