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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May 23. 2020

나눔 했는데 나눔 받아버렸다.

이사 오고 어느 정도 짐 정리를 끝내니 안 쓰는 물건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이건 얼마 안 하니까 버리고.. 이건 비싸게 주고 샀는데 중고나라에 내놔야겠다. 열심히 정리를 하고 있는데 작년 이맘때쯤 사놓은 고양이 디퓨저, 펠리웨이가 눈에 띄었다. 흠 저거 좀 비싸게 주고 샀었는데 팔까? 요리조리 돌려보며 팔아도 될까 고민하는데 EXP 날짜가 보였다. 헉 07/20 이라니 두 달도 채 안 남은 제품을 팔 수는 없지.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데.


그래, 나눔 하자!

약 1/3 정도 사용한 펠리웨이 멀티캣

물건 사고팔 때만 들어가는 고양이 카페에 들어가서 펠리웨이 멀티캣 나눔글을 올렸다. 나도 이사하고 애들이 쌈박질을 하는 통에 구입했던 제품이라, 아마 다묘 가정에서 필요하리라.


나눔인데 멀리까지 나가거나 번거롭게 택배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글을 쓴 이번 주말에 우리 집 근처까지 와서 직접 가져갈 수 있는 사람에게 나눔 하겠다고 글을 썼는데, 조회수가 금방 올라갔다. 요즘 펠리웨이 구하는 글이 많더니, 필요한 사람이 많긴 하구나. 하긴 코로나 19 때문에 직구를 해도 배송이 안되니까. 당장 급한 사람들은 쓰던 중고 펠리웨이라도 필요한 모양이었다.


꽤 늦은 시간에 글을 올렸는데도 댓글을 달아준 사람이 있었다. 직거래하는 사람이 없으면 착불이라도 좋으니 택배로 보내달라는 댓글. 귀찮지만 주말까지 직거래가 없으면 그러겠노라고 답글을 달았다.

곧이어 근처에 산다고 주말에 직접 오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안심번호로 문자를 달라고 하고 시간 약속을 잡았다.

와중에 어떤 분이 필요한 사람에게 펠리웨이를 나눔 해줘서 고맙다고 복 받으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게 뭐 복까지 받을 일인가? 마음이 따뜻한 분이군.


그렇게 잊고 있다가 주말이 되었다. 상대방은 2시~3시 사이에 도착한다고 문자를 보냈고. 나는 알겠다고 조심히 오시라 했다.

나눔 당해버린 고양이와 인간의 간식

나는 남자 친구에게 잠시 화장실을 가겠노라고. 혹시 그분이 연락이 오시면 자기가 대신 나가줘! 하고 화장실을 갔다. 타이밍이 얄궂게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남자 친구가 이거 종이가방 드리면 돼? 했다. 헉 오셨나 보군.


응 그거 가져다 드리고 돈은 받을 거 없어! 했다.

한 5분쯤 지나서 그가 돌아왔는데, 손에 작은 종이가방을 들고 왔다. 뭐야? 하니 펠리웨이 나눔 받은 분께서 고양이 간식과 인간 간식을 챙겨주셨다고. 음. 이러면 나눔 한 의미가 없지 않나. 30분 거리면 여기까지 오는데 기름값도 적지 않게 들 텐데.

얼굴도 못 본 그분의 호의를 홀라당 받아버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문자를 남겼다. 애들 간식 잘 먹이고 인간 간식 잘 먹겠다고. 그리고 고양이들의 무사 합사를 기원한다고. 즐거운 주말 보내라는 인사말로 마무리했다.


급히 필요했던 거라며, 훈증기랑 음료 감사하다는 말로 답이 왔다.

별생각 없이 물건을 정리하다 나눔 했는데 오히려 나눔 받아버려서 강제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간식을 맛있게 먹는 오코씩

나눔 받은 간식은 우리 고양이들 뱃속으로 들어갔다. 챠오 츄르는 너무 자극적이라서 잘 주지 않는 간식인데 오랜만에 먹으니 다들 좋아했다.


남자 친구가 담벼락에 부뚜막 고양이가 왔다며 보라고 했다. 부뚜막 고양이는 요즘 매일 우리 집에 밥과 간식을 요구하러 오는 고양이인데, 먹을 복은 있는지 타이밍 좋게 집 앞 담벼락에 앉아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몇 번 본 사이라고 부뚜막 고양이가 끔뻑끔뻑 눈인사를 해줬다. 귀여워. 오늘 간식은 이거야 먹어. 하고 집에 들어왔다.


안 쓰는 펠리웨이 하나로 나도 우리 집 고양이들도 부뚜막 고양이도 모두 행복해진 하루였다.

다음에도 우연히 따뜻함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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