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해외 직장을 다니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의 신상에 문제가 있는 경우 이다.
다치거나, 아프거나, 아이 학교 문제, 부모님 건강 문제 가 대부분이다.
나에겐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늘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걱정은 불안을 만들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게 만들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내려놓고 자주 안부 전화를 하고 있다.
며칠 전 그날도 평소처럼 아내와 카톡으로 대화를 하는데 내용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무슨 소리야? 경찰이 왜 와?"
"유건이가 뭘 잘 못 했나 봐, 좀 전에 경찰하고 통화했어"
"경찰 무슨 과하고 통화했는데?"
"형사과래"
카톡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아내는 분명 걱정과 불안으로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옆에 있어줬다면 그래도 괜찮았을 텐데 멀리 있어 그것도 안되고 나도 답답하기 만 했다.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동네 주민의 자동차 파손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한다. 경찰은 신고가 들어와서 아파트 단지 내 cctv를 모두 조사하였고 파손을 입힌 가해자를 찾아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그러면 그 가해자가 누군데?"
"우리 유건이래"
"언제 그런 건데?"
"3월 1일이고 경찰서로 와서 확인해야 한데"
한숨이 나왔다. 가끔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퉈서 선생님께 연락이 온 적은 있어도 남의 물건을 파손시킨 적은 없었는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둘째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3월 1일이면 보름 전에 일어났던 일을 왜 말을 하지 않고 숨기고 있었는지,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건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아내는 그날 저녁 생전 처음 경찰서를 갔고 말로만 듣던 무서운 형사과를 본의 아니게 가야만 했다.
cctv를 보고 우리 아이가 맞는지 확인했고 변명이라면 아직 미숙한 아이가 한 행동이라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확인되었으니 이제 민사로 넘어갈 겁니다"라는 형사과 경찰의 말을 듣고 아내는 둘째와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둘째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색한 분위기로 왔다. 주차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기 전 아내는 둘째를 안아주면서 왜 그랬고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주차장 위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여자 아이들하고 말로 장난을 쳤다고 한다. 말장난이 돌장난이 되었고 주차장 아래 있던 아들과 친구들이 위로 돌을 던진 것이었다. 힘자랑을 하고 있었는지 그 돌은 놀이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아래 주차되어 있던 차로 떨어졌다고 하였고
잘못한 것은 알았는데 걱정돼서 말을 못 했다고 한다.
유건이는 올해 초등학교 4학년 우리 둘째 아들이다.
위아래 누나와 여동생 사이에 끼어 크느라 네다섯 살이 되어도 여자애들 놀 듯해서 내가 많이 놀아주려고 했었다. 커서도 집에만 있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지만 지금은 운동 좋아하는 남자아이로 커가서 다행이다 싶었다.
해외로 이직을 하면서 아빠가 없는 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되었다.
가족 중 남자라고는 아빠가 전부인데 해외에 나와 있어서 가끔은 메일을 주고받고 일부러 통화도 하려고 한다.
왜 둘째는 그 당시 엄마에게 말을 하지 못했을까?.
자신이 잘못한 행동보다 사실을 말해서 엄마가 자신을 실망하게 될 상황이 더 두려웠던 걸까?. 말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 하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자기 수용을 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자기 수용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부터 되어야 한다. 부모라면 그런 자식에게 소리치기 전 실수의 상황을 공감해 주고 본인이 잘못을 인정하게 끔 도와주어야 한다. 그 실수가 결코 부끄럽거나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인식도 같이 알려 주어야 자존감 있는 사람으로 커갈 것이다.
아이를 야단치기 전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좋다. 어떻게 자기 수용을 할 수있게 대화를 할지.
이곳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나는 둘째에게 메일로 대신하였다.
"요즘 아들 힘이 세진 것 같다~. 너무 힘 자랑하지 말고 특히 사람에게는 그러면 안 돼. 알았지?
다음에 아빠가 가면 야구장을 가서 힘껏 치게 해 줄게 손이 빨개질 정도로.. 사랑한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