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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witter Nov 13. 2023

나는 왜 겨울을 좋아라 했던가

이유는 필요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 막 솜털이 조금은 옅어지기 시작할 때 쯤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었다. 여름의 푸르름이라던가, 작열하는 태양의 열정이라던가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걔중에는 '여름 방학' 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 보았다기엔 겨울도 '겨울 방학'이 있으므로 완전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365일 창문만 열면 바다를 볼 수 있는 산 중턱에서 자라온 나에게 여름은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계절이었기 때문에 가장 좋아라 했다. 오죽하면 친척들이 전생에 물고기가 아니었나 농담 할 정도로, 물에 들어가면 입술이 새파래질 때까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하니, 어지간히도 물에서 노는 것을 즐겨했던 것 같다. 바다도 바다지만, 시골에 놀러 가는 날만 되면, 6살 터울의 형과 함께 계곡에서 놀 생각에 한 달 전부터 튜브니 물안경이니 챙기기 바빴다고도 한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렇게나 좋아라했던 계절은 분명 여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름을 싫어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를 기피하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더는 예전처럼 맘 놓고 물가에서 놀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불우한 환경이 되었다거나 피치못할 사정이 생겼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몸에 변화가 막 생기기 시작할 무렵, '광 과민성 알러지'가 발진? 발생?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꽃가루 알러지라 생각해 피부과에서 꽃가루 알러지 약을 처방받아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전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꽃가루 알러지였다면, 초봄부터 시작해 늦어도 한 여름이 될 즘엔 잠잠해 졌어야 할텐데, 되려 늦봄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해 한 여름에는 온 피부가 다 뒤집어 질 정도였으니 꽃가루 알러지가 아님은 진작 눈치 챌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뙤약볕을 단 몇분만 쐬어도 온 팔이며 다리는 두드러기가 일어나고 얼굴의 피부는 뒤집히기 일쑤였다. 그렇게 알러지를 달고 살다보니, 자연스레 해수욕이나 냇가에서의 물 놀이는 물건너 가 버렸다. - 아니었어도 그 맘 때쯤부터 진학, 수능, 입시 등으로 놀러갈 시간은 없었겠지만 - 자연스레 나는 여름이 싫어지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내가 겨울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아니었다. 단지, 계절에 대한 호불호가 사라진 것이 전부였다.


 정확히는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 순간, 아주 추운 겨울, 베란다에 서서 맡은 겨울 바람 냄새가 좋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살얼음이 얼것 같은 추위와 함께 콧속으로 들어오는 냉기 가득한 바람 속에는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향취가 담겨있었다. 누군가는 냉동실에서 나오는 냄새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겨울에 따로 냄새가 어딨냐고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그 특유의 향은 있었다. 마치, 비 온 뒤의 흙내 마냥 평소에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그 겨울내음을 맡으면, 아 이제 완연한 겨울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이면서, 한 해를 시작하는 처음과 끝이 공존하는 계절이어서 그런 것일까, 뭔가 알 수 없는 벅차오름과 아쉬움이 뒤섞인 그 감정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눈이 좋은거 아닐까?"

 라는 이야기에는 눈이라곤 구경도 못 해본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가 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 딱 잘라 말했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겨울을 좋아하게 된 시점엔 이미 부산을 떠나 타지 생활 중에 있었고, 매년 겨울이면 소복히 쌓인 눈을 즐거운 마음으로 밟아보거나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거나 나이에 맞지 않게 즐길만큼 즐겼던 것도 같다. 그런 즐거운 추억들이 한 겨울 첫 눈 처럼 스며들 듯 쌓이고 쌓여서 마음이 움직인 것일지도...

 그래서 그렇게나 좋아하는 겨울이긴 하지만,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아쉽게도 겨울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대체로 슬픈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신화들에서 겨울은 대체로 죽음을 의미했고, 혹은 빼앗긴 딸에 대한 어머니의 슬픔이었고, 먼저간 형제를 대신하는 형벌과도 같은 기간을 이야기했다. 그럴법도 한 것이, 당시에는 겨울이란 죽음 그 자체의 계절임에 틀림 없고, 많은 부모들이 피와 같은 아이들을 죽음의 신에게 빼앗기는 계절일테니 경각심을 위해서라도 구전 설화로 알려야 했겠지. 라고 납득 해 본다.

당장 오늘날에도, 겨울이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이겠지만, 당장 나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니 잠깐 옆으로 제쳐둔다 하더라도, 나도 겨울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기에 싱숭생숭한 기분이 드는 것도 맞다. 가만 앉아서 생각해보면 참 비루한 이유다. 


 "무슨 계절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서스럼 없이 "저는 겨울이 좋아요." 라고 답변할 자신은 있지만.

 "왜 겨울이 좋아요?"

 라고 묻는다면, "겨울 냄새가 좋아서요." 외에는 답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형형 색색 아름다운 꽃 한 송이 구경하기 힘들고, 푸르던 나뭇 잎들도 거무죽죽 해지거나, 다 떨어져 바람에 쓸려나가 앙상해진 가지만 남은 계절. 눈이라도 내려 눈꽃이라도 피면 아름다운 형색을 띄지만, 그 하얗고 밝게 빛나는 아름다움에는 냉기 서린 잔혹함이 숨어 있는 계절. 쓸쓸한 거리에 동해 눈시울이라도 붉어질라 하면, 그 온정의 한 방울조차 바람에 날려버리는 서리 바람에 감정에 호소하기도 쉽지 않은 계절. 간혹, 갑작스레 온정이 담긴 미소라도 내비치듯 따스해진다 칠세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칼바람과 눈보라를 가져와 질척하게 뒤덮어 버리는 계절.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겨울을 좋아라 하고 있는 듯 하다. 이렇다 할 이유가 없는 것도 매한가지고, 어느것 하나 나에게 온정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그 겨울의 차가운 아름다움에 매혹된 것 같다. 설녀의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뙤약볕이 한 창일 때는, 겨울만 그리며 지내다 온전한 겨울이 되면 빨리 눈이 녹아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따듯함에 몸을 늬우고 싶다는 변덕쟁이지만... 

 무어라 설명 할 수 없는 그 매력에 이미 빠질대로 빠져, 그저 스쳐 지나가는 향취만으로도 마냥 즐겁다. 나는 왜 겨울을 좋아라 했던가. 이유는 필요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좋으니 좋은 것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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