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 반 이른 시간이다. 밖은 아직 어둡지만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은 가을이 다가옴을 알리는 기분 좋은 날씨다. 아침 식사로 곰국에 밥을 한 숟가락 말아서 먹었다. 많이 먹으면 부담이 될까 적당히 먹었다. 배낭에 수건, 여벌 옷, 물통을 챙겨서 긴장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수원 종합운동장이다. 버스와 전철을 타고 가면 약 한 시간 남짓 되는 거리다.
15년 전 어느 가을, 설렘과 걱정으로 처음 참가하게 된 수원국제마라톤 대회 날이었다. 새벽 전철 안에는 간간히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보인다. 이 시간에 운동복 차림으로 타는 사람들을 보니 혼 자가 아닌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처음 참가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초짜 참가자 티가 팍팍 났던 것 같다. 전철이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 사람들이 모두 내릴 준비를 했다. 지하철 내부는 대회에 참가하려는 사람들로 금세 꽉 찼고 역내 화장실은 줄을 서야지 들어갈 정도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다들 나타난 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느새 그들 사이에 섞여 출구로 나왔고 사방의 사람들이 수원 종합운동장으로 속속 들어갔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인가. 몇 천명은 되어 보였다. '아니 달리기가 뭐라고 이렇게 많이들 참가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참가하는 사람들의 나이를 보니 10대부터 60대 정도로 보이는 연로하신 분들까지 다양했다. 연인들도 보이고 가족들도 보였다. 워밍업으로 몸을 풀고 있는 사람도 있고 크고 작은 대회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한쪽에서는 스피커로 신나는 음악이 나오고 주최 측에서 초청한 사람 몇몇이 무대에 올라가 몸풀기 운동을 하면 모두들 따라 했다. 운동장 안은 축제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단순히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닌 함께 즐기는 축제 같았다.
출발 시간이 되어 갔고 참가자 들은 각자 신청한 코스의 순서에 맞게 준비를 하였다. 나는 10k에 참가신청을 했고 하프 참가자들이 출발을 먼저 한 후 출발선에 모였다. 모두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연습을 했을 테고 단순 기록이 아닌 참가와 완주를 위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모습이 보여서 그랬을까, 앞뒤 좌우 사람들과 함께 출발선에 서니 마음이 뭉클했다.
얼떨결에 시작된 출발이지만 최선을 다 했다. 다이어트로 시작된 달리기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세도 엉망, 페이스도 엉망이었지만 완주를 목표로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달려갔다. 교통 통제를 해서 차도 한 복판을 달리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북과 응원소리로 달리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어느새 나도 그들과 함께 응원을 받으며 달리고 있었다. 살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평소 혼자 연습을 했을 때는 그렇게 힘들었던 거리들이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가벼울 정도였다. 이게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의 힘인가. 뛰는 동안 아무 생각도 없다가도 많은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Finish 라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한 시간 조금 넘은 시간에 완주를 하였고 뭔가를 해 냈다는 뿌듯함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첫 마라톤 참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흥분되었고 기분이 좋았다. 새벽 전철 안에서의 사람들, 운동장에서 함께 준비운동을 했던 사람들, 달릴 때 거리에서 응원을 해준 사람들 모두 나에게 힘이 되었다. 누구를 이기려고 뛴 게 아니고 기록을 세우기 위해 뛴 게 아닌 즐기면서 뛴 첫 마라톤은 무사히 완주를 했다. 혼자 연습할 때는 몰랐던 마라톤 참가는 '삶에 동기부여를 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한 기억이 뚜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