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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사이드B May 20. 2023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알코올중독자의 변명.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일곱 번째

나는 술꾼이다.

술꾼은 뭔가 귀여운 표현같으니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알코올중독자다. 

이전엔 매일 술을 마셨지만 작년 말쯤 도저히 이대로 살 수 없겠다 싶은

사건이 터져 결국 정신병원을 다니며 일주일에 2회 정도로 줄이고 있다. 


사실 난 선천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몸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 두 분 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고 

나 또한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며 

아무리 마셔도 주량이 절대로 안 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늘 술과 함께 했고

그러기 위해 맞지도 않는 술을 즐기려 노력했다. 


20대 중반까지는 술은 사람들과 놀 때 마시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고 난 정확히 25살에 호주로 워킹을 갔다. 

그곳에서 나는 사칠(가명)을 만났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외국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들은

빠른 시일내에 한국에서 10년 만난 친구처럼 친해질 수 있다.

같은 방은 아니지만 같은 건물에 숙소가 있었기 때문에 나와 사칠은

금방 친해졌고 그 방법은 역시나 술이었다. 


사칠은 나보다 나이가 어느정도 많았었고 

워낙에 자기 사람에게 배풀 줄 아는 사람이어서

매번 한식을 할 때마다 나를 불러 챙겨주었다. (외국에서 한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사람은 천사다)

또, 자신이 먼저 겪은 호주의 즐길거리를 알려주며 항상 날 데리고 다녔다.


나또한 이렇게 이뻐해주는 사칠이 너무 감사하고 좋아

옆에 딱 달라붙어 내가 할 수 있는 애정의 표현을 늘 마음껏 다했다. 


그러다 각자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면서 잠깐 헤어지게 되었고,

또 한 번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을 때 

난 사칠에게 연락했다.

이런 곳에서 이런 저런 알바를 뽑는데 자리가 남는다고,

같이 가서 해보지 않겠냐고. 


마침 그곳에서 만난 연인과 헤어진 사칠은 내가 지원하는 곳에 지원했고 룸메이트로 같이 살게 됐다.

사칠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사는 것은 꽤나 힘이 되고 재밌었다. 

같이 일하니 공유할 수 있는 게 많고 이야기할 것이 많았고,

휴일에는 근방에 다른 도시나 해변으로 놀러가 회포를 풀었다. 


그런데 한 가지 사칠에 대해 더 알게 된 것은 

이 사람은 정말 밤마다 매일 술을 마신다는 것이었다.

보통 가볍게 위스키를 마셨고, 아무리 힘든 날이어도 맥주는 먹었다.

또, 어쩌다 한인슈퍼를 가게 되면 그날부터는 술이 없어질 때까지 소주를 마셨다.

PUB에 가면 어떻게 조합해야 맛있는 지 위스키별로 메뉴얼까지 있었다. 

같은 방에 사는 나는 그런 사칠을 두고 가만있을 수 없었으므로

매일 술마시기에 참여했다.


그렇게 매일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니

그만큼 추억이 생기고 우정이 쌓였는데 

우정만 쌓인게 아니라 불만도 쌓였었나보다. 

다 큰 성인이 한 방에서 사니 크고 작은 불편함들이 곧 생겼었다.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곧 죽어도 예의는 지켜야 하는 생각에 난 꾹꾹 참았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야 할 때가 됐을 때,

난 사칠과 작별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나 시드니에 잠깐 머물었다. 

사칠은 먼저 떠나는 나를 보고 많이 아쉬워했고 

배웅하기 위해 시드니로 와준다고 했다.

그렇게 시드니에 사칠과 친했던 다른 사람들이 모였고

우린 그날도 어김없이 술을 먹기 시작했다.


사실 그날 난 굉장히 피곤해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나 때문에 이렇게 모인 사람들에게 미안해 그 자리에 의무감으로 있었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한 명씩 집에 돌아갔고

그때마다 난 어차피 내일도 만나니 오늘은 그만 쉬러가겠다고 말했지만 

사칠과 다른 사람은 절대 나를 놔주지 않았다.

결국 나와 사칠, 그리고 또 한 사람만이 남은 시점에

그들은 새벽 4시에 카지노를 굳이굳이 가겠다고 우겼고

나는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지만, 참았다.

같이 카지노에 갔다가 게임하는 그들을 보며 

마지막으로 집에 가겠다고 부탁을 했고, 그들은 그제야 보내줬다. 


그렇게 그들에게 해방되어 새벽에 숙소까지 걸어가 침대에 쓰러지고나서

1분인가 2분 뒤 전화가 왔다.

너네 집 앞이라고, 문 열라고...

사칠의 전화였다.

내가 걸어오는 때에 그들은 택시를 타고 내가 묵는 숙소에 온 것이었다. 


나는 그때 꾹 참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았다.

물론 그 날 피곤해서 내가 많이 예민해졌을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같이 살면서 쌓인 불만까지 터진 느낌이었다.

왜 여기왔냐는 질문에 그냥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눕는 사칠에게

처음으로 반말을 하며 나가라고 외쳤다.

지금 뭐하는 거냐고. 피곤하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한번도 이렇게 대놓고 화를 내지 않던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사칠도 적잖이 많이 놀라더니 이내 화를 냈다.

버릇없이 뭐하는 짓이냐고...


파국이었다.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너무나도 의지하고 정들었던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보인 우리 두사람의 모습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우리는 둘 다 처음으로 상대에게 추한 모습들을 보이며 악을 썼다.

그것도 새벽 6시에.


그로부터 며칠 후 난 수습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후, 난 밤마다 그렇게 외로웠다.

술을 먹지 않고 잔다니 말이 안 됐다.

결국 난 술을 먹어야 잘 수 있게 됐다.


내가 술을 매일 마시게 된 이유가 사칠 때문이라고 욕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은 내 선택이었고, 내 의지박약이고, 내가 자기절제를 못하는 사람인거다.


하지만 조금은 원망하겠다.

아무 영향이 없을리가 없다.

사칠은 내게 분명히 존재감이 큰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제와 돌아봐서 생각하면 사칠에게 미안하다.

그렇게 고마운 사람에게 그렇게 못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는데.

그런 아쉬움이 남지만 도저히 연락할 방법이 없어 이번에도 그렇게 떠나보낸다.


살면서 많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 연락이 된다면 한 번이라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말도 하지 못한 채 인연들을 잃고만 있는 나는 정말이지 답답하고 밉다.

이전 08화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묘하게 씁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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