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하게 엇나간 톱니바퀴는 서로를 갉아먹는다. 나는 너를 갉아버렸다.
지식의 저주란 어떤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도 모르게 추측하여 발생하는 인식적 편견이다.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피해야 할 저주이며, 언제나 주의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학기마다 반복되는 일상을 지내오다보면, 어느새 내가 지금 어느 순간의 어떤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잊어버리게 된다. 특히, 이전 학기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게 되는 것 같다. 학기를 거듭하면 할 수록, 조금씩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지 알아가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매번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을 대하는 방식도 조금씩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되려 그런 여유가 오히려 초심을 잃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그 설렘과 떨림,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마음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는 것 같다. 떠나 보내는 마음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해, 학기가 끝이 날 때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리저리 치이는 주제에, 정작 새로운 만남에는 그런 떨림이 멎어 들고 있다.
익숙해 진다는 것. 편한 사이가 된다는 것. 어떤 일이든 숙달 되면 조금씩 그 일을 하는데 소모되는 비용과 시간이 절약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서로 가까워 질 수록 소비되는 감정의 소모가 줄어든다.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었을 일들도, 조금은 관심을 가졌을 법한 일들에도 긴장하는 정도가 줄어들게 되고, 그런 관계가 계속 되다 보면 어느새 서스럼없는 사이가 되어버리곤 한다. 좋은 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일이든 단순한 인과로 엮여있지 않듯,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감정의 실타래는 그리 쉽게 술술 풀려나가지 만은 않는다. 모두가 각자만의 속도와 거리감과, 선을 가지고 있기에 그 사이가 톱니바퀴 물리듯 딱 떨어지지 않으면 어긋나기 마련이다. 애초에 이가 맞지 않으면 바퀴는 구르지 않을 테니 틀어질 일도 없을 텐데.. 참 아이러니하다. 어긋난 이들이 서로를 긁고 지나간 상처가 파이고 파이다보면, 결국 그들은 헛돌게 될 테니 어쩌면 결과적으론 같은 걸지도…
다행히도 사람은 쇳덩이가 아니니, 홈이 파이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겠지. 때로는 서로가 준 상처에 약을 발라주며, 혹은 같이 쓰라려 해 주며,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도닥여주며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아문 상처가 비록, 흉은 질지 몰라도 미묘하게 어긋났던 사이를 메꿔준다면 아픔을 알기 전보다 더 잘 맞물려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