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엄마..

아들로서 엄마한테 잘해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합니다.

by 서재의 사업가

[못난 이름, 아들]

필자는 엄마의 아들이다.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에는 나의 엄마가 나를 낳아 받아 들고, 세상을 다 가졌을 만큼 기뻐했을 터.

그런 아들이 어느덧 30 중반을 바라보며, 아들을 낳아 기르고 있다.


필자는 스무 살이 됐을 때, 남들보다는 조금 일찍 자립했다.

대학생 시절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군입대, 취업을 하며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아들을 키우고 있다.


처음 독립을 했을 때는 즐겁기만 했다. 통금시간도 없고, 굳이 뭘 하지 않아도 눈치 보이지 않았다.

TV 채널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볼 수 있었고,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을 해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 더 시간을 전으로 돌려보면, 중고등학생 때는 사춘기와 대학입시를 핑계로 온갖 짜증과 투정을 엄마에게 부렸다. 어리광이라기보다는 솔직히 엄마가 만만했고, 엄마만 내 말을 들어주려고 했다.


솔직히 필자는 알았다. 엄마는 내가 대학입시를 치르면서, 무엇하나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눈도 못 뜰 만큼 힘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따뜻한 아침밥을 차려줬다. 하지만 못난 아들이었던 나는 엄마에게 반찬투정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엄마와 보내는 시간보다 같은 반 여자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재밌어졌다. 심신에 변화가 찾아오면서 엄마와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대화를 피했고, 필요한 말만 했다. 그렇게 엄마와의 거리를 애써 나만 멀리했다. 엄마는 아니었는데...

초등학교 시절에는 새 학기 준비물을 사러 엄마 손을 잡고 다녔다. 그런 엄마한테,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지지 않은 학용품을 사줬다고 투정했다. 못난 아들은 일찍이 못난 품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못난 아들로 낳았다고 투정하고 싶지 않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길렀다. 나름 좋은 음악과, 좋은 글, 좋은 상황 속에서 태교를 했었고, 최선을 다해서 나를 양육했다. 내가 스스로 자처해 부족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엄마는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나에게는 최고의 존재일 것이다.



[나만큼 착한 아들 없다고 위안했다]

필자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소위 "깽값"을 들이는 일이 없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필자가 자란 동네에서는 남자들은 싸움질하며 힘을 과시하는 것만이 본인이 높아지는 것으로 착각하곤 했다. 특별히 잘못한 일이 있어도, 싸워서 이기는 모습을 보여야 했고, 그래야 친구들 사이에서 우상처럼 여겨지곤 했었다.


필자는 발육상태가 남달랐던 탓에 또래들보다 항상 키가 컸었다. 덩치도 커서 학교에서는 각종 운동대회가 있을 때마다 대표로 출전하곤 했다. 힘을 과시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깽값"이 나올 만큼은 과시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필자는 항상 이런 점을 본인의 가장 잘한 면으로 엄마한테 내세우곤 했다. 다른 집 아들들은 "깽값" 때문에 집도 판다던데, 나는 그런 게 없었다고... 못났다...



[엄마가 필요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독립을 하면서 약 10년 간 엄마 밥을 못 먹고 지냈다. 명절이나, 가족모임이 아니고서야 특별히 엄마 밥을 맛볼 기회가 있지 않았다. 매번 엄마는 반찬을 보내주곤 했지만, 회식, 모임, 외식들로 반찬은 그대로 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다 한 번씩 혼자 있던 자취방에서 아프곤 했다. 아플 때마다 엄마 밥이 먹고 싶더라. 아플 때마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군 복무 시절에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결국 내가 위로받으려고 엄마가 필요했다.

맞벌이 부부인 필자는 아들을 돌봐줄 가족이 필요했다. 필자는 베이비시터나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이 아직은 낯설다. 또 필자의 필요에 따라 엄마에게 부탁했다. 아니 맡겼다. 그래도 엄마는 아들이 해달라는데 해줘야지라고 받아쳤다. 아무런 싫은 내색 없이...


또 그렇게 엄마는 나에게 충분했다.

과분할 만큼...



[엄마가 필요하다]

어제 저녁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던 엄마에게 눈이 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눈이 갔다. 엄마도 화려한 젊은 시절, 아가씨라는 수식어로 꽤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엄마의 머리에도 하얗게 머리카락이 변해있었다.

엊그제 봤을 때는 새치 정도였던 것 같은데... 새치염색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닐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는 게 야속했다. 내가 너무 무관심하고 살았나 보다.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쉬고 싶다는 핑계로, 엄마한테 신경을 못썼다.

입에 올리기 싫지만, 내 손으로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지만, 머릿속에 담고 싶지 않지만, 부득이 친구들이 하나둘 모친상을 당해,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잦아진다. 나 또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맞이해야 할 순간이겠지만, 우리 엄마만큼은 영원했으면 좋겠다. 영원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다.

그냥 엄마가 필요하다. 이제는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냥 엄마가 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그냥 언제까지나 어리광 부렸던 아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내 호칭이 좋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엄마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어떤 존재인가, 어떤 존재일까...

한 번도 살갑게 "엄마 사랑해"라고 못하는 못난 아들은 오늘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학력, 학벌과 업무능력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