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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사이드B Jun 02. 2023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평범하다는 것.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이십 번째

평범함을 내가 정의할 수 있다면

난 이 친구를 평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공(가명)이는 14살 때 만난 친구로 

중학교 3년 내내 매일 봤던 친구다. 

물론 그 이후로도 계속 보았지만, 

갈수록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어 현재는 서로의 생사만 확인하고 있다.


걸어서 3분 거리 이내에 살았던 우리는

학교에서도 매일 보았지만, 저녁마다 한 고등학교 농구 골대 앞에서 만났다.

우린 농구를 즐겨 했고 한참 농구를 하다 쉬면서 하는 수다로

많은 얘기들을 나눴었다.


그는 그 당시 여러 꿈을 꾸고 있었는데 배우, 모델이 되고 싶어 했고

난 내가 더 적극적으로 드라마 대본을 뽑아간다거나 워킹을 봐준다거나 하면서 응원했다.

당시에 그가 꿈을 이룰 거라는 기대보다 이 친구가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러웠고

계속해서 꿈을 바라보며 의욕 있게 살아가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쓸데없이 진지하고 비장했으므로 

세상을 욕하는 데에 온 시선을 쏟았고, 

그는 그런 나를 받아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다른 동네에서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셨다.

그래서 그는 슬며시 나에게 교회를 권유했고

종교를 전혀 믿지 않는 나는 몇 번을 거절을 하다 못 이겨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그 당시 그렇게 신실한 종교인은 아니었다.

아니, 술과 이성을 굉장히 좋아하는 신실한 종교인이라고 말해야 하나.


어느 날, 그는 술을 제안했고 성인이 되지 않은 우리들은 

몰래 마실 장소가 필요했다.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실내의 공간.

열쇠를 가지고 있는 평일 저녁의 교회만큼 훌륭한 공간이 있었을까.

그의 제의로 우린 처음으로 술을 왕창 사서

교회 휴게실에서 술을 마셨다.

그 이후로 우린 동네 뒷산이나 교회를 아지트 삼아 종종 술을 마셨고

회개를 하듯 일요일엔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술을 좋아하는 종교인이지만 그는 성적도 평범, 성격도 평범, 외모도 평범에 속하는 내 편한 친구였다.

하지만 그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나를 속상케 했었다.

전혀 사고를 칠 것 같지 않은 온순한 내 친구는 이성에 많은 집착을 보였다.

마치 애정결핍증이 걸린 것처럼 항상 연애를 원했고, 잠시라도 혼자인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연애를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는 하필이면 똥차 컬렉터였고

만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난 한숨을 쉬고, 잔소리를 하고,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도저히 못 봐주겠는 사람이랑 헤어짐을 고민하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단호하게 헤어지라고 말했고, 

그렇게 그를 몇 시간 동안 설득에 성공했지만,

단 한 번에 붙잡힌 이공을 보고 다시는 다른 사람의 연애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이공이는 많은 사람을 만나보면서 조금씩 사람을 볼 줄 알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오래 만난 사람과 아이가 생겼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난 오랜 만에 당황을 했고 다시 내 걱정 주머니에 그를 넣게 되었다. 

성인이긴 했지만 너무 젊은 나이였어서 결혼을 생각하기엔 일렀다.

결국 그는 아이를 지우는 것을 결정하고 난 그와 함께 병원에 가줬다.


수술이 끝난 후 괴로움으로 벽을 긁고 있는 이공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빌었다. 지금 이 순간 조금만 덜 아프기를.


그 이후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인생을 살아갔다.

이공이는 평범한 4년제 대학을 졸업 후 평범한 직장을 다녔고, 

갈수록 종교에 더 심취하였다.


그리고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필요할 때만 부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애인의 선물을 골라야 할 때, 애인 문제로 고민이 생겼을 때,

자기 애인을 소개해 줄 때 등.

그 와중에 빼놓지 않는 이야기는 종교 이야기. 


나는 점점 이공과의 만남이 불편해졌다.

남의 애인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 내 인생은 유하지 않았고

신을 믿기엔 나조차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난 그와의 만남을 조금씩 피하게 됐다.


그는 때가 되어 교회 집사와 연애를 하다 결혼을 했고,

대출받아 작은 빌라에서 전세 생활을 시작하고,

현재는 아이가 태어났다. 


내가 이 친구를 왜 평범하다고 말하는 걸까.

물론 내 인생은 그에 비해 매우 요란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거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공이는 욕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이공이는 욕심이 없다.

인생을 더 멋지게 살아갈 생각도,

엄청나게 많은 부를 얻을 생각도,

요행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꿀 생각도 없다.


그저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자기가 가진 능력으로 그렇게 덤덤히 살아내간다.

그렇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지만 위태롭지도 않다.

안전하고 따뜻하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나로서는 그의 한결같음이 따분해 보이기도 하지만

속으로는 열망하고 있는 그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평범하다 생각하고

그 평범이 대단히 힘들다는 것을 안다.


이공이는 앞으로도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걸음대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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