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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Nov 16. 2021

역사적인 날

새장 밖의 한마리 작은 새처럼 살고 싶을 뿐이다




 그림 같은 날씨가 매일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양평의 가을은 아름다울 것이고 위안이 되어 줄 것이다. 하지만 뉴스에서 연일 이상한 가을이라며 떠들썩하더니 양평의 가을은 미세먼지로 뒤덮이고 말았다.



 햇볕 깊숙이 들어오는 겨울이다. 천정 높은 거실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니 여름이는 새로 만들어준 나무데크에서 잠을 자고 이름 모를 새들은 경쟁하듯 지저귀는 소리가 마음을 다독여준다. 평일 오전 9시 30분, 이런 평온함이 이제는 익숙해져가고 있다. 직장 다닐 적, 다락 속 오랫동안 내려앉은 어느 빛바랜 추억 위의 먼지처럼 잊고 있었던 내가 기억 저만치에서 다가오고 있다.



 타닥 타닥 키보드 소리만 요란하게 울리는 사무실에서 다닥 다닥 붙어있는 책상들의 한편에 자리 잡고 일을 하다 보면


불현듯 다가오는 생각이 있었다.


‘나란 사람이 회사가 아닌 곳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까’


 20년 가까이 회사에서 월급을 받았고 회사에서 주어진 일만 했으며 회사에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왔다. 올해가 가고 내년이 오고 또 내년이 가고 책상 앞에 놓인 달력의 디자인이 바뀔 때마다 불현듯 엄습해왔던 불안감은 쉬이 떨쳐지지 않았다. 오오라처럼 주위를 맴도는 불안감은 잠을 이룰 수 없게 했다. 회사라는 커다란 시스템의 일부 부속품처럼 주어진 일만 반복하던 사람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 일이란 말인가.



 한 번의 무기력한 실패가 있었다. 2015년 10월, 회사를 다니며 독립을 위한 준비를 하고 퇴사를 감행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매일같이 야근에 데드라인이 걸린 일이 산더미인데 어떻게 무슨 준비를 한다는 말인가?



 준비도 퇴사를 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호기롭게 퇴사를 하고 69일간의 가족여행을 떠났다. 다시없을 69일간의 나날들이었다. 행복하고 또 행복했다. 이 좋은 것을 왜 이제서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후 돌아온 집에는 가장이라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의 공허함이 가득했다. 예상치 못한 감정이 엄습해왔던 나는 독립을 위한 준비는커녕 아내에게 이 공허함을 애써 감추려 발버둥 치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하는 어떤 성현의 말은 옳았다. 준비가 없는 퇴사는 힘들다. 아니 안된다. 물론 될 수도 있다. 믿는 구석이 있다면. 허나 우리, 아니 당신, 믿는 구석이 있나요?



 다시 돌아간 직장에서의 생활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예전처럼 월급을 받고 주어진 일을 하며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20년째 해오던 약을 끊고 잠시 동안이나마 맑은 정신으로 살다가 다시 약을 시작한 사람이 이런 기분일까. 그 기분을 어찌 알겠냐마는 그런 기분이 내 기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 없이 감행했던 퇴사에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잃었던 가족과의 시간을 일부 회수했으며 회사를 다니며 퇴사를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회사일에 매몰되어 좀비처럼 일하다가도 머리를 흔들고 어떤 일을 하며 적당히 벌고 잘 살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는 했다. 양평에 귀촌을 한 나에게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양평은 땅덩어리가 경기도에서 제일 넓지만 사람은 그리 많지 많다. 최근에 젊은 층의 유입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개발자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어려웠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일은 있었다. 바로 가르치는 것. 말을 너무 못하지도 않았고, 나는 가르칠 수 있는 '꺼리'가 있었다. 곳곳의 시골 인구가 줄어들며 존폐 위기에 처해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양평은 달랐다. 여느 시골과 다르게 인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며 젊은 층의 유입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학생들의 수는 늘어날 것이고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코딩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 또한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다니며 코딩 클래스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점점 굳어져갔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분당에 있었고 도처에 코딩을 가르치는 학원은 널려있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분당의 코딩 학원 원장에게 돈은 받지 않을 테니 학생들을 가르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코딩 강사들을 가르치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어른들을 상대로 진행했던 수업은 꽤 재미있었다. 나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해당 학원의 카페에 강의 자료를 업로드하고 강사 DB에 등록을 했다. 모든 일은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작은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두렵더라도 귀찮더라도 하는 것이 낫다.



 한 달 후, 여느 때처럼 회사일에 매몰되어 좀비처럼 일하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코딩 자격증 시험문제 출제와 강의를 맡아달라는 한국생산성본부의 연락이었다.



 2020년 8월 30일, 다시 퇴사를 했다. 이전의 서툰 퇴사와는 달리 조금이나마 준비된 퇴사였다. '너나코' 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했다. '너와나의코드'의 줄임말이다. 너나코 코딩 클래스의 커리큘럼을 소개하기 위한 웹 랜딩 페이지를 제작하여 오픈했다. 아들과 매주 다니는 도서관 사서에게 명함을 건네고 곳곳의 도서관 강좌 담당자에게 코딩 강좌 커리큘럼을 담은 메일을 보냈다. 양평의 맘카페에 홍보를 하고 당근 마켓에도 유료 지역광고를 시작했다. 독일의 한 회사로부터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해 주는 프리랜서 개발자로서의 일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개발일의 경우, 나의 에너지가 최대한 적게 들어갈 수 있도록 협의하여 조절했다.



 몇 달 후, 명함을 건넸던 도서관 사서로부터 연락이 왔고 강좌를 개설하기로 했다. 메일을 보냈던 어느 도서관의 담당자에게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맘카페를 보고 당근 마켓을 보고 연락을 했다며 수강을 하겠다는 학부모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키는 일만 하던 직장인이 스스로 일을 만들었다. 움츠렸던 자신감이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2021년 10월은 내 인생에 있어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달로 기록될 것이다. 2020년 8월 퇴사 후, 1년 2개월 만에 처음으로 이전 직장의 급여를 훌쩍 넘어서는 수입을 달성했다. 너나코 코딩 클래스와 더불어 프리랜서 수입이 늘어난 덕택이었다. 너나코 코딩 클래스는 수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중 월, 화, 수 만 운영을 한다. 목, 금, 토, 일 은 운영하지 않는다. 아내도 아들도 일을 더 늘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주 3일 근무로 직장 다닐 적 수입의 70%만 달성하면 만족하기로 했다. 클래스를 운영하는 월, 화, 수 도 오후 4시 30분부터 ~ 저녁 9시 40분까지만 진행한다. 현재 코딩 클래스는 총 8개를 운영 중이며 도서관 정기강좌는 현재 1개를 진행 중이며 곧 1개를 더 시작할 예정이다.



 새장 속에서 탈출한 새가 야생에서 살아날 확률은 적다고 한다. 매일 주인이 주는 먹이만 먹다 보니 스스로 잡아먹는 능력이 줄어듦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는 정말 너무 두려웠다. 회사를 떠나서 내가 스스로 경제력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이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캄캄하던 나였다. 나는 두 번의 탈출 끝에 이제 겨우 작은 벌레 하나를 스스로 잡아먹은 한 마리 작은 새이다. 많은 벌레를 잡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길 원하며 드넓은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쉬고 싶을 때 커다란 나무 꼭대기에 내려앉아 쉬고 배고프면 적당한 먹이를 찾는 한 마리의 작은 새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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