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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사이드B May 18. 2023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묘하게 씁쓸한.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두 번째

오늘 내가 까고 싶은 인간은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짐을 옮겨주셨던 두 명의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이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두 사람을,

두 번째 만에 굳이 떠올려 쓰는 이유는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게 다다.


혼자 살고 있고 나름 미니멀리스트를 표방하기 때문에

나는 평소에 짐이 많지 않다.

하지만, 매번 이사를 할 때마다 도와주시는 분을 한 분 불러 같이 큰 가구를 옮기는 작업을 했기 때문에

이번엔 조금 쉬고 싶어 반포장 이사로 두 사람을 불렀다. 

온전히 쉬기 위해 사치를 조금 부린 것이다. 


그렇게 이사 날이 오고 두 사람은 원룸인 내 방을 훌 둘러보고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었다. 

나가있으면 작업 다 하고 부르겠다는 말에 

잠깐 집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40여 분이 지났을까, 트럭 짐칸에는 내 짐들이 다 올려져 있었고

나는 트럭을 운전하는 한 아저씨와 같이 이사 갈 집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아저씨와 나는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수다보단 아저씨의 성공한 자녀들의 자랑을 들어주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내 아버지 뻘인 그분은 이미 성장해 자기 몫을 대단히 잘 해나가는 딸들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자기와 아내를 너무 사랑해 집을 안 나간다는 귀여운 투정과 함께.

또한, 지금 하고 있는 이삿짐센터 일은 은퇴하기 전 취미 삼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인생을 열심히 살아간 중년의 회고가 만족이라니.

내가 다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고 진심으로 축하드렸다.

또, 우리 아버지가 어디 나가서 자신의 자식들을 이야기할 때

이렇게 밝게 뿌듯하게 말할 거리가 없다는 점에 죄송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만담을 하며 이사 갈 집에 도착했고

짐을 쌀 때보다 더 빠르게 짐이 옮겨졌다.

나는 아저씨의 인생살이를 재밌게 들은 것이 감사해 

카페에서 음료를 사서 드렸다.


이사가 마무리되고, 입금을 하려고 할 때

다른 한 아저씨가 이미 친근해진 수다쟁이 아저씨에게 눈치를 줬다.

그러자 수다쟁이 아저씨는 나에게 생각보다 짐이 많았다며

돈을 올려달라고 말했다.

요기라도 하게 5만원씩 더 달라며. 


흔한 수법이었다. 

조금이라도 돈을 올려 받기 위해 마지막쯤 이야기를 꺼내는 것.

그것도 만만한 사람들한테만.

아마 짐을 쌀 때부터 둘은 이야기를 나눴나 보다. 


알 수 없는 배신감이 조금 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진심으로 그를 생각했고, 축하했으며, 응원했다.

그리고 흘러가는 인생에 잠깐 동안 전혀 모르는 이 사람에게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래서 괘씸했다.


원래 같았으면 말이 길어지는 것이 싫어, 또 무서워서

그냥 그깟 돈 하며 원하는 대로 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더 드리지 않았다.

애써 웃으며 죄송하다고, 저도 그리 여유 있지 않다고 하며 돌려보냈다.


이 두 사람을 겪고 나서 교훈이 뭘까.

만약 다른 아저씨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까?

과연 수다쟁이 아저씨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을까, 나쁜 사람이었을까.


인생은 이렇게 다층적이다. 

좋은 모습만 가지지 않고, 나쁜 모습만 가지지 않았다.

즐거웠다가 불같이 화를 내게 됐다가 이내 단념하게 되는.


우리 인간은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인생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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