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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로 간 잠수정은 나였다.

생각 가라 앉히기

by brwitter

나의 나쁜 습관이자 버릇 중 하나는, 잔뜩 들뜨고 상기된 마음을 가라 앉히기 위해 나를 마음 속 깊은 심해 저편으로 가라 앉히려는 것이다. 참을성이 부족한 성격 탓에 셀 수도 없이 많았던 실수들을 후회하며 이불을 차던 나를 달래고자 선택한 방법이었다. 얼핏 들으면 자제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오해 할 수 있을 것 같아 말하자면, 실상은 썩 좋은 버릇은 아니다. 왜냐면, 그 방법은 '비극의 주인공이 된 나'를 자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 비효율적인 사람이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을 동경한다. 그래서인지 대체로 주변인들을 이상보다 이성을, 낭만보다 현실을 그리는 사람들로 채워 보려 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애초에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사회생활 하는 방법은 배웠다. 보기 좋은 인간상을 만들어 나에게 덧 씌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참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부작용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게 주변인들에게 나를 포장하여 숨어 들다보니 어느새 나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어젯밤인가, 친구의 그림 일기를 보았다. '자꾸 괜찮은 척하다 보면 나조차도 속아버린다니까.' 라며 해맑게 웃으며 근심 어린 자신에게 말하는 단편 삽화였다. 머리를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자꾸 속이다 보면 나조차도 속아버린다니까' 를 절실히 느끼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내가 동경하는 이들로 내 주변을 채워보려 나와 결이 다른 그들과 섞여 들기 위해 나를 속이고 감추던 가면이 진짜 나 인 것처럼 나조차도 잊고 지냈다. 그 가면 너머에 있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잊고 지냈다. 물론, 가면 속의 내가 싫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나를 싫어해서 무슨 이득이 있을까? 단지 생각을 바꿔 잡아야겠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행동 한다고 해서, 세상 모든 이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된 것이다. 이미 진작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겠지만, 사람이 항상 제 때에 철이 들 수는 없는 것이니까, 라고 나를 위안 해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대로 마구잡이로 하겠다는 것도 절대 아니겠지. 적어도 진압 할 수 없을 정도로 불타버리고 있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정도는 갖춰보겠다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덮고 있던 가면을 치우는 것 하나.

그리고 한 장의 가면 속에 숨겨 놨던 나와의 간극을 조금 줄여보는 것.

이렇게 두 가지가 아닐까?



조금은 생각을 가라 앉힐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저를 지하 저 편으로 끌어 내리는 방법이 아니라, 단지 조금 당신께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 정도로만 가라 앉히겠다는 뜻입니다. 당신에게 다가갈 때, 당신을 다치지 않게 할 정도로만 조절 할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잘못된 버릇과 습관들은 뒤 편에 남겨두고 앞으로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앞만 보고 걷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어느새 두리번 거리고 있는 제가 있었습니다. 뭐,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데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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