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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마치 실업자가 된 기분...

언제부터였나... 흉칙하게 변해버린 소중한 내 두 다리

by 브라이연

처음 제주올레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감탄을 자아냈던 주변 풍경에 흠뻑 빠져 힘든 것조차 잊고 마냥 신났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올레길 완주를 하고 나니 잠시 꿈을 꾼듯한 기분도 들고 약간 허탈하기도 하고 그렇게도 매일매일 바쁘게 걸었던 일정이 이젠 없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묘했다.


완주를 한 다음 날 아침...

서울로 돌아가려면 아직 이틀이 남았다. 하루는 서귀포 제주올레길 본부에 가서 완주증을 받아 오기로 했으니 남은 하루는 뭘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이제 더 이상 강제적으로 걸어야 하는 숙제는 없어졌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유 있게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을 먹어볼까 생각하다가 오름을 하나 오르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호텔 앞에서 샛별오름까지 가는 버스 노선을 확인 후 다시 지긋지긋한 배낭을 메고 출발!

평일이라 그런지 오름 입구 주변의 주차장은 한가했다.

'COVID19 OUT' 제발좀 사라져라...

천천히 오르기 시작하는데 역시 이 세상에 쉬운 오르막길은 없나 보다. 아주 우습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샛별오름의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헉헉대고 땀은 또 얼마나 주르륵 흐르던지...

그렇게 끙끙대면서 정상에 오르니 전망이 확 트이면서 상쾌했다. 그렇게 많이 걷고 운동을 많이 해도 이까짓 오름 하나 오르는데 땀이 그렇게 흐른다...

그래도 호텔에서 빈둥거리면서 쉬기보다는 배낭 메고 나온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갈 땐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 갈증이 나서 시원한 한라봉 주스 한 잔 사 마시고~

한라봉주스.정말 맛있음~

다시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는데 고속도로 같은 길에 버스정류장은 보이지 않았고 한참을 어리바리하게 방황하다가 겨우 찾았으나 40분을 기다려야만 했다. 뭐 버스정류장에서 이 정도의 기다림은 제주에 와서 아주 일상이 되어버렸으니...

편하게 땅바닥에 앉아 음악을 듣다 보니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버스는 스멀스멀 눈앞에 그어와 문을 열어주었고 다시 호텔로 복귀하니 대낮이었다.


또 뭘 할까 고민하다 문득 생각난 것이 제주공항 주변에 공항이 뜨고 내리는 모습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옷을 갈아입고 또 터벅터벅 한 40분 걸으니 그 유명한 스팟에 다다를 수 있었다.

혼자 삼각대 세우고 비행기가 머리 위로 지나갈 때 수십 번 점프를 해대며 놀았다.

점프는 내가 자신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정말 혼자 잘 노는 것 같다. ㅋㅋ

그렇게 수십 번을 점프하며 놀다 보니 휴대폰 카메라에 찍힌 머리 위 비행기 점프샷은 나름 훌륭했다.

감사하게도 오후에 날이 더욱 맑아져 나의 계속된 점프샷에 힘을 실어주었다.

점프놀이를 끝내고 다시 호텔로 걸어가는데 양쪽 발목과 종아리가 너무 가려워 잠시 길가에 앉아 다리를 보니 피부 트러블이 심한 상태를 확인했다.

충분히 그럴 만도 할 게 참 많이 걷고 강렬한 햇볕에 그렇게 오랜 시간 노출됐으니...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다시 확인해보니 다리 전체가 시뻘겋게 부었다. 그리고 오돌톨한 피부 알레르기가 다리 곳곳이 아닌 두 다리 전체와 엉덩이까지 점령한 상태였다.

종라리를 손으로 만지면 마치 딱딱한 무를 만지는 느낌...

지난 태국에서의 500km 걷기 이후 이런 고통은 태어나서 두 번째 겪는 아주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그런 가려움이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언제가 내가 마주하게 될 산타아고 순례길의 긴 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지...

아무리 피곤하고 가려워도 밥은 먹어야 했기에 호텔 근처의 해물라면 맛집에서 세상 가장 좋아하는 라면에 밥 한 공기 말아서 호로록 마셔버리고 바로 다시 호텔로 복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인 라면!!


피곤했다. 몹시 피곤했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와르르 몰려오는 것처럼 몹시 피곤했다. 이제 당분간은 정말 걷기가 싫어졌다.

마지막으로 호텔 앞 별다방에 가서 이름이 길어서 기억조차 나질 않던 딸기맛의 무언가를 사 마시고 난 후 나는 호텔로 돌아가 그날 다시는 밖에 나가지 않았다...

호텔도 그립고 호텔 옆 별다방도 그립고... 호텔.앞 무지개해안도로와 바닷가도 그립고 또 그립다!!

그리고 다리의 그 가려움은 서울에 올 때까지 계속됐으며 일주일 동안 나를 괴롭혔다.

이제 나의 길고 길었던 제주에서의 마지막 일정...

제주올레길 완주증 받으러 가기 스케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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