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witter Aug 28. 2023

사치의 기준

과분한 것은 다 사치라면 사랑도 사치품에 들어가야지

 얼마 전, 폐차를 하고 난 뒤, 새 차를 계약하였다. 차가 퍼지기 전, 평소엔 차에 관심도 없었던 내가 어째서인지 유독 SUV에 꽂혀서는 한 참을 온갖 국산 SUV들을 비교하던 와중, 팰리세이드에 꽂혀버렸다. 차라고는 일절 모르는 나에게 디젤이니 사륜구동이니 하는 것들은 사실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고, 오로지 그 디자인에 꽂혀버렸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꽤나 가성비의 모델이 올해출시 하였다고 하는데, 그래서였을까.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팰리세이드를 계약해 버렸다.


 "너는 첫 차를 무슨..."

 "엄밀히 따지자면 첫 차는 아니지. 아반떼 1년 넘게 거의 내가 다 관리했잖아"

 "그래도 그거는 네가 차주가 아니잖아. 혼자 살면서 무슨 그렇게 큰 차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내가 큰 차가 편하다는데..."


 생각보다 형과 부모님의 만류는 강렬했다! 어머니의 반대는 예상했지만 형의 반대는 생각보다 의외였다. 준중형 세단에 구겨지듯 타고 있는 나를 보며 "넌 큰 차 타야겠다."라고 말하던 형이, 막상 팰리세이드를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주며 구입을 만류하였다. 들어보면 모두 맞는 말이긴 했다.


1. 차는 다운그레이드가 안된다.

 - 가장 나를 솔깃하게 만든 이유였다. 


 금방 질려하는 나에게 그게 차라고 해서 금방 안 질려할까? 당장 타고 다니던 중고 SM5도 반년도 안 돼 질려하고 있던 와중이었는데 새 차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비교가 안 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기름값 말고는 유지비가 전혀 들지 않는 10년 넘은 중고차와 내 돈 깨지면서 타고 다니는 내가 산 새 차의 차이는 클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역시 마음 한편이 걸리적거리기는 매 한 가지였다. 솔직히 많은 차들을 돌아보면서 팰리세이드급의 차량 외의 다른 차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디자인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던가, 아니면 실내가 불편한다던가 하는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팰리세이드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들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차량은 팰리세이드 다음 급이 되어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은데... 그건 비싸도 너무 비쌌다.


2. 운전도 잘 못하는 게

 - 이건 오히려 역효과였다.


 운전을 잘 못하니까 신형의 온갖 안정장비가 다 들어가 있는 차가 가지고 싶었다. 그것도 360도 카메라까지 제공을 해주는! 신형 차를! 


 3. 니 벌이를 생각하면 사친지 아닌지 생각해야지

 - 이건... 아직까지도 고민 중인 이야기다.


 가족들에게는... 아니, 사실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내 연봉이 얼마인지 내 월 수입이 얼마인지 알리지 않았다. `대외비` 란 그런 것이고, 내 성격상 내 수입을 굳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항상 "아, 강사 박봉입니다." 하고만 다녔다. 흠... 그래서 싫었냐?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애초에 실제로 그렇게 떵떵거릴 정도로 엄청나게 버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 아마도 - 그런 점에서 생각한다면 분명 사치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계산을 해 봤는데 대충 이래저래 해서 요래 저래하면 한 달에 이 정도니까..."

 "흠...."


 내가, 내 수입을 알리게 되는 계기가 내가 사고 싶은 차를 못 사게 되어서 이를 해명하기 위함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어쨌든 이러저러한 상황과 한 달간 혼자 싱글벙글하며 - 이 때는 차가 퍼지지도 않았고 사실 차를 살 생각도 없었다. 그냥 견적 맞추기 놀이를 하던 중이었을 뿐이다. - 맞춰봤던 견적과 그 후의 상황들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자, 어머니는 그제야 수긍하셨는지,


 "그래도 사치가 아닐까 걱정돼서 그렇지."


 라며 끝내 아쉬움을 토로하셨지만, 어쩌겠는가 차는 이미 다다음주면 출고가 되는 것을. 하하.




 아무튼, 그렇게 일련의 사건들이 흘러가고 나서 잠시 나를 돌이켜 보았다. `누구를 위한 삶인가`를 생각하며 한창 일기를 쓰고 있는 요즘, 나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일 해서 번 돈은 죄다 저금만 하고 있던 내게, 출퇴근을 위한, 그리고 앞으로 못해도 5년, 10년은 타고 다닐 내가 정말 사고 싶은 - 하지만 필요에 의해서 사는 것이 아닌 - 물건을 사본 지가 얼마만이었을까?

 그나마 최근에 산 고가품을 생각해 보면, 컴퓨터, 노트북, 마이크, 캠 모두 수업을 위해, 업무를 위해 구마한 것들이었다. 나를 위해 구매한 물건이란 없었다. 그나마 사치품이었던 액정 타블렛마저도, 당시엔 업무를 위해 구매한 물건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쓰이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공허함이 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학생들 회식에 졸졸 쫓아가며 회식비를 계산해주고 있던 것들 마저도 그런 공허함을 채우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물론, 학생들 회식비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이 기특해서 사준 거지만 - 


 그렇게 따지고 보면, 사치품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치다.라고 하는 행동은 무엇인 것일까? 나에게 과분한 어떠한 무언가? 내가 감당하지 못할 어떠한 행동들? 혹은 그러한 값어치가 나가는 것을 탐내는 것들? 무엇이 사치인 걸까... 


 사치.

 -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


 사전적 의미로는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이라고 한다. 의미론적으로 맞는 말일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비꼬아서 생각해 보자면 그럼... 물질적인 것 외에도 사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과분한 사랑이라는 말은 어쩌면 사치의 한 종류였던 것은 아닐까?

 세상의 모든 짝사랑으로 상사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사치에 빠진 사람들인 걸까?

 흠, 여러모로 피폐해지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근데... 가끔은 그러고 싶을 때가 있는 것 아닐까? 나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정말로 절실하게 갖고 싶다면 가끔은 일탈로 그런 사치를 즐겨봄직한 것 아닐까? 언제나 무료한 삶만을 살아가는 것은 너무... 힘들었는걸. 물론, 다시 그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중독'인 것이겠지.


 흠... 그렇게 생각하면 '사랑'은 정말 큰 사치품이 맞는 것 같다. 그때의 그 행복을 계속해서 갈망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를 위한 삶인가 -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