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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라비 Oct 08. 2021

코로나 커플이 되다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시기에 자가 격리하기






주말에는 시간을 꼭 같이 보내려고 하는 우리. 보통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P네 집으로 가서 같이 맥주 한 잔에 영화 보고, 토요일에는 어디 멀리 나갔다가 집으로 오는 식으로 데이트를 하고 있다. 9월 마지막 주 주말은 엄마 수술 전 마지막 주였고, 아무래도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아주 잠깐 보기로 했었다.


코로나 때문에 수술받는 사람들도 절차가 더 복잡해졌다. 수술 전에는 당연히 음성 결과가 있어야 하며, 대부분의 병원은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며, 보호자는 단 한 사람만 면회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 보호자는 아빠 대신에 내가 하기로 했고, 엄마 수술 날짜에 맞게 미리 연차도 쓰고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 수술은 화요일이지만, 전 날에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입원 예정이었다. 토요일에는 아침 일찍 선별 진료소로 갔고, 허리가 아픈 엄마는 벤치가 앉아있고 내가 줄을 서서 대기했다. 한 30-40분 정도 기다렸을까? 저 긴 면봉을 어떻게 코에 집어넣냐면서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검사도 잘 받았다. 엄마가 사고 싶었던 가디건도 나온 김에 좀 사려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것을 못 찾고, 결국 맛있는 점심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P랑 저녁만 잠깐 먹고 올게." 엄마가 내심 서운한 눈치였다. 어차피 일요일에도 엄마와 함께 집에 있을 테니 잠깐 저녁만 먹고 오자 해서 버스를 타고 나갔다. 사실 그 전 날, P가 약간의 감기 증상이 있었는데 엄마 수술도 그렇고 몸이 좋지 않으면 보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토요일에 일어나니 열도 전혀 없고, 괜찮다고 해서 만나기로 했다. 거의 저녁 시간이었기 때문에 커피 한 잔 마시고, P는 머리 하러 가고 나는 집으로 와서 저녁을 만들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P가 심하진 않았지만 전에 하지 않았던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코로나 자가진단키트를 해 본다고 한다. 그래, 확실한 게 좋으니 출근 전에 한 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그러라고 했다. 음식은 다 하고 이제 오래 끓이기만 하면 됐고, 설명이 한글로 되어 있어 질문이 있는지 나를 부른다. "양성이 몇 줄이라고 적혀있어?" "여기 봐봐, 두 줄이 양성이고 한 줄이 음성이야." "Are you serious?" ... 두 줄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면서 나머지 한 세트도 다시 해 보았으나, 역시나 두 줄. 양성이었다.


우선 나는 자가진단키트가 얼마나 정확한지 찾아봤다. 물론 경우에 따라 자가진단키트에서 양성 나오고, 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올 때가 있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P는 두 번이나 양성이 나온 건 양성이라고 확신했다. 아... 엄마 수술....... 어떡하지? 일단 가족이나 회사에 알리기 전에 어느 정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찾아보는 게 필요하겠다 싶어서 1339에 전화했다. 거짓말 안 하고 30번 정도 전화하니 연결이 됐다. 증상이 미미해 PCR 테스트를 아직 받진 않았고, 자가진단키트에서 양성이 나온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당장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없는지? 우선 내일 아침에 선별 진료소가 아닌 보건소로 가서 진료를 받고, 대중교통은 타지 말고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자가진단키트라도 하는 것이 마음이 놓이겠다 싶어서 편의점에 가서 두 박스 더 구매하고, 집에 와서 해 보니 일단 나는 음성이었다.






Now, it's time to face the music. P는 직급자에게 시간 편할 때 바로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우선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토요일 저녁이라 아빠가 한 잔 하고 있었다. "아빠 약간 취한 거 같은데 일단 내 얘기 잘 들어봐." 아빠에게 상황 설명을 했고, 지금 당장 검사받을 수 없어서 내일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보건소로 가서 검사받을 예정이라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엔 여기에서 자고 가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으니 엄마에게 바로 전화가 온다. "이게 무슨 소리야?!" 하아... 직장보다 엄마가 제일 마음에 걸렸는데... 일단 자초지종을 다시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은 회사에 연락을 했더니, 큰일이 아닐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결과 나오는 대로 알려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다 돌리고 나니 거의 저녁 11시. 저녁도 못 먹었는데 허기도 안 느껴진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만든 음식이니 늦었지만 먹자고 했고, 그렇게 P와 나는 멀리 떨어져서 저녁을 먹어야만 했다.


다음 날 아침, 바닥에서 자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잠을 잘 못 잔 P가 헤롱헤롱하고 있다. 원래는 9시에 도착하게끔 출발하려고 했는데, 버스도 타지 못해서 한 시간을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우선 조금 더 자게끔 내두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다행히 날씨는 좋았다. 보건소를 향해 가는 것만 아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거의 50분을 걸어서 도착한 보건소. 다행히 줄이 길진 않았다. 자가진단키트에서 양성이 나왔다고 하니 더 빠른 줄로 안내해 주었다. 둘 다 검사를 하고 보건소를 나온 시간이 오전 11시. 또 먼 길을 걸어가야 했다. 제법 날이 더워져서 물도 먹고 싶었는데, 그냥 꾹 참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 다른 일을 하면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너무 우울했다. 무엇보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간단하게 점심을 챙겨 먹고, 잠시 눈을 붙였다.






그렇게 저녁 10시 정도가 되었을까? 띠링. 문자가 도착했다. 보건소에서 음성이라는 문자였다. 나보다는 P가 급한데 P 핸드폰은 울릴 생각이 없었다. 월요일 아침이 되었고, 결과에 따라 출근 여부가 결정이 되는 만큼 일찍 일어나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8시 50분부터 전화해서 결과를 확인하려고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고, 9시 15분 드디어 전화가 연결이 되었다. "아, 안녕하세요. 자가진단키트에서 양성이 나와서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름을 말하자마자 아-하고 대답하는 보건소 직원분. "아, P 씨. 저희가 전화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직 연락을 못 드렸네요. 우선 양성 맞고요..." P는 양성이라고 확신을 했지만 나는 전화를 하기 전까지 아직도 작은 희망을 버리지 못했는데, 정말 양성이었다. "일단 저희가 우선 전화를 다시 드릴 건데, 집에서 대기하고 계시고요. 지금 전화 주신 분은 누구시죠? 같이 계시는 거라서 선생님도 2주 자가 격리하셔야 돼요." "네..." 머릿속에는 엄마 생각뿐.


회사에 전화해서 나는 음성이지만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 격리해야 한다고 전달했고, 병원에 가고 있는 아빠에게도 전화해서 소식을 전달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코로나 하면 엄청 아프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저렇게 멀쩡한데 코로나라니.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


보건소에서는 역학조사를 진행했고, 격리시설은 현재 자리가 없어서 며칠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바로 배정이 되는 거면 P집에서 격리를 할까 했는데, 적어도 이틀 정도 걸린다고 했다. 대중교통을 타고 집에 갈 수 없었기에 아빠가 입원 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집에서는 마스크 끼고, 식기 따로 쓰고, 계속 떨어져 있었다. How sad... 저녁 6시경, 아빠가 데리러 왔다. 아빠가 사 온 이부프로펜 약을 전달하고, 나는 일단 집으로 향했다.






이틀 정도는 나도 증상이 전혀 없었으나, 수요일 늦은 오후에 발열이 시작됐다. 아, 올 게 왔구나. 일단 자가 키트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아서 격리 담당 직원에게 전화해서 내일도 증상이 있으면 PCR 검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목요일, 역시나 발열과 인후통이 있어서 자가진단키트를 해 보니 양성이다. 담당 직원에서 전화를 했더니, 보건소에서 바로 연락이 왔다. 집에 아무도 없고, 보건소까지 도보로 가기에 너무 멀다고 설명하니 오후에 직원이 갈 거라고 한다. 오후 5시경에 보건소 직원분이 도착했고, 현관 앞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결론적으로 P는 확진을 받고 4일이나 지난 금요일이 되어서야 생활치료센터로 이동했다. 나는 엄마가 퇴원하고 집에 돌아올 예정이라 주말에 무조건 이동해야 한다고 미리 요청드려서 그런지 일요일에 바로 이동됐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엄마는 수술도 잘 받고, 이제는 조금씩 걷기도 한다고 한다. 나 때문에 퇴원 날짜를 조금 미뤄서 어제 날짜로 해서 집으로 갔다. 저녁 먹냐고 전화했더니 아빠가 구워준 고기 받아먹고 있다고 한다ㅋㅋ 귀엽기도 하지. 15년 전에 엄마가 처음으로 수술받을 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병원도 잘 못가보고 그래서 이번엔 정말 잘 챙겨주고 싶었는데 마음이 아프다.


좁은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과 일주일 정도 같이 지내고 있고, 일요일에 하루 일찍 퇴소할 예정이다.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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