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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ul 08. 2021

살림 남편 6개월 차 회고록

아내가 직장 다니고 남편이 살림하는 6개월의 상황을 회고해본다

 


2020년 8월 30일 퇴사했습니다. 이제는 4학년이 된 결군, 마흔두 살이 된 아내님과 함께 시골에서 서로 돌보는 중입니다. "나는 직업인이 되고 싶습니다"에 기록 중인 글들은 직장생활만 하던 마흔네 살의 개발자가 직업인으로서 홀로서기 위한 여정을 담은 글입니다. 여전히 소소하게 현재 진행형이고요. 홀로서기로 큰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적당히 벌어 잘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소소합니다.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퇴사를 하고 집안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다. 바꿔 말하면 아내가 집안일의 일부분을 내려놓은 지 6개월 차이기도 하다. 아내가 아침 8시에 집을 나서고 오후 6시에 퇴근하고 집에 들어올 때까지 내가 빨래 돌리고 건조기 돌리고 설거지하고(초벌 헹굼만 하고 식기세척기가 해줌)  결군 밥 챙겨주고 결군 공부를 가르쳐준다. 아내가 집안일의 일부분을 내려놓았다고 표현한 이유는 집안일의 디테일은 여전히 아내가 모두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세탁기 필터 청소, 건조기 필터 청소, 세면대 및 욕실 하수구 구멍 뚫기(난 정말 못하겠다), 욕실 청소, 집안 곳곳 먼지 닦기, 빨래 개기, 간식 만들기, 마당일, 가구 만들기, 등등 (어?? 너무 많은데??) 모두 아내가 하고 있다. 난 초보 살림꾼이니까.


 아내가 직장 다니고 남편이 살림을 하는, 이번 생에 우리 부부 처음 겪고 있는 이 6개월간의 상황을 회고해 보았다. 내가 직장을 다닐 적(아, 직장을 과거형으로 쓰다니, 뭔가 새롭다) 정시 퇴근은 대표이사가 잠시 가을을 타서 센치해질때 잠시 '가정을 챙기세요'라며 각 센터장들에게 한 마디 툭 던질 때 뿐이었다. 이 때다 싶어, 직원들이 몇일 간 정시 퇴근하며 워라벨의 기쁨을 만끽할라치면 대표이사는 곧 센치는 걷어 차 버리고 집 나간 제정신을 들여온다. 정시 퇴근은 손바닥 뒤집 듯 쉽게 엎어져 버리고 다크써클처럼 짙은 어둠이 깔릴 때까지 직원들은 다시 일을 한다. 그래, 내 생에 정시 퇴근은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밤 10시쯤 집에 들어가면 녹초가 된다. 

 녹초가 된 육체에 내일까지 해결해야 하는 이슈들 생각에 정신마저 온전치 못한 채로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내는 두부 멘탈을 가진 남편의 표정으로 기분을 알아채고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네, 저런 일이 있었네,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준다. 남편의 디프레스 된 감정이 온 집안을 잡아먹지 않도록 아내는 항상 그랬다. 난 이런 아내가 고마웠다.


양평읍으로 코딩 클래스 하러 가는 길


 6시가 되면 여름이가 마당 대문 앞에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칼같이 퇴근을 하고 돌아오는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아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지금은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와는 좀 다르다. 아내는 직장에서의 감정을 집으로 갖고 들어오지 않는다. 여느 직장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을 수도 없이 겪고 있음에도 나와는 다르게 온전한 정신을 품고 집으로 들어온다. 두부 멘탈과 강철 멘탈의 차이인가? 정시 퇴근을 하면 나도 저럴 수 있었던 걸까? 그런 아내가 신기할 뿐이다. 가끔 일찍 퇴근해 집에 들어와도 너덜너덜해진 몸을 향해 달려드는 결군의 놀이에 호응하기 힘들었던 나였지만 아내는 퇴근해서도 결군을 꼭 안아주고 결군이 재잘대며 얘기하는 오늘의 일들에 귀 기울여준다. 


 처음 접하는 역할 변경의 앞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6개월 차인 지금까지는, 

직장인 아내, 살림 남편,  

괜찮아 보인다. 

계속 괜찮은 날들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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