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아홉 번째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괜히 안 좋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는 지금 누구라도 열심히 깔 준비가 되어있다.
전투력이 높아진 만큼 정말 대놓고 까겠다는 일념 하에 바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이전에 다녔던 직장 사구(가명)팀장님이다.
사구와의 첫 만남은 면접 자리였다.
그는 최대한 나이스 한 면모를 보이며 면접을 진행했고,
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솔직함으로 임했다.
사구는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고 면접을 보고 난 며칠 후 합격 연락이 왔다.
입사하기 전 며칠의 여유가 있었을 때 그는 다시 한번 연락이 왔었다.
출근하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필요한 목록들을 달라고.
그때 살짝 쎄했다. 그리고 그때 그 쎄한 느낌을 믿고 가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난 불편한 기색을 없애고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변을 했고 출근했다.
본사는 타지에 있고 우리 팀만 서울에서 일을 하는 구조였다.
우리 팀이라고 말하기엔 사구와 나 둘뿐이었지만.
나는 처음에 사구의 과한 친절이 불편했다.
그 친절은 몸에서 나오는 배려의 친절이 아닌
'내가 이렇게 너한테 친절을 베풀고 있어, 너는 받기만 할 거니?'
라는 질문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너무 사람을 오인하고 편견을 갖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부류의 최정상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죄악 중 최대 악이라 생각하고
그것에 힘을 가하는 가식, 내숭, 아부 또한 싫어한다.
그는 그러한 사람이었고,
거기다 말하는 주제는 매번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끌고 와 욕을 해대었고,
뭐가 그렇게 불편한 게 많은지 이 세상은 그의 눈에 불편함 천지였다.
게다가 도무지 효율이라는 것을 몰라
일찍 출근해 야근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과거의 자기 성격과 비슷하다고 종종 말했다.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름 끼치는 생각이
틀렸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싶었다.
내가 그런 팀장에게 할 수 있었던 건 그를 받아주고 따르는 것이 아닌
그냥 내 일만 묵묵히 하자 였고, 그 외에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거나 친분이 생길 수 있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친절을 과하게 베풀던 그는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점점 내게 차가워졌고 우린 소리 없는 전쟁을 했다.
둘뿐인 작은 사무실에서 서로 각자 모니터만 보며
서로를 싫어하지만 그 속내를 시원하게 밝히지 못하고
하루 9시간, 주 5일을 함께 보냈다.
그는 갈수록 한숨을 크게 쉬었고 난 갈수록 말이 없어졌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고작 한 명인데.
수십 명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한 명인데 그 한 명의 마음에 들지 못해서
그렇게 괴로운 시간을 보냈어야 했나 생각이 들기도 하다.
특히나 아랫사람인 나는 더더욱 노력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객관적인 사고를 하지 못할 정도로
사구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에 미움이 들면 이렇게 어리석어진다는 걸 알았다.
그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 와서 의미 없이 사구를 이해하려 들자면
그렇게 이해 못 할 사람도 아니다.
분명히 좋은 측면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적어도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열심히 임했다.
목표 지향적이고 실행적이다.
친절의 목적이 보이더라도 일단은 친절하다.
어쩌면 내가 다른 직원들처럼 좀 더 사회적이고 융통성 있고 친절했다면
우린 더 좋은 시너지로 많은 성과들을 이뤄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치졸하게 감정에 의지했고
내 상황을 지옥으로 내몰았으며
고통을 사서 받았다.
정말이지 사람을 싫어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려고 하면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난다.
사람을 싫어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 없고 소모적인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싫어하게 될 때는
결국 난 마음이 내 모든 걸 통제하도록 내버려 둔다.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은 또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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