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가 보아도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로그래밍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시작됐었다. 사람을 대하며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시작한 프로그래밍 공부는, 애초에 이상한 이유로 시작하였던 것이기에 그리 좋은 성취도를 얻지는 못했다. 학창 시절 잠시 게임을 만들어보겠다고 끄적였던 지식수준으로는 제대로 된 프로젝트 하나 수행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강의를 제대로 듣거나 하지도 않았다. 사실상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좋은 기회를 얻어 모 대기업에서 진행하는 1년간의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강사님, 저도 강사님처럼 프로그래밍 강사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강의를 듣기 시작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열정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던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무슨 의도로 물은 것인지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조금이라도 그와 친해지고 싶었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진심 반, 농담 반으로 강사님께 던진 질문은 의외의 답변으로 돌아왔다.
"저희 회사 들어오실래요? 지원해 보세요."
처음에는 꽤나 당혹스러웠지만, 몇 번 곱씹어 보다 보니 조금씩 마음이 확고해져 감을 느꼈다.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구구절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의 마음은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그때 내가 선망했던 선생에 대한 이상을 그에게서 다시금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학생들마다의 수준에 맞춰 학습 방향을 제시해 줬고, 당장에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전달하기 위해 힘썼다. 상대방의 직책이나 계급에 기대어 대우가 달라지기보다는 오로지 학급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뚝심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수긍하고 이에 대한 정중한 사과와 정정하기 위한 노력과 결과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직급을 휘두르는 만용을 부리지 않았고, 학생들의 질문을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언제나 환영하듯 상세히 답변해 주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간 내가 그려왔던 이상적인 선생의 상을 그대로 그려놓은 것 같은 인물이었다. - 물론, 이후에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난 뒤에 함께한 게임에서 꽤나 과격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어쨌든 - 그를 보며 그와 함께 일할 수 있다면 꽤나 즐겁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은 나의 실력이었다. 이 실력으로 누구를 가르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그래도 꽤나 준수한 성적으로 과정을 수료하고 나서야, 나는 다시 그에게 연락하여 지원하고 싶으니 이력서 제출은 어디로 하면 좋겠냐며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짜잔, 프로그래밍 강사가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제 막 설립한 스타트업에서 사람이 부족하니 어떻게든 얼렁뚱땅 사람을 뽑아서 강의에 집어넣었다는 생각이 든다만, 뭐 나에게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니 잘 된 걸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그렇게 덜컹거리며 시작된 회사생활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강의 경력도, 개발 경력도 전무한 (1년간의 프로젝트 경험은 있다지만...) 어디서 튀어나온 지도 알 수 없는 사람을 강사로 써주는 곳은 없었다. 그나마 이틀짜리 단기 특강, 혹은 보조강사로 조금씩 수업에 투입이 되기는 하였지만, 역시나 학생 수준의 지식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서로에게 좋지 못한 일이 되었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았다. 서로의 강의를 보며 피드백해 주거나, 커리큘럼을 몇 번이고 검수하고 뜯어고치며 조금이라도 더 많고 더 좋은 강의를 만들기 위해 긴 시간 동안 회의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적어도 미술학원에서 일할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직급 없이 모두가 동등해야 한다며 꾸려나가던 사내의 수평 조직 문화도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 참을 즐겁게 강의를 준비하고, 공부가 즐거울 때가 있구나 라며 학업에 매진하다 드디어, 한 달짜리 강의에 데뷔하게 되던 날. 나는 남의 이름으로 강의를 들어가게 되었다. 외주를 주는 업체에게는 강의 경력 n 년 개발 m 년 도합 1x 년의 전문가가 투입될 것이라고 계약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어리석게도, 그렇게나 이상을 부르짖고, 정직을 이야기하며, 남을 속이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며 일도 그만두었던 나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 아니겠어?' 라며 당연하다는 듯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나를 소개하였다.
'사기 아냐?'
'사기지.'
'관료제가 어쩌구, 정직이 어쩌구, 계급에 기대어 어쩌구,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이 어쩌구,'
'나도 알아. 아는데,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적어도 강의는 할 수 있어야 강사라고 부를 수 있는 거 아냐?'
'난 별말 안 했어. 그냥 내가 그동안 그렇게나 말하던 이상적인 강사라는 게 결국 이런 건가? 싶었을 뿐이야. 나는 첫 강의를 들어가기 전, 긴장해서 울렁거리는 속내를 알아줬던 대표의 마음이 참 고맙다고 얘기했었지. 좋은 강의, 학생들을 위한 최고의 강의를 외쳐대면서, 강의는 커녕 개발 경험조차 없는 신입을 십수 년의 경력자라고 속이게 한 대표를. 그리고 그걸 거절하지 못하고, 그렇게라도 강의에 들어가야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나를 속이고 수업을 진행했지'
'학생들은 좋아했어.'
'걔네들은 모르니까. 자기들이 모르는걸 십수 년의 경력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알려주면 그게 사실인 줄 알 테니까. 그게 틀렸는지 맞았는지 이제는 시간도 지나서 검증도 못 할 일이 돼버렸으니까.'
'회사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 일도 안 하고 월급만 받아 갈 수는 없잖아.'
'선생의 이상향이 어쩌고라며 잘만 나불대지만, 결국엔 직장이 먼저인 거잖아? 그런 방법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강의는 할 수 있었을 텐데, 그건 돈이 안 됐나 보지? 다른 모든 걸 떠나서 나는 지금까지도 가끔은 연락하는 그 모든 학생들에게 아직까지도 그때의 거짓말을 정정하지 않았단 점에서 이 이야기는 더 할 가치도 없다. 나는 거짓말을 한 거야. 그것도 아주 큰 거짓말을.'
'...'
그 일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듯하였으나,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마음에 담겼던 것일까. 나는 더 많은 강의, 더 질 높은 교재, 더... 더 잘 만들어진 문제를 갈구하였다.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손을 모아 조금이라도 더 체계가 잡힐 수 있도록 사소한 것들이라도 하나씩 만들어 보고자 하였다. 다들 실력도 출중하였고, 학생들을 위하는 생각만큼은 본인들도 학생이었던 시절, 이런 것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연신 이야기하며 만들다 보니 꽤나 잘 다듬어진 것처럼 보이는 자료들을 빠르게 쌓아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공든 탑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져 내렸다.
"커리큘럼을 바꿔요? 왜죠?"
"지금 커리큘럼엔 빠져있는 내용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이젠 쓰지 않는 옛날 기술들도 있어서 조금 덜어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논의는 해 보셨나요?"
"작년부터 계속 논의해 오던 내용이었습니다."
"바꾸려는 내용이 정말 지금 수준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약 1년간 새로운 자료들을 정리하고, 구성하였던 커리큘럼은 DB 한 구석에 박혀 버리게 되었다. 부족한 지식들을 모아봤지만, 이미 잘 갖춰진 커리큘럼을 더 좋게 개선하는데 큰 이바지를 하지는 못한 듯이 보였다. 일이 그렇게 되자, 더 많은 것들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육학을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강의를 보기도 하였고, 관련된 세미나에 대한 욕구도 생기기 시작했다. 마침, 인사팀은 HR을 위한 세미나도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며, 강사들도 그에 대한 욕구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년 강사 부족으로 진절머리를 앓고 있던 회사 상황상, 세미나나 워크샵을 준비할 만한 인력을 부족했고, 강의 도중에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강의 관련 세미나는 제가 준비해 보겠습니다."
대표의 말은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었던 나에게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졌다. 같은 내용을 반복하기를 몇 번, 이제 수업 내용에 대한 이해는 완벽하나 강의를 주도해 나가는 방식이나, 수업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등, 경험적인 측면이 압도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 다른 이의 강의를 한 번이라도 더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당시에는 5.5개월 분의 수업을 시작하면 일 년에 단 한 달, 6월과 12월의 절반씩 정도 외에는 휴가는커녕 그 한 달마저도 다음 학기 수업 준비로 한 틈도 쉬지 못하고 있던 차라 더 이상 무언가를 머리에 구겨 넣기가 힘들었음에도, 오로지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세미나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이해하였다. 나만 바쁜 것이 아닐 테니까. 그렇게 수개월이 흘렀다.
강사들의 요구는 조금씩 커져갔지만, 해결되지 않아 불만으로 이어졌고, 감정이 격해지는 일들도 자주 일어났다. 어느 시점부터, 수업과 관련된 질문을 하는 강사들도 줄어들고 있었다. -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공개된 채널을 통해서 한 질문들이, 사내 강사평가에 반영이 된 것인지, 그런 것도 모르는데 강의를 하고 있었냐는 등의 피드백이 왔었다고 한다. - 그렇게 활발하게 회의를 나누던 사람들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결국, 회사 설립 이후로 처음으로 퇴사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연이은 퇴사소식이 들려오자, 대표는 급하게 전 강사들과의 1:1 미팅을 제안하였다.
"근데 OO은 이미 강의 만족도도 전국에서 제일 높고, 학생들 취업률, 성적도 충분히 좋은데 필요한가요?"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그리고 그 강의 만족도라는 거... 사실 인기투표...잖아요."
"그렇긴 하죠. 근데 제 생각에는 그 강의를 위해 더 쏟아 붓기보다는, 그것 외에 다른 일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는데요. 80점짜리 강의를 100점으로 만들려는 노력보다, 80점을 유지하고 이젠 다른데 신경 써도 될 것 같은데요."
'이게 무슨 소리야?'
'학생들은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 강의는 지금 수준이나 유지하고, 이제 다른 강의 준비도 하라는 뜻이겠지.'
'아니...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한데. 아직도 모르는 게 이렇게나 많은데, 얼렁뚱땅 넘어가고 있는 일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냥, 학생들이랑 조금 친할 뿐인 건데.'
'그건 누가 판단하는 거지? 정량 평가로 내려지는 수치가 말해주고 있잖아? 충분히 잘하고 있다잖아.'
'아니. 내가 만족 못해. 그 만족도라는 것, 나였으면 그냥 적당히 마음에 드니까 5점으로 죽 그어버렸을 거라고. 실제로 그러기도 했었고.'
'모든 학생들이 너와 같은 성향이라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뭘 더 어쩌기를 바라는 건데?'
'강의를 더 잘하고 싶어.'
'그니까 그게 어떻게 하는 건데?'
'그건... 모르겠으니까, 세미나를... 다른 강의를 보는 것 아닐까?'
"지금 OO이 하고 있는 수업은 이 이상 투자할 필요 없습니다. 강의 도중에 도망친 A나 B들을 보세요. 어디 가서 써주지도 않을 사람들 데려다가 키워놨더니 뭐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이, 약속도 다 깨버리고 가버렸잖아요. 그리고 C 하고 요즘 이것저것 하는 것 같은데. C 얘기 너무 많이 듣지 마십시오. 걔도 옛날엔 망나니였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세상을 바꾸는 교육'을 하자던 대표의 입에서는 그간 들어보지 못했던 거친 말들이 연이어 쏟아졌다. 그렇게 한참을 퇴사자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던 대표는 돌연 분위기를 바꿔서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OO은 아시잖아요. 이 업계가 얼마나 힘든지."
'사회 초년생인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 예, 뭐... 그렇죠."
"지금 하는 강의만으로는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회사에 돈이 없어요.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이것저것 드는 비용도 많고,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그러니 지금 하는 강의는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우리 이제 다른 것들도 준비해 봅시다. 최근에 200억짜리 외주 프로젝트가 수주가 들어오고 있는데, 이것만 잘 되면..."
'회사에 돈이 없어...? 내가 1년에 벌어다 주는 강의비가 얼만데...? 내 연봉의 10배를 강의비로 벌어다 주는데 왜 돈이 없어...?'
"아뇨... 저는 강의가 하고 싶은 건데요. 저는 수업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수업 도중에 해야 하는 다른 문서 작업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너무 뺏기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수업에 소홀하게 되는 것도 너무 스트레스구요. 차라리 다른 일을 하더라도 다른 강의를 만들어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다 못해 전에 말씀하셨던, 외주 강의 말고, 우리 회사 단독 강의 준비를 하라고 하시면 그걸 하겠습니다."
"... 아, 역시 OO. 강의에 진심인 편. OO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최대한 수용할 수 있도록 우리 같이 만들어봐요."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퇴사자는 더 늘어났고, 신입도 들어왔으나 금방 떠나가기 일쑤였다. 강의를 위해 준비한다던 대표는 어느 순간 회사에서 보이지 않았다. 인사팀과 개발팀을 꾸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간간이 들려왔다. 지방으로 출장을 와있는 내 입장으로서는 서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에도, 마음이 맞았던 이들은 하나 둘 회사를 떠나가고 있었고, 나는 지금 내가 맡은 학생들을 위한 수업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은 이전보다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더 많은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리해 보고, 내가 받았었던 만큼 더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 발품을 팔아보았다. 비록 한계는 있었으나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것들을 전달해 보고자 노력하였다.
그런 기간이 몇 달, 돌연 회사는 폐업을 선언하였다.
이유는 전에 이야기하였던 '회사에 돈이 없어서'였다. 돈이 없는 이유는 강의 시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급여를 관리하던 인사팀 직원의 의견은 달랐지만, 회사 자금이, 법인카드가 어떤 용도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자료로 명확히 남아 있지만, 어쨌든, 대표와 그 측근들의 말은 허위사실이라고 하니,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연봉은 동결에, 상여금은 제로에, 야근 수당은 포괄임금제라, 지방 출장비는 외주 업체에서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받아 본 적도 없었으나, 아무튼 회사에 돈이 없었다. - 이마저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외주 업체에서는 지방 출장비를 꼬박꼬박 주었다고 한다. 하하! - 또다시 돈이 문제가 되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그제서야 조금 생각을 정리해 볼 여유가 생겼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강의를 했던 걸까? 나는 정말 지금 수업하고 있는 이 학생들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한 게 맞았을까? 나는 내 기분에 따라 수업을 마구잡이로 망쳤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까? 과연 나는 준비된 커리큘럼대로 수업을 잘 진행하였었을까? 다른 강사들의 수업 방식에 대해 왈가 왈부 할 정도로 나는 잘 준비된 수업을 했었을까?
'왜 보충 수업비 안 준다고 보충 수업 안 했다는 이야기는 쏙 빼?'
'그건 사실 이잖아.'
'그럼 왜 한 반년 간은 6시 이후로는 교재는커녕 문서 작업조차 단 1도 안 했던 이야기는 쏙 빼?'
'수업 마치고 일한다고 돈 주는 거 아니잖아?'
'그러면서 학생을 위한다느니, 강의가 어땠다느니, 누구는 강의 도중에 퇴사를 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강의 준비는 충분히 할 만큼 했어.'
'정말 그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니? 이전 수업 때 썼던 자료를 그대로 보고 읽어주는 정도로?'
'강의 만족도는 전국 1등이었고, 출장지에서는 다음에도 제발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어. 학급 성적도 상위권이고, 취업률도 높아. 내가 뭘 더 해야 해? 돈을 주던가.'
'그래. 나는 그렇게 되었구나.'
'그리고, 그렇게 돈 받으면 내가 어디 쓰는데라도 있어? 커피값, 밥값, 말고는 죄다 저금통에 처박고 있는데, 그것만이라도 좀 더 받으면 안 되는 거야? 평생 이렇게 부산에서 똑같은 수업 하면서 지낼 거야?'
'그렇구나. 나에게는 똑같은 내용일지라도, 학생들에겐 새로운 내용이었다는 것은 이제 중요해지지 않았구나. 그 마저도 완벽히 이해하고자 하던 나는 없어졌구나.'
'이제 충분히 알아. 몇 번이고 똑같은 내용을 하고 있다 보면, 이젠 이 이상 몰라도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래서 그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데, 처음 강의 할 때보다는 연봉이 올랐다지만, 아직은 한참은 부족해. 난 여기 이렇게 있을 순 없어.'
그렇게 나는, 회사의 폐업을 이유로 반강제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