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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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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Mar 26. 2017

새장 속 혹은 밖에서 허우적대는
누군가에게

첫 경험을 통해 내일을 꿈꾸게 된 내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전 퇴사 후 10개월을 쉬었어요. 

퇴사의 이유 중 하나가 '쉼'에 있었기에 쉬었지요.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어요. 


새장 속 급여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새장 밖에서 홀로서기 위함이었어요. 


허나 뛰쳐나온 새장밖에서 먹이를 구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새장 속 모이들은 거의 다 먹어가는데, 몇달이 지나도 벌레 한 마리 잡지를 못하는 신세였거든요. 


그러다 결국 단 한 마리의 벌레도 스스로 잡지 못한채, 

다시 새장 속으로 들어가 주인이 주는 모이를 받아 먹게 되었어요.



 뒤돌아 보니, 15년전부터 새장 속 삶을 시작한 이후 단 한번도 새장속으로 날아들어오는 벌레들을 잡으려 하지 않았더라구요. 주인이 주는 모이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한건지, 영원히 새장속에서 주인이 모이를 주리라 생각한건지 모르겠어요. 그 생각은 '마흔'이 가까워질수록 또 가족이 생겨난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지만요. 

 

그렇게 저는 새장 밖 10개월 동안 스스로 단 한마리의 벌레도 잡지 못했어요. 


한 마리 정도는 스스로 잡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단 한마리도 잡지 못했어요. 10원도 못 벌었어요. 부끄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겠죠. 아내는 이런 모습을 보인 저에게 한마디도 나무라고 하지 않았어요. 기다려주었어요. 참 건강한 친구이자 아내에요.  

 

 새장 밖에서의 삶은 벌레를 못 잡아서 배고플 뿐이었지, 심신은 배고프지 않았어요. 새장 밖에서의 '쉼'은 사슬에 묶여서 쉬는 거하고는 차원이 다른 '쉼'이었으까요. 물론 이러한 '쉼'에는 반드시 옆지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가능해요. 아내의 지지가 수반되는 '쉼'에는 악조건에서도 건강한 생각들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거든요. 부정적인 생각보단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어요. 좋은 책도 읽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렇게 저는 저의 삶에서 정신적 성장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만큼 의미있는 '쉼'의 시간들을 보냈어요.

결국 새장 밖 벌레는 단 한마리도 잡지 못한 채 새장 속으로 들어갔지만요.



그런데요.


이번에 새장속으로 들어가는 저는 새장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의 제가 아니었어요. 나올때보다 많이 육체적으로는 허기져있기는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건강한 생각들로 무장한 채 다시 새장속으로 들어갔거든요. 새장속에서의 환경을 바꿀수 없다면 새장속에서의 환경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보자는 생각과 새장속에서 모이를 주는 주인에 대한 시선을 달리 하게 되었어요. 


무작정 사슬을 끊어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새장 속에서 모이는 받아 먹되, 새장속으로 날아들어오는 벌레들을 놓치지 않고 잡아놓는 거에요. 모이로 지금의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날아들어오는 기회의 벌레들을 잡아놓는 거죠. 그리고 급여의 사슬, 모이의 사슬이 끊기는 순간, 새장 밖 세상으로 나가더라도 잡아놓은 벌레로 견디고 또 기회의 벌레들을 잡으며 터득한 자그마한 기술들을 어떻게든 이용하면 될것 같았어요. 


 이러한 생각과 함께 다시 새장 속으로 들어온지 7개월이 지났어요. 처음 3개월은 새로운 새장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더라구요. 그러던 와중에 다시 마음을 다 잡고는 했어요. 예전처럼 새장속 강철 사슬에 묶여버리지 않으려구요. 새장 속에 얌전히 그 환경에 순응은 하되  날아오는 벌레들을 잡아보려고 애쓰는 시간들을 조금씩 조금씩 늘려갔어요. 


그러다 4개월이 지나고 나니 새장 속에서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파묻히지 않고 새장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벌레들을 잡으려 노력했어요. 



그렇게 어느덧 7개월이 흘렀답니다. 

 새장 속 일에 엄청 바쁘게 지내고 있었던 때였어요. 어떤 기관에서 내가 쉬고있을때 준비하던 분야의 자격증 문제출제위원 제안을 받았어요. 예전 같았으면 일을 핑계로 흘려보냈을텐데 이번에 저는 그일을 덥석 물었답니다. 엄청 바쁜 와중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일이었어요.

 

저는 처음으로 새장 속 일에 올인 하지 않고 나의 일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나의 일과 새장 속의 일을 적절하게 분배하여 실행에 옮기는 최초의 경험을 하게 된거에요!

새장 속에 갇혔다고 새장 속 일에만 파묻히지 않고 새장 밖을 살피다가 새장안으로 날아들어오는 벌레를 낚아챈거에요!!!

물론 벌레는 많지 않아요. 단 한마리이지요. 

하지만 이 한마리는 저에겐 갚을 따질 수 없는 귀중한 한 마리 랍니다.


저는 적은 돈이지만,

퇴사 이후, 아니 직장 생활이후 처음으로

월급이 아닌 제가 관심있던 분야를 통해 돈을 벌게 되었어요.


다른이에겐 적은 돈이지만,

저에겐 내일을 꿈꾸게 할 수 있는 셀 수도 없을만큼 큰 돈이었어요.



아내가 그랬어요.


지금이 미래라고, 

지금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

미래의 나의 모습이라고.


그래서 계속

즐겁게 노력할거에요. 


나의 퇴사록도 

계속 쓰여질거에요.


그리고.


새장 속 혹은 밖에서 허우적대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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