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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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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Sep 16. 2021

니들이 돈이 어디있어?

월급받는 직장인이 아닌 이상 엄마에게는 불규칙적인 수입을 갖는 사람이다



2020년 8월 30일 퇴사했습니다. 이제는 4학년이 된 결군, 마흔두 살이 된 아내님과 함께 시골에서 서로 돌보는 중입니다. "나는 직업인이 되고 싶습니다"에 기록 중인 글들은 직장생활만 하던 마흔네 살의 개발자가 살림과 육아를 하며 직업인으로서 홀로서기 위한 여정을 담은 글입니다. 여전히 소소하게 현재 진행형이고요. 홀로서기로 큰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적당히 벌어 잘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소소합니다. 




"이번주말에 온다고? 주말에 할머니한테 가려고 했는데, 같이 갈까?"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할무이 산소에 다녀오실 계획이었는데 아들이 와서 같이 갈 수 있다 생각하니 내심 좋으셨나보다. 우리 가족은 추석에 양쪽 엄마집에 가지 않는 대신에 한주 전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제 아들이 명절에 내려오지 않고 미리 왔다가는 일에 익숙해진 탓인지 심드렁하게 대답했던 예전과는 조금은 달라진 듯한 엄마였다. 물론 코로나로 어수선한 분위기도 한 몫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정해진 날짜에 따박 따박 들어오는 
남편의 월급 한번 받아보면 소원이 없것다.

 수십년동안 남편으로부터 정해날이면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봉투를 받아보지 못했던 엄마였다. 남들처럼 100만원 들어오면 20만원은 세금내고 20만원 뭐 하고 뭐 하고, 남은 돈은 저축을 하는, 이런 계획을 세워본 경험이 없던 엄마였다. 사업같은 거 하지 않고 회사다니며 안정적으로 월급받는 남편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엄마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장남인 나는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월급을 받으며 일을 했고 대학원에 들어가서도 월급을 받았다. 졸업과 동시에 입사하여 월급을 받았고 작년까지도 계속 월급을 받던 장남이었다. 엄마와 종종 나누었던 대화의 어감에는 이런 아들을 남편으로 가진 며느리를 부러워하는 감정이 느껴지곤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울 엄마도 '울 아들은 남편으로서 역할 잘하고 있어. 월급 따박따박 잘 받아오잖아.' 라는 며느리에 대한 아들부심이 있었다.


 월급 따박따박 받으며 회사 잘 다니던 아들이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것도 이직할 회사를 정한것도 아니고 다시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독립해서 돈을 벌며 살림도 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엄마는 외적으로 크게 동요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속은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진저리나게 싫었던 아버지의 루틴을 따라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을지도 모른다. 속좁은 아들은 어찌 그 심정을 헤아릴수 있을까. 엄마의 지독했던 지난 삶을 티끌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한 주 전에 내려간다는 아들의 말에 엄마가 별 것 아닌 듯 대답을 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장남이 회사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살림을 하며 독립적으로 돈을 번다고 선언했으며 며느리가 직장생활을 한다고 한다. 엄마는 엄마가 생각하는 가정의 중추적인 역할이 며느리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들이 남편역할을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요즘 시대에 가장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가정의 핵심이고 가장인 시대, 중추적인 역할은 없으며 가장이라는 단어조차도 어색한 시대지만 울 엄마에게는 가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내면 깊숙히 자리하고 있는 단어인 것이다.


 작년 폭탄 선언이후로 누그러진 엄마의 그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엄마, 나 집에서 노는거 아냐, 프리랜서 개발자라고,
공공기관 강의도 하고 코딩 클래스도 하고 개발의뢰받아서 개발도 하고 있어.
곧 회사 다닐 때의 월급을 따라 잡을꺼야.


 매번 얘기하지만 엄마에게는 공허한 울림처럼 들리는 듯 하다. 월급받는 직장인이 아닌 이상 엄마에게는 불규칙적인 수입을 갖는 사람인 것이다. 며느리만 직장을 다니고 있는 이 상황이 엄마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의 불규칙적인 수입을 방어하기 위해 평생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자그마한 월급 봉투를 받아가며 지냈던 그 지난했던 세월을 혹여나 아들이 반복할 까 두려운 것이다.



 할머니 산소를 다녀오는 길에 들른 기가막힌 풍경 위에 지어진 멋진 정자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데 엄마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면허증은 있지만 무서워서 운전을 못하는 성여사님이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렇게 멋들어진 풍경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니 기분이 좋은가보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우리 성여사, 직장 다닐 때보다 시간이 많아졌으니 여기저기 모시고 돌아다녀야겠다.


 추석 때면 하얀 봉투에 아주 귀여운 금액을 용돈으로 넣어드린다. 이번에도 아내가 "사랑합니다"라고 이쁘게 적은 돈 봉투를 엄마에게 드리니 예전과는 다른 한마디를 웃으며 건네신다.


"니들이 돈이 어디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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