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생활
매일 뻔한 일상이다. 출근 퇴근 저녁식사 운동 독서 영화감상? 정도가 나의 일상이다. 매일 배고프면 밥은 먹으면서 운동은 매일 하는 게 쉽지 않다. 엎드려 누우면 일어나기가 정말 싫다. 어떨 때는 누워서 책을 보다 잠이 들고일어나면 한 밤중이다. 밥은 먹으면 배가 부르고 포만감이 생겨 먹게 되고 운동은 별 표시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비가 오면 괜히 좋다. 하루 쉴 수 있는 핑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날도 운동을 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오피스텔 단지 내 트랙으로 나갔다.
몇 바퀴 돌았을까 순간 멈칫하면서 달리기를 멈추었다. 발아래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반 무릎으로 자세히 보니 달팽이었다. 달팽이 치고는 꽤 크다. 그리고 중국 달팽이 등껍질은 흉측해 보였다. 달팽이가 지나온 길은 점액이 묻어 점선이 찍혀있었다. '넌 참 멀리도 왔네, 어디를 가려고 이렇게 나온 거니?' 혼잣말을 했다. 기어 온 길을 보니 사람 발자국으로 두세 걸음 정도 되었다. 트랙 옆 자신의 보금자리인 작은 풀숲에서 기어 나온 것 같았다. 달팽이의 움직이는 속도가 평균 시간당 7m라고 하니 30분은 쉬지 않고 기어 왔을 것 같다.
어릴 때 달팽이를 손에 얹어 놓고 자세 보곤 했다. 손가락으로 촉수를 누르면 들어가고 등껍질을 잡고 들어 올리면 점액질이 손에 묻었던 기억이 났다. 비 온 다음날이면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밟을까 이리저리 피해 다녔었다.
달팽이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느림이 생각난다.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은 꾸준함이다. 그래서 달팽이는 느리고 꾸준하다. 요즘 느린 사람을 보면 답답함을 느낀다. 생각보다 말과 행동을 먼저 하게 된다. 나도 언제부턴가 여려가지 일을 동시에 하게 되면서부터 '빨리빨리 해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아직 안 하고 뭐 하고 이냐' 라며 직원들을 나무랄 때가 있다. 그렇게 한다고 일이 빨리 되지 않은 줄 알지만 말과 행동이 그렇지 못하다. 일이 빨리 되지 않을뿐더러 그르치는 일도 많다.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계획이 없어서 그렇다. 크고 작은 일의 계획이 없으니 말과 행동이 앞서게 된다. 계획이 없다는 건 생각을 충분히 하지 못 했다는 방증이다. 항상 예상하지 못한 결과만 나올 뿐이다. 어쩌다 잘 되면 운이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꼴이 되고 만다. 잘되면 왜 잘되었는지, 안되면 왜 안되었는지 파악도 안 된다. 앞으로 유사한 일을 해도 경험으로 축적이 안되어 있으니 항상 새롭고, 비효율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 일의 크고 작음에 무관하게 자신만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 자신이 정한 목표가 있어야 계획이 세워진다. '잘 되겠지, 그렇게 하면 돼, 너만 믿는다'라는 말로 목표를 구겨버린다. 목표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어떠한 결과물이다. 결과를 얻기 위해 가는 과정을 덮어버리고 타인에게 떠 넘기고 모른 척한다면 목표가 없는 일을 하게 된다.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고 이상이 없어야 한다는 목표가 있어야 계획도 세워진다. 무엇보다 다급해하지 않으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저 달팽이는 자신이 머물던 곳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가고 있다. 비가 많이 와 환경이 변했을 수도 있고 천적을 피해야 할 수도 있다. 무슨 이유에서든 목표를 향해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가고 있다. 가면서 자신을 공격해 오는 어떤 것을 만나면 한없이 움츠려 자신을 보호하면서 갈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목표를 향해 가는 달팽이의 모습이 요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