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퇴사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노 Jul 03. 2021

까진 아이들

라떼의'자퇴'는 소위, 까진 아이들이 하는 일탈의 최고봉이었다


 2020년 8월30일 퇴사했습니다. 이제는 4학년이된 결군, 마흔두살이 된 아내님과 함께 시골에서 서로 돌보는 중 입니다. "나는 직업인이 되고 싶습니다"에 기록중인 글들은 직장생활만 하던 마흔네살의 개발자가 직업인으로서 홀로서기 위한 여정을 담은 글입니다. 여전히 소소하게 현재진행형이구요. 홀로서기로 큰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적당히 벌어 잘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소소합니다.  



 양평군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는 생각 외로 작았다. 젊은 층과 학생층의 유입을 원하는 양평군의 커다란 바람만큼이나 클 것으로 기대했었다.  뭔지 모를 부푼 마음으로 센터의 문을 열었지만 작은 규모의 허름한 건물에 부푼 마음은 금세 쪼그라들었다. 연락을 주셨던 분이 반갑게 맞아 주셨고 강의실로 안내를 해주셨다. 강의실에는 약 10명 정도의 학생과 학부모가 자리에 앉아 계셨고 강의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인사를 나누었다.


 양평 중학교에서 강의했던 자료들과 더불어 새롭게 준비한 것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 마음껏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몰라도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며 나의 경험과 그들의 경험을 공유했었다. 이때와는 다르게 이번 강의가 좀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학교 밖 청소년, 대부분 자발적으로 학교를 그만둔 자퇴 청소년들이었다. 자퇴, 라떼의 학창 시절에 '자퇴'라는 단어는 소위, 까진 아이들이 하는 일탈의 최고봉을 꿰차는 완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부모님들은 자퇴생들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고 학생 당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배경에서 배우고 자란 내가 자퇴를 한 학생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1시간 정도 강의를 한 후, 30분 정도는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 20분 정도는 내가 주도하는 대화였지만 그 후로는 청소년들이 대화를 이끌어갔다. 놀라웠다. 중학교를 자퇴한 상태이거나, 중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청소년들이었는데 그들의 주관이 너무 뚜렷하고 자퇴에 대한 생각이 서툴지 않았기에 놀라웠다. 잠시나마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봤던 내가 부끄러웠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도 3명의 청소년이 남아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한 청소년은 중학교의 교육에 대해 느낀 회의감을 너무나도 명쾌하게 말해주어 더욱 놀라웠다. 


"여기서 뭘 배우고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서 스스로 배울 것을 찾아보고 공부해보려고 자퇴했어요" 


 이 친구는 자퇴 후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웹 개발을 스스로 공부해나가며 한국 디지털 미디어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자유로운 개발자로 살고 싶다는 이 친구는 나의 경험이 자신의 앞날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며 고마움을 전해주었다. ' 아, 누군가에게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한국 디지털 미디어 고등학교요? 저 좀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얼마 후 매주 진행하는 코딩 클래스 수업에서(달랑 2명이다) 학생이 물었다. 지난주에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 강의에서 만난 디지털 미디어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놀라는 반응이었다. 자신도 그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생각 중이라며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가느다란 만남과 인연이 이렇듯 끊기지 않고 이어져가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부자이건 가난하건 똑똑하건 그렇지 않건, 좋은 편, 좋지 않은 편에 선 누구라 하더라도,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인생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실오라기 같은 말과 행동과 인연들이 잘 엮여 있을 것만 같았다.


"아, 안녕하세요~, 저 얼마 전 센터에서 강의했던 강사인데, 기억할는지 모르겠어요?"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자신이 준비했던 경험과 노하우를 나의 학생에게 편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요~ 전 괜찮아요. 편하신 시간 잡으시면 그때 뵙죠~"


우리는 그렇게 양평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루틴에 작은 균열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