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통장잔고에 고개를 떨구기엔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따뜻하다.
길어지는 '쉼'의 시간만큼 통장잔고의 숫자는 짧아진다.
급여에 완전히 중독되어버려 한 달조차도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었다.
통장잔고의 숫자들이 짧아질수록 고민과 두려움이 산처럼 쓰나미처럼 밀려올 줄 알았다.
그런데.... 괜찮은 것 같다. 아니 괜찮다.
이상하다.
아내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한다. 우리 부부는 많은 대화를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행을 하는 동안, 집에서 쉬는 동안, 아내가 내게 하지 않았던 말들이 있었다.
"언제 일할 거야?"
"언제까지 쉴 거야?"
"돈은 얼마 남았어?"
아내는 일을 하고 있지 않는 남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평일날 엄마들이 북적거리는 유치원 버스 승하차장에 나를 보내기도 했고 유치원 엄마들 집에도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매일매일 직장에 나가는 남편들을 둔 엄마들 이야기를 들으며 돈 얘기, 먹고살 걱정, 푸념 같은 것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재능기부를 하겠다며 장애복지관에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매일 집에 있는 남편 지겹지 않냐' '매일 집에 있으면 싸우지 않냐'며 장난스럽게 말을 거는 엄마들이 있으면 '한 번도 싸운 적 없다'고 말하며 그 앞에서 내 손을 더욱 꽉 잡고 걸어가 주었다.
책이 읽고 싶어 도서관에 가겠다고 하면 '도서관에서 너무 잘생기게 보이지 마' 라며 마음 편하게 보내주었다. '당장 눈앞에 현실을 해결해야 하지 않냐며' '책에서 돈이 나오냐며' 퍼붓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게 '오늘은 어떤 책 읽었어?' '오늘은 몇 권 읽었어?'라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주었다.
그랬던 거 같다.
통장잔고의 숫자들이 내게 고민과 두려움을 안길 틈이 없었던 거 같다.
나의 아내가 그것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았던 거다.
이 험난한 세상, 이처럼 속 깊은 사람이 나의 아내라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깟 통장잔고에 고개를 떨구기엔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따뜻하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