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를 행성처럼 돌며 막연하게 나를 괴롭히던 고민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퇴사 전, 나의 고민들은
그저 막연했었다.
퇴사 전, 나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 중 10퍼센트는 일, 나머지 90퍼센트는 딱히 뭔지 말할 수도 없는,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고민들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고민은 일과 함께 뒤섞여 두통이라는 것을 생산해 내곤 했다. 퇴사를 한다면 급여 없는 생활, 주변의 시선, 온전히 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준비 없이 대책 없이 그만둬도 될까?, 이민은 어떨까? 물밀들이 밀려드는 막연한 고민들은 팽팽한 머릿속을 더욱 옥죄었다. 한 가지 한 가지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는 고민은 두통만 양산할 뿐이었다.
하루, 또 하루가 흘러 다시 일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고 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그 시간까지 나도 모르는 새에 곧장 달려갈 것만 같았다. 내 주위를 행성처럼 분주하게 돌며 막연하게 나를 괴롭히던 그 고민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작년 중순, 인도 방갈로의 화이트필드, 어딘가에 위치한 호텔에서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보안인증을 통과해야만 하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더불어 그간 나를 맴돌던 막연했던 고민들이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머리 한편에 자리 잡았던 편두통은 온 머리를 휘젓고 다녔다. 두통으로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았다. 인도의 허름한 호텔에서 아침해가 판잣집으로 가득한 거리를 물들이고 있을 때, 난 퇴사를 결정했다. 40여 일간의 인증 작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한 후,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책 없는 퇴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마약 같았던 월급 없이 버틸 수 있을까?
버틸만했다.
급여 없는 생활은 아직까지는 버틸만했다. 사람마다 소비하는 패턴, 돈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에 자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우리 가족에 있어서는 6개월 동안의 '쉼'의 가치를 고려했을 때 버틸만했다는 것이다. 예전에 중국에서 살 적, 100만 원 벌다가 200만 원을 벌게 되니 씀씀이도 배로 늘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반대로 100만 원 벌다가 50만 원을 벌게 되니 씀씀이가 배로 줄어든다는 사실도 이번 퇴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두려움은 사람으로 이겨낼 수 있다.
'넌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어'라는 전직장 동료의 시선, '일하느라 힘들잖아', 하지만 '그래도 다녀야지 어쩌겠어'라고 들리는 듯한 엄마의 말과 시선,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서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로또 맞은 거 아냐?'라고 말하는 이웃의 장난 아닌 장난스러운 시선들에 상처를 받진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건강한 생각을 가진 분들과의 만남, 책이 주는 마음의 면역력 그리고 무엇보다 퇴사 전이나 퇴사 후나 변함없는 아내의 지지와 태도로 인해 상처는 깊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처가 없었다'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난 온전히 쉴 수 있는 자격이 있다.
13여 년간 2주 이상 아무 생각 없이 쉬어본 적이 없었지 싶다. 그래서 퇴사 후 몇 개월의 '쉼'에 '온전히 쉴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한 달만 쉬어도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 할 사람처럼 안 하면 무언가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불안에 떨며 안절부절못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두 달 여의 시간은 가족 모두와 함께 여행으로 채웠다. 이후 집에서 지내는 나의 시간은 책과 사람으로 채워가려 노력했다. 집 앞의 커다란 도서관은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초반 2주 정도는 방황을 했다.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아파트 앞의 텅 빈 주차장을 보면 나의 마음도 휑하니 텅 빈 것 같았다. 책과 사람을 통해 처한 상황을 다르게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그 휑했던 공간을 의미 있는 무언가로 채워가는 중이다.
퇴사 후, 푸념처럼 늘어놓던
이민을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내는 퇴사 전, 이민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하곤 했다. '방법이 있다면 찾아보자', '영어도 차근차근 준비하자'라고 말하며 나와 다짐을 했건만 내가 일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장기출장을 가며 이민을 위한 노력은 흐릿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찾아보자던 방법도 영어공부도 팍팍한 현재를 위로하는 잠시 스쳐가는 해우소 일 뿐이었다.
퇴사 후, 이민에 대해 이처럼 가깝게 다가간 적이 없었지 싶다. 퇴사가 주는 시간의 여유가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미국 이민을 결정했다. 결정 후 우리 가족에게 같이 떠나자는 제안을 했고 아내와 나는 신중하게 고민하며 우리가 이민을 원하는 진짜 이유를 마음에서 들여다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아내는 미국에 대해 마음을 닫은 사람이라서 가능성이 낮기는 하다. 게다가 아내는 지금 이 상황에서 미국 이민은 '원하는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도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막연하게 허공에 떠돌던 이민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래도 퇴사 전, 막연했던 이민에 대한 생각을 퇴사 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기에 후회는 없다.
퇴사 전, 막연했던 고민들을 퇴사 후, 내 눈 앞에서 진지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고민의 결과가 좋던 나쁘던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퇴사 후, 막연하게 내 주위를 떠돌던 고민들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나에겐 건강한 영향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