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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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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Apr 04. 2017

퇴사 후 재입사, 첫 시험대

쉼의 시간 속에서의 배움에 대한 첫 시험대에 올랐다


"퇴사를 왜 하게 되었나요?"

뻔한 질문이다. 
그렇다. 
나는 퇴사를 하고 이 뻔한 질문을 적지 않게 받아왔다. 
이 뻔한 질문에 뻔하게 대답하지 않으려고 포장 좀 해보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흠, 좋아하는 일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요"


포장을 좀 하긴 했지만 퇴사의 이유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어찌 이것뿐이랴, 쥐어짜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많다. 

굳이 쥐어짜지 않아도 생각나는 퇴사의 이유가 한 가지 있다.
난 셋톱박스 엔지니어였다. 일의 특성상 접할 수밖에 없는 인증, 사업자 컨펌, 자신이 작업한 어떤 결과물의 승인 여부에 따라오는 압박감은 꽤나 무겁다. 실패되었을 때 돌아오는 회사의 금전적 손해, 질책, 질타는 물론이요,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란 존재의 능력치가 투명한 유리 온실 속에서 만천하에 공개되는 듯한 이 감정을 능히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결과가 나올 때 즈음이면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일상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로 넋이 나가 있곤 했다. 아들이 놀자고 해도 아내가 말을 걸어도 혼이 비정상인 것처럼 비정상적인 반응으로 일관했다. 내가 그렇게 한들 그 상황을 바꿀 수 없음에도 나의 태도는 쉬이 바뀌지 않았다.

퇴사 후, 아내의 든든한 지원과 함께 쉼의 시간을 가졌고 폭풍과도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던 불안감과 온몸으로 맞닥뜨렸으며 이를 튕겨내기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받아들여 보기도 했다. 아내와의 끝없는 대화는 불안감마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건강했고 나를 굳건하게 해주었다. 쉬는 동안의 독서는 불안한 감정마저도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게 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존재였고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면 태도를 바꿔보라는 어느 책에서의 강렬한 문구는 나의 마음 곳곳을 환하게 비추어주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태도를 바꿔보세요"



퇴사 후, 난 재취업을 했다. 재취업을 결정하게 된 이유엔 대책 없는 집 짓기로 인한 무리한 대출이 큰 몫을 했다. 이전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냥 대출을갚아야 되는 이유가 전부였다. 재취업을 결정하고 출근을 하기 전 날, 나는 쉼의 시간 동안 강하게 나의 뇌리에 박혔던 그 문구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집을 지었어. 대책 없는 퇴사에 대책 없는 집 짓기였지만 우린 우리가 살 집을 디자인하고 완공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매일매일이 행복했어. 어? 그런데, 돈이.. 우리가 가진 전 재산의 턱밑까지 차오른 거야. 급기야 우리의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지. 우린 이 돈의 수위를 낮춰야 했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는데 높다란 수위는 큰 방해가 되니까 말이야. 그래, 그렇게 난 어쩔 수 없이 재취업을 했어. 그런데 말이야, 대출을 갚기 위해,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던 옛 직종으로 복귀를 했는데, 난 슬프지 않았어. 난 바꿀 수 없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태도를 바꾼 거야. 우리가 꿈꿔오던,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기 위해, 집을 지으며 일어난, 바꿀 수 없는 이 상황을 행복한 집짓기 과정의 하나로 치부시켜버린 거야. 이것은 마법과도 같았어.'

이후, 재취업을 한 이 회사에서, 예전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선물했던 승인 여부를 기다려야 하는 16일간의 첫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리고 난 지금 그 결과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이번 역시 실패했을 경우, 투명 유리 속처럼 환히 비추어지게 될 능력치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과 이를 보는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스트레스를 받게 될까. 

그렇지 않았다. 난 변했다. 그래, 난 달라졌다. 
내가 설레발을 치며 걱정을 해도 상황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는 나를 스트레스로부터 지켜주었다.
추상적인 문구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난 오늘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자들이 책을 읽으라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으라고 말해주는 거구나.'



난 오늘, 쉼의 시간 속에서의 배움에 대한 첫 시험대에 올랐다.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은 것 같다.
"잘했어!" 
라고 칭찬해 주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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