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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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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ul 12. 2021

이상한 집

마흔 살부터는 내가 돈벌 테니오빠가 살림해


2020년 8월 30일 퇴사했습니다. 이제는 4학년이 된 결군, 마흔두 살이 된 아내님과 함께 시골에서 서로 돌보는 중입니다. "나는 직업인이 되고 싶습니다"에 기록 중인 글들은 직장생활만 하던 마흔네 살의 개발자가 직업인으로서 홀로서기 위한 여정을 담은 글입니다. 여전히 소소하게 현재 진행형이고요. 홀로서기로 큰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적당히 벌어 잘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소소합니다. 





 내가 속했던 팀은 평균 연령이 매우 높았다. 총 12명에 30대 2명을 제외하면 평균 나이 45세다. 좋게 보면 업무 내공이 강한 팀이지만, 시선을 조금 비틀어보면 미래가 흐릿한 팀이기도 하다. 젊은 피가 가끔 수혈되기도 하지만 오래되어 고착되어버린 피에 섞이지 못하고 이내 나가버리고는 한다. 꼰대 라떼가 흘러넘치다 못해 썩어가니 생기 넘치는 친구들은 오래 버틸 리 만무하다. 

 대표이사의 입방정 하나에 살아남기 위해 굽신거리는 조직장 들은 이를 인지하지만 방치한다. 대표이사의 손가락질 하나는 한 팀의 개인 사물함을 모두 없애버린다. 타노스의 손가락 튕기기가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이유도 알리지 않는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러하진 않았을 것이다. 굽신거림과 비상식적인 처사들이 그들 자신도 처음에는 어색했을 것이고 픽션의 세계로 발을 들이기 전에는 논픽션의 세계에서 살던 이들이었을 것이다. 어색한 꼭두각시놀음이 계속 반복되며 무뎌져 간다. 비상식이 평준화되어 간다. 말을 잘 듣는 꼭두각시에게 대표이사는 힘을 실어준다. 

 비상식에 허리를 굽히지 않는 누군가의 책상이 쥐도 새도 모르게 비워진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허울뿐인 조직장은 그렇게 살아남아 누군가를 협박하고 이상한 말을 지껄이며 악순환을 거듭한다. 회사는 내실 없이 사상누각처럼 외형적인 성장을 반복하며 악취를 풍긴다.  


"누구는 요즘 일찍 퇴근하더라"

"코딩 잘하는 개발자는 다시 구하면 그만이야"


 이렇게 살아남은 조직장은 회사를 옮기기 부담스러운 평균 나이 45세의 팀원들에게 협박을 일삼는다.  팀원 앞에서 서슴없이 말하는 완장을 찬 그는 어찌 보면 참 안타까운 사람이다. 폭군 같은 대표이사 아래서 파리 목숨 같은 자신의 명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타인과 그의 가족을 협박하다니, 이 얼마나 냉혹하다 못해 슬픈 일인가. 

 출근 전 아침 7시 30분에 단톡방에 인사를 잘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글을 링크 걸어놓으며 "지켜보겠습니다"라고 한마디를 툭 던진다. 사람을 대하는 예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직 발아되지 않았던 인성의 씨앗이 십수 년 동안 악취 나는 거름을 흡수하며 마치 돌연변이처럼 발아되어버린 것 같다.


 코로나 시국에 실업급여도 못 받는 자발적인 퇴사를 감행했다. 퇴사록 시즌1과 같이 준비 없이 감행하는 퇴사는 여러모로 힘들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다시 돌아간 회사에서 4년간의 직장생활 동안 코딩 클래스를 병행했다. 성과가 크지는 않았지만 자그마한 소득을 올릴 수 있었고 10개월이 지난 현재 이어가고 있다. 퇴사록 시즌1과 크게 다른 점이라면 아내가 집 근처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자그마한 시골에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예전부터 "마흔 살부터는 내가 돈 벌 테니 오빠가 살림해"라고  아내가 이야기해주곤 했는데, 마흔네 살이 된 남편에게 "4년이 늦었네"라며 웃는다. 이번 달은 도서관에서 여름특강 온라인 코딩 클래스를 진행하기로 했다. 수업자료를 준비 중인데 알람이 울린다. 열한 살 결군이 하교하는 시간이다. 아직 결군은 아빠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관심 없는 듯하다. 등교할 때 아빠와 함께 하고, 하교할 때 아빠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이것만으로 가득해 보인다. 아내는 남편이 아침밥 해주고, 퇴근하면 남편이 집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좋아라 해준다. 40대 아빠와 남편이 회사 안 가고 집에 있는데 아들과 아내가 좋아해 주는 

 

이상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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