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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사이드B Jun 01. 2023

인간들 모두 까기, 내 인생을 구원하러 온 망친 자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열아홉 번째

선의를 가지고 한 행동이 상대방을 구렁텅이로 몰아붙이는 일이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경제관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나에게 돈은 있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애써 그들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경제에 관심을 갖고 욕심을 내게 된 것은 다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회사 덕택이었다. 

이곳은 부동산 교육 업을 하는 회사이다. 

몇 만 원으로도 할 수 있는 주식과 달리 많은 초기 자본이 필요한 부동산은

당연히 나에겐 미지의 세계일 수밖에 없지만

내가 하는 일이 굳이 부동산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조금은 편하게 일을 하고 싶어 입사하게 되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이곳 분위기에 적지 않게 놀랐다.

모든 직원들이 매번 나라의 경제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그리고 자기들이 얻은 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주제뿐만 아니라 더욱더 놀란 건,

이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너무나도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거였다.

일 자체를 즐거워하고, 남은 시간 모두를 자기 계발에 힘쓰는 사람들.

자본주의에서 경쟁할 줄 알고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일부는 이미 경쟁에 성공한 사람들. 

살면서 이렇게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집단을 처음 봤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과 180도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며 

거리감이 들었고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한편으론 이들이 주는 좋은 자극으로 나도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의지도 생겼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이들과 섞이는 대신, 독자적인 나의 길을 걷고자 하였다.

그런데 집단 안에 꼭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 넓은 사람.

좋게 말하면 자신의 영향력으로 널리 이롭게 하려는 사람.

많은 걸 갖고 태어나지 않은 직원 일구(가명)는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유명한 책을 읽고

자신의 가족을 위해 부동산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겠다고 선언을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간 열심히 공부하고 투자하고 또 이곳에 입사해 

부동산과 함께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법을 많은 사람들에게 강의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방법이 옳았음을 느끼고

자신이 직접 얻은 지식과 노하우를 주변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나누며

모두가 부를 얻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는 부동산에 아무런 의지도 없는 내가 참으로 답답해 보였나 보다.

투자금도 전혀 없고 공부할 마음도 없는 내게

틈만 나면 왜 부동산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설득하였다. 

그러던 중, 투자금이 적게 들어가는 투자 물건을 알게 된 그는 나에게 

그 물건을 소개하며 일단 사고, 공부는 투자하면서 해라. 

자기가 투자해 봐야 적극성도 생기고 자본주의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등

많은 맞는 말들을 해댔고, 나는 그 당시 투자로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본 이후라

혹한 마음에 부모님에게 없는 돈을 구걸해 첫 투자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나에게 따로 시간을 내어

부동산 강의를 해주고, 자본주의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하였다.

물론 나도 내 재능을 따로 공유하였지만. 

자기가 얻은 지식으로 본인만 부를 얻으면 되는데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타인을 도울까 잘 이해가 안 갔지만

그것이 그의 성품이고, 또 이것이 내 인복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참으로 마음이 부풀었다.

나도, 우리 집도 돈이라는 걸 얻을 수 있게 되는 건가?

남들은 이렇게 쉽게 살고 있었구나. 

우리도 이제 자본주의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구나.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난 대단히 멍청하고 철이 없어서 또 한 번 소개해 주는 물건을

부모님께 얘기했고, 부모님도 혹하는 마음에 

아빠의 퇴직금을 미리 받아 그것에 투자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 기세가 좋게 올라가던 부동산은 정확히 우리 집이 부동산을 산 시점 이후로 

미국 금리 인상, 경제 불안정 등으로 보기 좋게 하락의 길로 가게 되었다. 

그렇다. 하필 내가 부동산을 산 시점은 그래프 꼭대기였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부동산은 꽤나 크게 하락해서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게 철저하게 내 돈이었으면 그래 좋은 경험했다 생각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을 텐데

아빠가 평생 동안 근무해서 받은 퇴직금이었다. 

어떤 마음이 들지 예상이 되는가?

분노보다 허망함, 체념, 죄송함이었다.

그리고 아 우리 집은 부자가 될 수 없구나라는 단념. 

내가 이 집안을 또 이렇게 무너뜨리는구나라는 죄책감. 

사실 이 모든 상황에 대해 내가 일구를 조금이라도 원망할 수 있을까? 

없다. 

선택은 내 몫이었고, 욕심에 눈을 가려 부동산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용하려 했다. 

그에 대한 대가로 난 아빠의 몇 십 년간의 노동을 허공에 흩뿌렸다.

그냥 돈만 없어진 게 아닌 더 이상의 기회조차 없애버렸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한 번의 기회를 미친 듯이 짜내서 만들어야 하고

반드시 그 기회를 성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왜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결국 난 부모님에게 가서 눈물의 반성을 했고,

부모님은 또다시 바보 같은 나를 안아주셨다. 

하지만, 그래도 이 글의 제목은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이지 않는가.

또, 오늘은 일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한 번은 까야겠다.

내가 그에게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얌전히 살던 나를 부추겨서가 아니다.

하필 이 시기에 이 물건을 소개해서가 아니다. 

사실 나는 일이 이렇게 되고서 단 한 번도 그에게 어떠한 말을 하지 않았다.

혹시나 내가 원망한다고 생각할까 봐 그 어떤 말도. 

그리고 그는 눈치가 보였는지 날 살살 피했다. 

피하기만 할 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 둘은 서로에게 말을 잃었고, 모른 척 하고만 있는 것이다. 

그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나보다 더 정확히 판단하고 있을 것이므로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자, 혹은 이렇게 해보자

는 식의 어떠한 말이라도 있었으면 했었다.

그랬다면 조금은 안심이 됐을 텐데. 

물론, 일구의 입장을 생각하면 참으로 머리 아프겠다 싶다.

그는 나에게만 그렇게 얘기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 모두에게 그는 부동산의 필요성을 어필했고, 투자하게 했기 때문에

현재 가장 많은 분노를 받을 사람도 그이기 때문이다.

분명 그는 선의로 그런 행동과 말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의 양산을 만들었다.

만약, 부동산이 계속해서 좋은 분위기였다면 그는 우리에게 신이 되었겠지.

인생은 절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또한 남의 뜻대로도 흘러가지 않는다.

선의는 선의일 뿐이고, 악의는 악의일 뿐. 

결국 의도는 의지를 이기지 못하고, 의지는 타이밍을 이기지 못한다.

젠장.

경쟁하려고 한 적도 없는데.

이길 생각도 없었는데.

됐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경쟁 속에 살아가야 한다면,

나만의 레이스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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