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규모를 적절히 유지하면 이전만큼 벌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셋톱박스 엔지니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기술에 호기심이 사라진 나를 깨달았다.
IT 업계는 변화가 빠르다.
엔지니어들은 그 변화에 대응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살아갈 수 있다.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은채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되면 내실없는 경력만 쌓여갈 뿐이다.
나는 그 변화에 내가 대응할 수 있는 내 능력이 거의 한계에 도달했슴을 알게되었다.
하던 일은 겨우 욕먹지 않을만큼만 건성건성 하게 되었고
새로운 기술에 호기심이 느껴지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다시 굴복한다 해도 퇴사에 대한 갈망은 다시 고개를 내밀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라면 4-5년 후의 나란 존재는 회사내에서 소외받을 확률이 컸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또 다시 퇴사를 고민하게 될것이다.
퇴사에 대한 고민의 악순환은 삼십대 중반에 시작되었다가
주변의 시선에 굴복했고 사십대를 앞두고 다시 찾아왔다.
지금 다시 굴복한다해도 사십대 중반이 되어 퇴사는 나에게 다시 고개를 내밀것이다.
우리 부부의 생업,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담하고 소박하게 나의 아니 우리 부부의 생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그 수준에 맞춰가며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업말이다.
생활의 규모를 적절히 유지하면 이전만큼 벌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누렸던 모든것들이 꼭 필요했던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걸러내어
생활소비의 규모를 적절히 유지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일들을 한 계단 한 계단 밟아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 일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자급자족을 위해 내가 선택한 일이 세상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비교하며 비교되며 사는 것도 인생이 어떤식으로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사는것도 이제 그만두어야겠다.
어떤이들은 이렇게 하고 싶어도 아내와의 이견으로 인해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아내가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월급 하나만을 바라보며 필요에 의해 내쳐지는 조직을 떠나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활력을 갖추는데 힘을 쏟기로 했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해도 살아갈수 있다'는 생각 아래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활력을 갖추는 것을 일차목표로 삼기로 했다.
하루에도 수십번 마음이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보단 긍정적인 생각이 크다.
퇴사 후 시간이 어찌나 빨리 흘러가는지,
이게 의미있게 흘러가는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마냥 헛되지만은 않은 시간인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는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아 긍정적인 마음이 커져간다.
마음을 활자로 표현하는 것의 힘을 퇴사 후 알아가고 있다.
퇴사 후 두서없이 글을 끄적이기 시작한 것은 잘 한것 같다.
머릿속에 분별없이 돌아다니던 고민의 조각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풀어놓고
먼 발치에서 들여다보니 그 조각들이 조금씩 맞추어져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오글오글거리는 글도 많지만 불안과 두려움, 시선 그리고 그렇지 않은 척하려는 맘이
하루에도 수십번 들락거림에도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글들이 큰 힘을 발휘했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글보단 오글거리더라도 내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글이 위안이 되었다.
어렸을적 방학이면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때려쓰느라 팔이 아펐고
선생님은 왜 그렇게 일기라는 것을 꼭 방학숙제로 내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조금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