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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May 24. 2020

9# 여행 중에 퇴사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그만..

퇴사하는 날, 소장님은 나에게 재택근무로 서류 작업만 할 생각이 없냐고 거듭 물어보셨다. 나는 페이가 맞으면 할 생각은 있다고 답했다.


그렇게 잊고 살았는데 여행 중에 퇴사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친구와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전화가 울렸다. 나 같은 아싸에게 전화할 사람이 몇 없는데. 화면을 보니 연구소장님의 전화였다. 헉. 일단 친구가 운전 중이니 전화를 거절하고 30분 후에 내가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문자를 남겼다.

왜지? 왜 전화 왔지? 하고 생각하다가. 아 혹시 진짜 나한테 재택근무시키려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약간 소름이 끼쳤다.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친하게 지내던 회사 언니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소장님이 나한테 또 일을 주려는 것 같다고 논문 조사하는 일을 맡길 것 같다고. 아 그거 때문에 연락 오셨구나 하고 ㅋㅋㅋ 하니 나는 퇴사했는데 회사에서 내 이름이 너무 자주 거론된다고 한다. 일손만 모자라면 나를 찾는다고. 아니 있을 때 잘해주던가. 이 사람들 참.


친구는 페이랑 조건이 맞으면 하는 것도 괜찮지 않냐고 했다. 맞아 조건만 맞으면 말이지. 하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목적지인 순두부집에 도착했다. 여담이지만 내가 먹어본 순두분 중에 제일 맛있었다. 이래서 강릉 초당순두부가 유명하구나.

식당 들어가기 전에 전화를 드렸는데 무슨 일인지 소장님은 부재중이셨다. 뭐 바쁘신가 보지. 순두부부터 먹자. 순두부 백반을 기분 좋게 먹고 나오니 소장님께 전화가 왔다.


그는 일단 내가 재택근무를 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어떤 일을 하게 되냐고 물으니 지금 필요한 건 논문 정리하는 것이라고. 나는 조건만 맞다면 할 의향은 있노라고 답했다. 알겠다고 그러면 실무자를 통해서 이런저런 조건과 내가 하게 될 일을 전달받을 거라고 하셨다. 네 들어가세요.

전화를 마치고 그래 조건이 뭔지 들어나보자. 근데 나한테 전화 올 실무자가 누가 있지? 내가 생각하는 그 친구가 전화가 오려나.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연구소 막둥이 선생님의 연락이 왔다. 

나는 전화를 걸어 잘 지내냐고 쌤이 논문 정리 담당이냐고 물었다. 당연하죠 실무자가 저 아니면 누가 있어요. 아 맞아 그렇지 참. 그럼 저는 무슨 일을 하나요 하니 정말 논문을 읽고 실험 방법, 결과 등을 요약하면 된다고 했다. 아 별거 없네요. 


근데 문제가 윗분들은 9시부터 6시까지 풀타임 재택근무를 하기를 바란다는 것. 말하면서도 그는 머뭇거리면서 그렇게 일하면 소영쌤이 퇴사한 의미가 없지 않나 싶다고 했다. 진짜 그러네요. 그럴거면 제가 그냥 한 달 더 다녔지. 내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니 그는 내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그렇게 일할 거면 왜 퇴사했겠어요 했다. 건당 얼마씩 페이를 주면 모를까 그렇게 고정적인 시간으로는 일할 수 없다고. 그는 알겠다고 다시 윗분들이랑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역시 끔찍한 의도를 갖고 나에게 연락한 거였군. 으으.

괜히 여행 왔는데 전화를 받았나 싶기도 했지만, 내가 연락을 받지 않아서 곤란해졌을 몇몇 사람을 생각하면 받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퇴직신고도 아직 안 해주고, 퇴직금 정산도 아직 안 해줬는데. 퇴사한 사람한테 단기 아르바이트할 생각 없냐고 연락하는 건 무슨 매너람. 정말 알 수 없는 회사다.



그래도 동해바다가 예뻐서 용서가 된 하루였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내 퇴사 일기. 언제쯤 마지막 글을 쓸 수 있을까.





http://blog.naver.com/bshong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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