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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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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ul 06. 2021

쪽 팔렸던 방송 인터뷰

방송을 본 직장인들은 혀를 끌끌 찼겠지


  2020년 8월 30일 퇴사했습니다. 이제는 4학년이 된 결군, 마흔두 살이 된 아내님과 함께 시골에서 서로 돌보는 중입니다. "나는 직업인이 되고 싶습니다"에 기록 중인 글들은 직장생활만 하던 마흔네 살의 개발자가 직업인으로서 홀로서기 위한 여정을 담은 글입니다. 여전히 소소하게 현재 진행형이고요. 홀로서기로 큰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적당히 벌어 잘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소소합니다.  





"직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회사가 나를 이용하지만 나도 회사를 이용하면 된다"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맞는 이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면 되겠다"


<SBS스페셜 '퇴사하겠습니다' 인터뷰 >

https://youtu.be/g5KunlJ3c3g?t=197 

<난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ㅠㅠ>




 SBS스페셜 '퇴사하겠습니다'에 출연 당시 했던 말이었다. 퇴사를 하고 일정기간의 공백을 지나 다시 회사로 들어가게 되면서 가졌던 생각이었다. 양평에서 작고 아담한 결이고운가를 지으며 생긴 빚을 어떻게든 갚아야 했기에 회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항상 그렇듯 집 짓는 것도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건축비용이 그러했다. 대출은 이 정도로 예상했고 이 정도면 회사로 돌아가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어떻게든 갚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언제나 그러하듯 대출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고 나의 선택지에 회사만 남아버리는 상황이 찾아왔다. 


 회사로 돌아간 후, 방송 인터뷰를 위해 생각해 낸 말이 고작 저거였다. '회사가 돈을 주고 나를 이용해먹듯 나도 노동력을 주고 회사를 이용해 먹으면 된다.' '직장을 다니면서 닥치는 상황들은 어딜 가도 같으며 이는 바꿀 수 없으므로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면 된다.' 아마도 방송을 본 직장인들은 혀를 끌끌 찼겠지. 말이야 쉽지. 회사를 이용해 먹는 게 그리 쉬운가.


 돌아간 회사에서는 무려 4년 1개월을 버텼다. IT업계에 종사하며 돌아다닌 회사 중 최장기간이었다. 방송에서 말했던 그 짧은 생각들이 장기근속(?)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일 수도 있다.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면 된다? 직장 내에서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과도한 업무와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야근을 해야 하는 이상한 업무상황에 대해 태도를 바꾼 나는 정신과 육체가 동시에 썩어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떻게든 징징거리며 여유 있어 보이는 동료에게 일을 나누어 주는 것과 일이 없는데도 저녁을 먹어가며 야근하는 그 시간에 글을 쓰고 코딩 클래스를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나름의 윈윈 전략(?)이었다.


 사람마다 성격과 상황에 대해 받아들이는 정도는 모두 다르다. 그 정도에 따라 특정 사람들의 비상식적이고 몰상식적인 행동들을 맞닥뜨렸을 때의 스트레스 강도가 다르다.  그 사람의 행동은 누가 봐도 불법에 역겨운 처사이며, 그 처사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이유가 수십 가지는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은 스트레스를 극에 다다르게 했다. 윈윈 전략을 펼치고 시선과 태도를 바꾸었다 하더라도 성격만큼은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진행 중인 해외 프로젝트는 해당 국가를 가야지만 마무리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가면 내가 위험하고 안 가면 프로젝트가 위험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코로나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는 시기였고, 해당 국가는 입국 금지를 선언했다. 갈 수가 없어 지지부진한 프로젝트를 타개할 방안으로 회사에서 출장을 보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이 폭약처럼 쌓여있는 상태에서 그 소식은 도화선이 되었다. 


 치킨은 살이 찌지 않는다. 살은 오너가 찐다. 치킨은 이리 튀겨지고 저리 튀겨질 뿐이다. 치킨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이드잡이 직장 수입의 절반을 넘어서는 때, 멋지게 사표를 던지고 나오려던 계획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코로나로 세상의 혼란스러움이 절정에 이른 그때, 난 퇴사를 했다. 주말 코딩 클래스를 1년여 동안 진행해오던 때였다. 

 

사이드잡의 수입은 직장 수입의 십 분의 일도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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