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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May 30. 2020

10# 아직 어리니까

정말 어리기때문에 괜찮아요?

퇴사를 한지도 벌써 3주가 지났다.

그동안 미뤄둔 운전면허도 준비하고, 나름 자기계발이랍시고 파이썬 입문 수업을 신청했다. 오랜 친구와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같은 팀 사람들과는 종종 연락을 했다. 스타트업이라 초기 세팅을 함께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던 분들이기에 회사를 그만뒀지만 자주 연락하며 회사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우리팀 **도 사직서를 냈다고. 그리고 다른팀 ##도 사직서를 낼 예정이라고. 어 그럼 프로젝트 하던 사람들 다 나가네요. 아직 내 후임자도 뽑히지 않은 상황에서 퇴사자만 줄줄이 생기니 회사는 영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수당도 받지못하는 야근, 주말출근을 견뎌낼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처음 계획은 5월에 운전면허시험 합격하기였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91점이라는 나름 괜찮은 성적으로 통과하면서 약간 기고만장했는데, 기능시험에서 보기좋게 떨어졌다. 내가 운전면허 기능시험에 불합격했다는 소식에 회사 사람들은 셀수없을만큼 많은 ㅋㅋㅋ를 보내며 놀렸지만, 또 다음 기능시험날에는 꼭 합격하라고 응원을 하기도 했다. 응원 덕분인지 아니면 한번 해봤다고 긴장을 덜해서인지. 90점으로 장내기능시험도 합격했다.




지난번에 발행한 아홉번째 퇴사일기의 조회수가 수만을 넘겼다.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거 회사 사람이 보면 자기들 이야기인거 아는거 아냐? 했지만 따로 연락온 것은 없었다.

높은 조회수만큼 좋아요와 댓글도 늘어났다. 그중 기억에 남는 댓글은 내 태도가 눈살이 찌푸려진다며 아직 어리다고 하는 댓글이었다. 음. 내 태도의 어떤 부분이 그 사람에게 불만이었는지 모르지만. 아직 어리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여러 생각을 하게되었다.

댓글을 보고 기분은 나빴지만 글감이 늘어난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나는 절대 내 퇴사를 후회하지 않는다. 그 회사다니면서 앓은 병만 나열해도. 역류성 식도염, 위염, 신우신염, 방광염, 대상포진, 이명, 공황장애. 더 많지만 그만 쓴다. 대학원이 아니었어도 그만뒀을 회사니까.


그림출처 https://pin.it/1t8jDI2


퇴사를 알리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괜찮아. 쌤은 아직 어리니까. 였다.

아직 어리니까 쉬면서 다시 취업준비를 해도 좋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도 늦지 않았다고. 아직 어리니까. 물론 응원의 의미로 전한 말이겠지만, 그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렸다.

그럼 어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도전할 수 없는 건가? 

모르겠다. 어리기때문에 뭐든 있고, 어디든 있는게 아닌데.


내게 조언을 해준 30대 선배들의 말만 들으면 서른이 넘으면 무조건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안정된 가정을 꾸려야 '평범'하게 하는 것 같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사람을 겁쟁이로 만드는 나이인 걸까. 아직 경험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나이가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아직 어리다는 나조차도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끊어내는게 힘들었는데, 마약같은 월급을 몇 년씩이나 받아온 사람들은 더 힘들겠지.

내 주변에는 서른이 넘었지만 다시 대학원에 도전하는 사람도.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는데. '늦지 않았다'의 기준이 있을까.

유난히 우리나라는 나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백세 시대라는데, 인생의 1/3인 서른이라는 나이는 마치 인생의 큰 산같아 보인다.




내가 어린시절, 아빠는 섬유공장을 했었다. IMF로 사업이 망해가는 걸 보면서 자랐고, 공장을 정리한 후 아빠의 직업은 몇번이나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딱히 평생 직장, 평생 직업에 대한 욕심이 없다.

대학원을 진학하게된 큰 이유 중 하나는 여성 연구원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출연연에서는 그나마 보장된다는 것. 출연연에 가려면 학위가 있어야한다는 것때문이지만. 상황이 여의치않으면 소위 말하는 경단녀가 되겠지. 그래도 괜찮다. 지금처럼 블로그 마케팅이든, 과외든, 번역 아르바이트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살면되니까.


아직 어리니까?

내가 나중에 서른이 넘어서 나와같은 20대에게 응원을 해준다면,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라는 말은 하고싶지 않다.

그냥 당신이니까 잘 할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말해줘야지.



퇴사 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퇴직금을 못받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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