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을 앞둔 내게 서른아홉은 그런 숫자였다.
문득 어떤 단어가 의미조차 모를 정도로 낯설 어질 때가 있다.
'이 단어가 뭐더라? 왜 이렇게 낯설지?'
'난 이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었지?'
뜬금없이 낯설어진 이 문제의 단어는 텅 빈 머릿속에 덩그러니 놓이곤 했다.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그 단어는 좀처럼 의미를 전달해주지 않았다. 생각하려 하면 할수록 좀비처럼 떠도는 상념들은 머리를 더 옥죄어 갈 뿐이었다. 심지어 두통이 찾아올 때도 있었다. 한참을 괴로워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도를 닦는 사람처럼 정좌를 하고 명상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요즘엔 '서른아홉'이라는 낯선 숫자가 나를 묶고 도무지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빠져나오려 해도 이 숫자 앞에선 모든 것이 힘을 잃었다. 생각을 멈춰보려 해도 통하지 않았다. '서른아홉'이라는 숫자에 한번 빠져들면 블랙홀처럼 도무지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불혹
내 서른아홉은 불혹에 다가가는 것이 두려운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불혹은 생각이 많은 시기이다. 관리자와 실무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방향이 선택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느 방향으로 선택되어지던 불혹의 엔지니어들은 기존의 루즈한 일들, 또는 새로운 일들을 해내기 위한 열정은 거의 메말라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10여 년 전 회사 앞에서 자취하며 순전히 재미만으로 주말, 휴일 없이 일했던 그 설렘과 더불어 일이 해결될 때마다 느꼈던 그 짜릿함이 나는 정말 좋았었다. 열정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 해전부터 많은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퇴사 직전까지도 단지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의 사슬에 발 묶인 채 웅크리고 앉아 시키는 일만 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수동적인 삶 그 자체였다.
희열도 설렘도 아무것도 없었다
백세시대이다. 벡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든 혹은 아흔까지는 살 수 있는 시대이다. 최소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한번 더 살아야 하는데 이 긴 시간을 희열도 짜릿함도 없이 살아가기엔 서글펐다. '아니 왜 그렇게 살아야 해?'라고 자문하며 고민하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그래서 불혹 즈음의 엔지니어들은 전업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냥 회사를 옮기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업종을 선택하는 일 말이다.
꿀벌의 회귀본능
그러나 쉽지 않았다. 불혹의 나이에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떠난 많은 엔지니어들이 좌절을 맛보았다. 꿀벌의 회귀본능처럼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의 단물에 이끌려 고개를 숙인 채, 이제는 회사의 노예가 되겠다며 되돌아오고는 했다. 그리고 이들은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에게 전업의 꿈 따윈 접어버리라고 잘라 말하곤 했다. 무시하지 못할 이 한마디에 어떤 이는 그것을 단칼에 접어버리고 어떤 이는 이도 저도 못한 채 괴로워만 했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현자들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도 보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많은 이들이 겪었을 불혹을 앞둔 이 시점.
난 퇴사를 선택했다.
서른아홉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낯설지만 익숙해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불혹 즈음의 다수 퇴사자가 그러하듯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