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해온 직장생활의 관성에 대한 반발
적절한 타이밍을 잡느라 하루 종일 회사일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팀원의 누군가 선수를 치고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승부를 내야 했다. 퇴사 전, 목요일이 공휴일인 샌드위치 연휴 때면 금요일에 연차를 사용하기 위해 팀내에선 소리 없는 전쟁이 일어나곤 했다.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연차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는 이 불편한 상황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항상 똑같이 벌어졌다. 이럴 때면 난 뭔가 다르다는 걸 전하기 위해 '연차는 필요할 때 쓰라고 있는 거야! 지금이 그때이고!'라고 동료들에게 큰소리를 치고는 했지만 돌아서면 순한 양이 되곤 했다. 침을 튀어가며 불평을 늘어놓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왜 그랬을까, 차라리 말이나 하지 말걸'하며 후회했지만 그 상상은 매년 반복되었다.
끊임없는 야근이며 몇 달씩 나가는 해외출장으로 인한 가정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선 샌드위치 연휴는 포기할 수 없는 기회였다. 기회를 엿보았지만 끝내는 점심시간까지도 팀장님에게 말을 건넬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결국 점심시간이 오고 팀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은근슬쩍 양해를 구했다. '이럴 때 한번 이기적으로 살아보는 거지'라고 자위하며 눈을 질끈 감고는 '저 좀 쉴게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선수 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모두들 나와 똑같은 심정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전 직장 동료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말도 별로 없고 뭘 내세우지도 않고 도움을 요청하면 '제 코가 석자'임에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그런 분들에게 매번 샌드위치 연휴 때면 이기적인 선수를 쳤던 나였다.
이렇게 얻어낸 연휴는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늘어지게 늦잠(?)은 잘 수 없었지만(다섯 살 아이를 둔 분들은 알 것이다) 아내와 밥도 먹고 긴 대화도 하고 산책도 할 수 있는 그 시간들을 마음껏 누렸다. 부부가 얼굴을 보고 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밥을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많지 않았던 우리 부부싸움의 이력은 모두 내가 해외 장기출장 중일 때 기록되었다. 사소한 말투 하나로 감정이 삐뚤어지더라도 스카이프 영상통화로는 그 삐뚤어짐을 알아챌 수가 없었다. 출장 내내 불편함을 안고 그 시간을 견뎌내었다. 풀지 못한 불편한 감정을 안고 출장에서 돌아오면 나는 그날 밤을 새워서라도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며 사소한 다툼의 앙금을 풀고는 했다. 반복되었던 이러한 상황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라는 어떤 현자의 말이 진리라고 믿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돌아가는 팀 프로젝트의 사이사이에 제법 긴 연휴의 시간들을 맞이할 때면 아내와 나는 마치 토론을 하듯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자주 갖고는 했다. 퇴사 전, 나에게 연휴는 이런 것이었다.
퇴사 후,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1년이면 6개월 가까이 해외에 나가 있었던 직장생활을 접고 매일같이 아내와 아들과 얼굴을 보고 지낸지 8개월째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면 매일같이 아내와 손잡고 아침산책을 하고 때론 값싼 조조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아침 산책만큼은 평일날이 최고다. 일터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로 텅 빈 동네길을 산책하는 건 퇴사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래서 얼마 전 시끌벅적했던 어린이날 연휴 때는 퇴사자의 특권을 빼앗기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퇴사 후, 연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다. 이젠 샌드위치 연휴에 팀장 눈치 볼일도 없어졌고 평일과 연휴의 극적인 차이도 느낄 수 없다. 평일과 주말과 연휴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는 듯했다. 퇴사자에겐 평일이 주말이고 평일을 이어지면 연휴인 것이다. 주말의 쾌감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연휴의 꿀맛도 사라지고 있었다. 만약 아들이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면 요일의 흐름도 물렁 해졌을 것이다.
평일과 연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이 기분에 나의 마음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긴 연휴를 앞두고 업 된 기분이 연휴의 마지막 날이면 급 다운되는 현상을 직장생활 내내 경험하며 살아왔다. 마치 정신과에서 말하는 조울증 같은 현상을 십수 년 겪었던 것이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왔으니 미지근한 물에 들어와 무덤덤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오랫동안 해온 직장생활의 관성에 대한 반발과도 같은 것이었다. 문득 극적인 삶의 관성을 벗어나 미지근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의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 같은 연휴, 연휴 같은 평일의 삶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