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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May 15. 2020

처음으로 자해를 했다.

3년 전, 처음 갔던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잘 맞는 편이었다. 약도 그냥저냥 부작용 없이 괜찮았고, 선생님의 상담 스타일도 잘 맞았다. 학기가 끝나고 본가에 잠시 내려가 쉰 후, 다시 병원을 가려니 학생에게는 일주일에 1~2만 원씩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병원비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병원을 반년 정도 안 갔다.


다시 병원을 가야지 마음을 먹었던 것은 18년도 1월이었다.

당시에 죽음을 주제로 한 웹툰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제목도 작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용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불행하고 우울한 사람들의 자살을 국가가 나서서 도와주는 세계였다. 주인공이 자살 조력자 같은 역할이었는데, 올바른 죽음을 도와주는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갖고 일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웹툰의 세계관에 너무 빠져들어서였을까. 처음으로 아 그냥 이렇게 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살시도라고 할 만큼의 행동까지는 가지 않았다. 당시 나는 기숙사에 살고 있었고, 약간의 양심 때문인지 여기서 죽으면 남들한테 너무 민폐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다시 정신과를 찾았다. 이번에는 기숙사에서 멀지 않은 여자 의사가 있는 병원이었다. 상담도 별로, 약도 전혀 안 맞았다. 그때쯤 설날이 끼여있어서 연휴를 핑계로 약을 많이 처방해달라고 했고, 이미 충분히 많은 필요시 약도 더 처방해달라고 했다. 의사는 약간 고민을 하더니 알겠다고 하며 약을 처방해줬다. 당연히 약을 받고 한 번도 먹지 않은 채 보관만 해뒀다.


이따금 우울해질 때마다 약을 하루 이틀씩 먹었다. 신경안정제가 포함되어있어서 금방 잠에 들곤 했다.

예전에 전공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우울증 치료에서 가장 환자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 시점이 치료를 시작하고 증상이 호전될 때쯤이라고 하셨다. 그 전에는 너무 무기력해서 자살조차 시도하지 않는다고. 그때는 그렇구나 했는데. 실제로 내가 겪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약을 먹고 약간 기분이 나아지면 그래도 책상에 앉아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뭘 할까. 뭔가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너무 무기력하다 아직도.

그때 처음 자해를 시작했다.



처음엔 심하지 않았다. 죽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죽는시늉을 했다.

칼로 그으면 많이 아픈가. 죽으려면 세로로 깊게 그어야 한다는데. 살짝만 해볼까. 정신 차려보니 손목에 피가 송골송골 맺혀 떨어지고 있었다. 으 엄청 따갑네. 나는 못 죽겠다.

그 와중에 혹시나 감염되어 염증이 생기진 않을까 해서 상처를 열심히 소독했다. 그럼 내 모습을 보니 웃겼다. 죽을 용기도 없는데 죽음 코스프레라니.




시작이 어렵다고, 처음 자해를 한 이후에 일주일에 한 번씩. 두 번씩. 세 번씩 빈도가 높아졌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희미한 흉터들이 생겨서 반팔을 입을 수가 없었다. 겨울이라 다행이네하는 철없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이렇게 자해하는 건 나쁜 일일 것 같아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약을 처방받고 좀 쉬라는 말을 들었다. 쉬다니. 이제 일 년만 다니면 졸업인데. 쉬면 뭘 하지. 뭘 할 수는 있나.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예예 하고 병원을 나섰다. 다시는 병원을 가지 말아야지.


그렇게 약대신 술을 마셨다. 일주일에 4~5번쯤 술을 마시고, 술 약속이 없으면 혼자 마셨다. 그때 옆에 같이 있어준 친구가 날 많이 챙겨줬는데, 술 많이 먹지 말고 우울하면 자기랑 같이 학교 호수 산책이라도 하자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좋은 사람들이 곁에 많아서 지금 숨 쉬며 살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반년쯤 지났다.


그 사이에도 자해는 했다 말았다를 반복했지만, 빈도는 줄어들고 있었다.

마지막 학기가 시작될 때쯤에는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왜 사람들이 상담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상담보다는 약이 더 필요하다는 것도. 그때 의사 선생님 말대로 그냥 쉬었어야 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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